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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전시 일정표, 그 양적 팽창과 매체의 변화

호경윤

김학량, 불혹상, 2004, 서울아트가이드에 먹으로 드로잉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봇물 터지듯 수많은 전시 개막 소식들로부터 가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지난 9월 1일 개막하는 굵직한 전시들이 여럿이어서 어디를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기조차 어려워 결국 그냥 집에 있었다. 과거에는 전시 개막을 수요일에 맞춰서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대부분 인사동 화랑가에 밀집되어 있어서 반나절 만에도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사동 외에 소위 ‘화랑가’로 불리던 다른 동네들도 유명무실해진 경우가 많다. 단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변에 크고 작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일종의 ‘아트 벨트’처럼 모여 있을 뿐, 대부분의 전시장은 뿔뿔이 흩어졌다. 젊은 작가의 전시 공간 대부분은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으면서 서울 속 변두리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 덕분에 길 찾는 데에 크게 불편을 겪지는 않는다. 단지 이러한 곳의 전시들은 불규칙적으로 열려서 무턱대고 찾아갔다가는 문이 닫혀 있을 때가 잦다. 그래서 지금은 중단됐지만, 한때 온라인상에서 한 개인이 운영했던 ‘엮는자’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 정보를 모아줌으로써 당시 매우 유용한 채널로 쓰였다.

예전에는 모든 미술잡지에서 전시 일정표를 엮어 만들곤 했다. 사실 전시 일정표는 월간지의 출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계간미술』에서 1989년 1월 『월간미술』의 창간호부터 그달의 전시 일정을 미리 소개하는 <전시회 가이드> 코너가 시작된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월간미술』 창간호의 <전시회 가이드> 페이지는 참여 작가나 간략한 전시 소개까지 수록됐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3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이후 분량이 늘어나면서 캘린더 형식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다른 미술잡지들도 유사한 형식이거나 지도 이미지와 함께 제공하거나, 별책부록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미술 월간지들이 출현하게 된 것은 그만큼 한국 미술계가 확장되고, 즉 미술을 둘러싼 공급과 수요가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장과 전시회의 증가 양상은 본지 『서울아트가이드』의 형태 변화에서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2002년 1월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서울아트가이드』 창간호는 접지 형식으로 전체 16페이지였다. 1년 뒤 24페이지에 중철제본 형식으로 바뀌었고, 2009년에는 186페이지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2010년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시장 위치도, 매체의 특성도, 그리고 관객층도 다양해졌듯이 전시 소식을 알리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작가나 기획자 같은 개인들은 문자메시지나 전화 연락을 따로 돌리기보다는 모바일 메신저에서 단체방을 만들어 알리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미술기관에서는 홍보 채널로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티저 영상을 만들거나 전시를 만드는 과정부터 지속해서 노출시켜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한다. 전시 오프닝 당일에는 관객들이 실시간으로 올린 사진들로 인해 SNS의 타임라인만 봐도 어떤 작품이 주목을 받았는지, 또 누가 갔는지, 심지어 오프닝 리셉션 음식은 어땠는지 대략적인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막상 전시를 볼 때는 반전의 결론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벌써 흥미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거 매달 초마다 전시 일정표를 귀히 보며 그달의 미술계를 가늠하고, 또 거기에 실린 지도를 보면서 골목을 헤매던 향수가 떠오른다. 전시도 많고, 정보도 너무 많은데 이러한 양적 팽창 속에서 더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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