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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강형구의 <월계관 쓴 손기정> (1996)

이석우

손기정의 눈물, 겨레의 서러움

화가 강형구에게 휴대폰을 걸어보라. 어김없이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힘차게 들려져 온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터져 나올수 있는 잠재적 광기를 안고 있는 작가라고나 할까. 우리가 알듯이 손기정은 제 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하여 세계를 제패하였다. 1936년 8월 9일 오후 5시 31분 마라톤 결승점 승리의 테이프를 끊은 그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2로써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는 한국인인데도 일본에게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장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일본 선수로 뛰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승전보는 억압에 짓눌려있던 우리민족의식을 뜨겁게 불질렀고 한 맺힌 가슴에 가슴 속으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감격 속에 분을 참지 못한 언론인들은“조선중앙일보”와“동아일보”지면에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제작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일장기 말소가 이루어진 날과 그것이 일제에 의해 발각되는 시점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음이다. 최인진의“일장기를 지우다”(신구 문화) 따르면 그 경위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 같다.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 승전보를 울린 지 4일 후 1936년 8월 13일, 조간 제 4면에 시상대에 선 손 선수의 수상 사진을 게재하였다. 4단 크기의 이 사진에서 가슴에 뚜렷이 새겨진 일장기를 지웠다. 그러나 이 거사는 일제 검열관에 의 발견 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 그 후 8월 25일자“동아일보”에서 일장기를 말소함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조선중앙일보”의 사건도 함께 수사하게 되었다. 그러나“동아일보”도 13일에 이미 일장기 말소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께 결행한 인사들에 대한 가혹한 고문, 언론계를 떠나야 하는 수모는 혹심하였고 동아와 조선중앙은 정간과 폐간에 이르게 되었다.



강형구와 손기정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는가. 강형구는 현재 손기정 기념재단 이사장이자 그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4년 세종문화회관 전관을 빌려 손기정 기념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테네올림픽에 시기 맞춰 열렸던 그 전시는 손기정 친일여부를 잠재워버린 보람의 행사였다. 화가 강형구는 11살 때부터 손기정에 심취하여 자료 수집을 해왔다. 체육에는 그 민족의 역사와 국력, 그리고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손기정은 최초로 동양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드러냈다. 마라톤은 인내의 극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우리민족의 기질과 통한다. 알듯이 히틀러는 엄청난 인종 차별주의자다. 그런 판국에 동양인이 우승했다는 것은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 선수는 나라도 없는 무명의 청년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고 강형구는 일침을 놓았다. 그가 밝히는 손기정과의 베를린 마라톤에서 같이 뛰었다는 꿈 이야기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고 있었다...마의 40km 지점에서 결국 손기정 선수에게 따돌려지고 만다. 손기정 1위, 나 2위, 남승룡 3위! 시상대에 오른다. 두 개의 일본기와 나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베를린의 석양하늘 아래 떠오른다. 그런 손기정님이 나의 작업실로 찾아 주셨다. 본인의 한 많은“일장기 우승”을 내가 재현 시켰고 그림 앞에서 노옹은 감격의 눈물을 닦으셨다. 나는 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선생님의 슬픈 쾌거에 많이 울어 보았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고 우시는 군요 ... ”

그림속의 손기정은 그 기쁨의 순간인데도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을 머금고 있다. 표정 또한 비감에 차 있다. 청년의 건강하고 풋풋한 얼굴, 따스한 온기가 얼굴에 가득하다. 잘 생긴 한국인의 얼굴이다. 비장의 아픔이라고 할까. 그것은 화가 강형구의 슬픔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다시 그가 내게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는 미술과 비례적 관계에 있다. 미술 속에는 역사와 의식이 본능처럼 포함 될 수밖에 없다. 예술품에 대한 설명만 잘해도 역사가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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