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직지(直指)의 은하계

이선영

직지(直指)의 은하계


이선영(미술평론가)

  

1. 이론적 배경; 시각적 코드의 문화사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에서 열리는 [겹에서 형으로] 전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평가되는 [직지심체요절](1377)의 고향 청주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 담겨있다. 이 기획전에 초대된 오윤석, 정광영, 최연우의 작품은 다양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종이라는 재료와 복제라는 방법론을 공통적으로 깔고 있다. 한지부터 신문지까지 다양한 종이가 활용되었다. 종이는 활자를 만들듯이 칼로 새기거나(오윤석), 종이에 싼 입체적 구조들을 조합하거나(전광영), 여러 인쇄물을 둘둘 말아 꽂아서 만든 풍경(최연우)이 되었다. 마침 오창전시관이 도서관과 한 건물에 있기에 인쇄라는 코드는 제격이다. 인쇄물의 정점에 있는 책은 뉴미디어 시대에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정보의 전달보다는 존재론적 의미가 강해진 인쇄물은 예술적 소재나 주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글을 따로 인쇄를 해서 꼭꼭 짚어 가면서 읽는다. 최초의 인쇄가 야기한 문화적 혁명은 20세기의 정보혁명 못지않은 여파가 있었다. 





오윤석 작품 설치전경(이하 모든 사진 출전은 청주시립미술관)


미술과 밀접한 시각성과 인쇄문화는 밀접하다. 이 기획전에 초대된 21세기의 작품에서도 인쇄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지점들이 발견된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문자 및 인쇄와 관련된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필자는 이 책의 논리를 참고해서 이 전시를 읽어보고자 한다. 마침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서양 최초라고 알려진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서보다 78년 앞섰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동서양에서 이루어진 거의 동시대적 문화혁명으로 참조할 만하다. ‘구텐베르크’ 만큼이나 ‘은하계’라는 키워드도 이 전시의 작품들과 어울린다. 세 개의 전시실(과 계단 공간)은 각각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세계관이 깊게 드러나 있는 오윤석의 우주, 작가가 설정한 기본입자들이 헤쳐모이는 전광영의 우주, 요동치는 띠로 다차원적 세계를 암시하는 최연우의 우주가 그것이다. ‘겹’이라는 전시의 키워드는 각각의 우주를 구성하는 형태소의 집적을 말한다. 이러한 겹을 통해 인공물로서의 예술작품은 자연에 가까워지려 한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의하면, (서양에서)중세 말에 발명된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제 1 효과는 귀로 들리는 말을 가시적인 단어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마샬 맥루한에 의하면 인쇄술을 통해 감각은 보다 특화되었는데, 그것은 반복 가능한 활자에 의해 서적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생겨났다. 균질성, 획일성, 반복성, 이들은 이전의 구술성의 문화와는 다른 시각 세계의 기본요소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에 촉진 역할을 했던 인쇄술은 시각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청각성에서 시각성으로의 변환은 이후 시각예술의 기본 문법이 되었던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체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시각성에 의한 동질적인 공간의 구축은 근대과학에도 해당된다. 당시 자연 과학의 발전, 즉 비가시적 힘에 가시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어떤 종류의 응용지식이든 그것의 핵심은 복잡한 관계를 명시적인 시각적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전광영 작품 설치전경


마샬 맥루한에 의하면 인쇄문화에 의해 촉진된 명시성과 연속성, 통일성 등이며, 이는 공통의 문법과 전문적인 시각 등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이 전시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통일적 방법론의 확립됐다. 문자나 이미지를 한지에 복제하여 칼로 오려내는 오윤석은 같은 형식을 공간적 차이를 두고 규칙적으로 도열시켰고, 벽과 바닥의 거울을 통해 통일된 질서 감각을 더 강조했다. 전광영의 작품은 매뉴얼을 숙지한다면 다른 사람이 조형의 기본 단위들을 제작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최초의 발상과 최종적인 구성은 작가만의 몫이지만 말이다. 인쇄물을 둥글게 만 형태들로 구성된 최연우의 작품은 도시적 풍경과 밀접한데, 현대도시는 무엇보다도 계획도시이며 정확한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건설된다. 근대건축은 국제양식으로 불릴 만큼 통일된 방식을 가진다. 물론 인쇄문화의 연속성과 통일성은 획일성을 낳기도 했다. 


다른 감각으로부터 추상화된 시각적 공간으로 발전했는데, [구텐베르크의 우주]에 인용된 바에 의하면, 르네상스 이후의 세계는 ‘기하학적 세 가지 축 위에 정지되어 있으며 정적이고 분절가능한 상태로 보인다. 이제 그것은 하나의 거푸집으로부터 나온 주물 같다’ 시각화 기술에 이미 세상이 동질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작품들은 문화의 획일성을 예술로 극복하고자 한다. 공간적 양식인 미술은 이미 문자나 인쇄의 선형적 논리 이후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 작가가 사용하는 기본재료인 종이는 인쇄와 짝을 이루는 미디어다. 마샬 맥루한에 의하면 종이에 인쇄된 단어는 정신 운동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운동과 변화의 모든 문제를 정지된 부분 혹은 영역으로 변화시켜 보는 정신적 습관의 강화는 인쇄된 단어의 정지 화면이다. 인쇄는 변하는 것을 불변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후 이를 설명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고취시켰다. 





최연우 작품 설치전경


이 전시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취하는 추상적 형식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전문화시킨 결과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의하면 우리가 추상미술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다른 감각 능력들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분절된 시각 감각 능력에 기초한다. 추상미술에 깔린 형식논리는 가능한 최고의 정밀성을 획득하는데, 이러한 목적은 오직 안정되고 시각적으로 지각가능한 상징으로 구축된 명료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이러한 언어는 과학적이며 새롭다. 마샬 맥루한의 논리에 의하면, 순차적이고 인과적인 형태로 조합시켜 선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근대적 지식의 성격이다. 미술 또한 이러한 선형적인 논리에 의한 진보를 자기화하여, 새로움을 고무했다. 마샬 맥루한은 인쇄문화의 선형적 논리가 다시금 돌아온 구술성(이번에는 문자성이 바탕한 구술성)의 문화에 의해 변모한다고 보았다. 21세기의 미술은 인쇄에 바탕한 근대문화가 이루어낸 고도의 시각적 질서 이후의 문화적 흐름을 짚어낸다.    

 

 


2. 참여 작가

 

오윤석; 마음에 새긴 글자

오윤석의 [re-record_불이선라도]와 [Hidden Memories-1403]는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와 최치원이 쓴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등, 한국의 서체와 문인화 등을 ‘칼 드로잉’ 작업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쓰기도 힘들었을 글자를 칼로 파낸 작업은 고도의 집중과 기술을 전제한다. 아무리 수행적인 작업이라 할지라도 작가가 일부러 고행을 실행할 리는 없다. 섬세하게 굽이치는 글자를 칼로 파냄으로서 비워진 공간은 주변의 물리적 조건을 내부에 담는 역할을 한다. 어둑한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이 작품 가운데에 서면 양쪽으로 도열한 작품들이 장관이다. 간격을 두어 걸어놓은 같은 형식의 평면들은 기념비적이다. 글자가 새겨진 종이의 크기를 많이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것이 가능했다. 관객은 그 사이를 걸어가는 것만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효과를 본다. 빛과 그림자, 각도, 공기의 미동에 의한 살랑거림까지 품어내는 오윤석의 작품은 문자와 이미지가 고서에 갇혀있는 것을 넘어서 동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오윤석 작품 설치전경


관객이 이동에 의해 공백에 담기는 형태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칼로 오려낸 글자를 선보인 것은 전시가 열리는 지역성의 반영이다. 직지의 고향 청주, 그 정신과 형식을 다시금 살려내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다. 그 시대의 문자는 쉽게 쓰고 지워지는 현대의 ‘문자’와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정말 귀한 것만 문자화, 활자화되었다. 서양에서는 성경이 ‘최초’의 몫이 되었고 동양에서도 경전이다. 오윤석은 불교 경전처럼 마음에도 깊이 새길만한 글귀를 참조한다. 문자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다시 음미할 수 있다. 작가가 현대미술의 방식인 설치로 문자를 재해석했을 때 그러한 역동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바닥에 깐 블랙 미러, 전시장 앞뒤 벽면 전체에 붙인 거울은 문자를 하나의 우주로 연출한다. 한편 시각적 메아리를 이루는 거울의 방에 내재된 복제의 측면은 인쇄의 방식에 대한 재해석이다. 

 


전광영; 문화의 향기 가득한 레고 우주

다양한 크기의 삼각기둥 형태의 스티로폼을 고풍스러운 인쇄물에 싼 구조물이 집합된 전광영 의 작품은 속속들이 빼곡한 문자의 우주다. 그의 작품에 깔린 ‘집합’이라는 개념은 총체라는 관념보다 더 유연하다. 이 독특한 형태의 기원은 조부의 한약방 천장의 한약재 봉지다. 오래된 약봉지에서 출발한 작품은 다양한 차원으로 해석되어 읽혀진다. 조부가 한약방을 할 당시에는 포장재가 변변치 않아서 거의 문화재급 종이로 상품을 싼 것이다. 유럽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포장지를 통해 전해진 것도 당시 생산력 단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단면이다. 미술사는 그 포장지들이 유럽 모더니즘의 전개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대중적인 목판화 종이는 서구의 전통적 시각 관습을 상대화시키는 과감한 시각을 발견하게 한 영감을 제공한 것이다. 전광영의 작품은 빈틈없이 쌓은 고대의 미스테리한 건축 구조물처럼 보인다. 일정한 크기를 충만하게 채우는 고밀도의 집적은 기술력을 경쟁하는 현대의 산업도 연상시킨다.



전광영 작품 설치전경


그의 작품은 레고처럼 조각난 단위로 우주를 구축하는 고대의 원자론적 세계다. 물론 원자론에는 원자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진공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나, 마침 푹 패인 듯이 둥그스름하게 형태화된 부분은 요소들의 재조합을 통해 변형이 가능한 진공의 역할을 한다. 레고나 원자는 중성적 형태지만, 전광영의 작품에서 형태소를 이루는 고 인쇄물로 싸인 삼각기둥에는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다. 삼각기둥들이 만약 무엇인가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입자라면 그것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문자들의 집적은 정신을 만들어 왔다. 마침 이번 전시에서는 다채로운 색감의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어 문자로 이루어진 우주의 감성적 차원 또한 고양된다. 문화사에서 우주론까지 포괄하는 연상의 사슬을 추동하는 힘은 작품의 밀도다. 하지만 그의 밀도는 답답하지 않다. 전광영의 작품은 물리적으로는 고정되어 있지만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침잠하는 것같은 잠재적인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최연우; 요동치며 변모하는 우주 

신문지나 잡지 등의 인쇄물을 말아서 집적해 만든 풍경은 관객의 움직임에 다양하게 대응한다. 전시장을 가로질러 활처럼 호를 이루는 도톰한 종이 구조물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정면으로 보면 공간들은 비어있다. 최연우가 구사하는 다양한 시공간적 차원을 생각해 볼 때, 그 구멍은 웜홀처럼 3차원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는 통로처럼 보인다. 작품 [5:47pm]은 7m 지름의 타원형으로 거의 건축적인 스케일이다. 여기서 저기로 갈 때는 서울의 양재천 풍경이 저기에서 여기로 올 때는 뉴욕의 브룩클린의 풍경이 된다. 물론 그 풍경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사람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지만, 시공간의 차이가 있는 풍경이 한 면에 존재하는 것은 변함없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뒤도 다르다. 신문이나 잡지 등 다양한 인쇄물을 말아서 만든 형태소의 다양한 높이가 또 다른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필자는 거기에서 빽빽한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봤다. 



최연우 작품 설치전경


이러한 연상은 작품을 이루는 기본 단위들이 인쇄물인 까닭이다. 인쇄가 추동한 기계적 복제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져서 이윽고 지구촌 전체가 서로를 반사하는 복제물로 가득해진다. 최연우의 작품은 앞과 뒤가 동시에 활성화되며 앞뒤가 다공질로 이어진다. 작품 [From The Beginning_20220719]은 로비 공간에 띄워 설치된 것으로, 층계를 오르내리며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뫼비우스 띠처럼 역동적으로 휘어져 있다. 그는 이항 대립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세계를 요동치는 하나의 표면으로 전환했다.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지금과 그때가 수시로 자리를 이동한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끈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모델은 초끈 이론(the Super String Theory)을 염두에 둔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끈들로 이루어진 우주 또한 자연의 법칙이 써있을 것이다. 그의 세계는 어떤 상자가 가정되고 그 안에 무엇이 채워지는 고전적 우주가 아니라, 대상과 배경이 혼연일체가 되어 상호작용하는 유연한 우주의 모델이다.   


출전; 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