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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카와 요시히카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고충환



가즈카와 요시히카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예술은 다른 관점에서 삶을 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세계와 모순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작가의 말은 예술의 핵심을 건드린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분분하지만, 그중 결정적인 경우로 치자면 예술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만든다. 관점의 이동을 말하는 것인데, 일상적인, 상식적인, 논리적인, 이성적인, 합리적인,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목적 지향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관점에서 보던 것을 미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예컨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눈으로 보면 세상의 숨은 얼굴 그러므로 환상과 놀이와 유희가 보인다. 그렇게 열린 환상과 놀이와 유희와 더불어 어쩌면 삶의 일부인 모순을 인정하게 만들고, 모순과 화해하게 만들고, 나아가 모순을 즐기고 향유 하게 만든다. 

이처럼 예술이 열어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의 그림자에 주목하는 작가도 있지만, 가즈카와 요시히카즈는 예술을 매개로 세상의 밝은 국면이나 환상적인 측면과 같은 잠재력을, 비전을 캐내고 발굴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 말하자면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이 작동하는 지점에 작가의 회화의 독창성이 있고 세계관이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비전을 열어 놓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살필 일이다(짐짓 진지하게 말하자면, 발터 벤야민은 예술가란 고장 난 세상을 고치는 수선공이라고 했다). 


작가는 10대 후반에 배낭여행을 시작해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작가의 회화적 상상력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하고 자극받았는지 말해주는 대목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여행은 지역성에 주목하게 하고, 지역들이 공유하는 공통분모에 눈뜨게 만든다. 그리고 예술이 로컬리티와 글로벌리즘을 결합하게 해준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아마도 지역 고유의 생활양식에 주목했을 것이다. 정교한 자수와 섬세한 모자이크, 그리고 도기(세라믹)화와 자수로 장식한 동물 문양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현재 보는 것과 같은 작가 고유의 예술 양식은 아마도 그 장식에 나타난 문양과 패턴, 색감과 질감을 흡수하고 변용하는 과정에 상상력을 매개시켜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그림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작가는 동판화로 작가의 이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흑백 단색 동판화를 그리고 점차 다색동판화를 그리고 새겼다. 어느 정도 동판화 자체가 그렇지만 작가의 회화적 성향은 세밀화 기법에 어울리는 것 같다. 당시 판화를 보면 세밀화 기법과 함께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비전이 엿보이는데, 비록 판화와 회화라는 형식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일정한 변용과 변주의 과정을 거쳐 여전히 작가의 회화를 지배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한눈에도 형식상의 특징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픽셀처럼 이미지를 이루는 단위원소가 강조돼 보이고, 그 단위원소가 병치 되면서 면을 이루고 형태를 만든다. 단위원소는 몇 가지 한정된 다른 패턴이 있는데, 그림의 주제나 소재 여하에 따라서 매번 다른 패턴이 적용되는 편이다. 그렇게 강조된 패턴으로 인해 그림은 섬세하고 정교한 모자이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고슴도치의 몸체처럼 촘촘한 침으로 덮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털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지 자체는 시각적이지만, 평면 위로 돌출돼 보이는 패턴으로 인해 촉각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패턴을 이루는 단위원소가 병치 되면서 화면에 미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렇게 가변적인 그림자를 조형의 한 부분으로서 포함한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시각적이고 촉각적이다. 서로 다른 감각이 하나로 통하는 공감각을 실현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로 아우른다. 평면이면서 입체인, 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회화를 실현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재료는? 패브릭인가. 시각적으로 부드러운 질감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딱딱하다. 일일이 붓으로 그린 것 같지도 않고, 화면 위로 돌출된 채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이미지의 최소단위, 모나드, 입자는 어떻게 만든 것일까. 아마도 주사기의 원리를 이용해 그린 것일 터이다. 마찬가지로 튜브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일 터이다. 주사기든 튜브든 미세한 관이 예민해서 여차하면 굳어진 물감으로 막히기 마련인데, 더욱이 재료가 일정한 점성을 유지해야 고정된 형태도 가능할 것인데, 여하튼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붓 대신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난제를 해결했을 것이고, 자신의 이름을 딴 요시카즈 3D 페인팅 기법을 위한 도구를 완성했고, 특허출원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본 일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인 만큼 주사기나 튜브가 아닌, 예기치 못한 제3의 도구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형식논리나 방법론보다는 예술성과 작품성이지만, 최소한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형식실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만큼은 분명 인정해줄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재료와 관련해 볼 때, 작가의 그림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미미해서(그만큼 섬세해서) 잘 감지되지는 않지만, 움직임에 따라서 그리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색깔도 분위기도 사뭇 혹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광이든 조명이든 다른 불빛 아래서 보면 색이 다르게 보이고, 빛의 조도에 의해서도 색깔이 그리고 분위기가 다르게 보인다. 아마도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점도를 조절하는 성분과 함께, 스스로 빛을 내는 자기 발광성 소재의 안료를, 야광성 물질을 혼합해 그린 것일 터이다. 

실제로 작가의 그림은 불을 켰을 때와 껐을 때 색채와 분위기가 다르고, 여기에 자외선램프를 통해서 보면 숨어있던 색깔이 그리고 여기에 숨어있던 형태마저 비로소 드러나 보인다. 이처럼 전혀 다른 그림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실제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 때에 따라선 어둠과 더불어서만 비로소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그림들을 통해 작가는 아마도 빛과 어둠, 음과 양으로 대비되는 존재의 이중성이며 양가성을 표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색채감정을 보면 대개 모티브 혹은 사물 대상 자체의 본래 색에 해당하는 자연색을 무시하고,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색채를 적용해 그리고 있다. 결국 한눈에도 모티브의 실체를 대번 알아볼 수 있지만, 사실은 색채도 그리고 여기에 형태마저 변형시켜서 그린 것이다. 결국 주관적으로 그린 것인데, 아마도 어린아이의 열린 마음과 시선으로 그린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판타지를 지어내고 서사를 지어내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예컨대 그 이야기(어쩌면 상상력, 그리고 허구적 현실) 속에서 곰과 연어는 현실과는 다르게 좋은 친구로서 재회한다(곰 시리즈). 비행접시가 쏘는 빛의 빔 속으로 양이 날고, 용이 날고, 봉황이 날고, 암소가 날고, 토끼가 날아오른다(플라잉 시리즈). 그리고 아마도 앤디 워홀을 오마주한, 캠벨 수프을 먹으면 행운의 별을 딸 수 있고, 여기에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테이블 시리즈).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어린아이의 상상력 탓에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서 모티브는 대개 그 실체가 손에 잡히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단색조의 평면 위에 모티브를 중첩 시킨 경우에 모티브는 더 강조돼 보이고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한편으로 작가는 바탕화면을 통해서 그림에 일정한 변화를 유도하고 있기도 한데, 물감을 흩뿌린다거나, 요철이나 미세 크랙을 부가한다거나, 마블링 기법으로 얼룩 패턴을 조성한다. 비정형의 회화적인, 가변적인, 우연적인 화면에 결정적인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필연적인 패턴으로 나타난 모티브를 대비시켜 열린 해석을 유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자연과 문명, 일상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때로 감각적 현실과 신화적 현실을 아우른다. 그렇게 대개는 동물을 빌려 사람 사는 세상 그러므로 세상살이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우화적인 면이 있다. 그 우화 속에서 어른들은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고, 그림 속 동물에 스스로 동화할 수 있고, 동물과 더불어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꿈꿀 수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오직 상상력만이 의미가 있는, 열린 텍스트 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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