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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저스트 키즈] 진정한 작가의 삶에 대한 기록

박영택

『저스트 키즈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아트북스, 2012 

예술가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계시처럼 다가온다. 모든 예술가는 어느날 스스로 예술가가 되고자 다짐하는 순간부터 그 길을 간다. 우리가 이해하는 예술가란 개념은 근대의 소산이다. 그 이전에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인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선천적인 재능과 열정에 부대끼는 많은 이들이 결국 예술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창작활동은 주어진 관습과 제도의 틀 속에서 유사한 것을 만들어내는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로서의 예술가상은 근대를 기다려야 한다. 근대 이후 예술가는 타고난 존재이기도 하고 교육의 소산이기도 하다. 오늘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제도교육의 틀을 관통해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 유학은 거의 필수이고 박사학위도 요구되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 그러나 도대체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도교육의 틀과 박사학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걸까?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만큼 뛰어난 예술가의 숫자는 비례하는가? 절대 아니다. 나로서는 오늘날 미술인들이 증가하고 가방끈도 무한정 늘어났고 그만큼 전시도 많아졌으며 실기박사학위자들도 늘어났지만 좋은 작가, 작업은 희박하고 아쉽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미술을 직업으로 하고 미술을 팔아먹고 사는 이들, 미술 산업에 기생하는 인구들은 늘어났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과 자기 내면의 요청에 응해 창조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순연한 마음과 정신을 지닌 이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오늘날 작가가 되는 일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경력을 쌓고 시장이 선호할 만한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만들고 미술계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공모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도록 힘쓰고 그렇게 점수를 쌓아 대학에 전임이 되거나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가 되는 순간 예술과 예술가는 명분에 머물고 만다. 이 지점이 한국 미술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미술 역시 성공과 전략, 사업과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지고 돌아갈 경우 이 미술계, 예술계는 얼마나 황폐하고 비루할까? 

미술평론을 하는 나로서는 가능한 매주 나오는 미술신간은 찾아보는 편이다. 『저스트 키즈』 역시 그렇게 접하고는 단숨에 읽어나갔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신탁처럼, 부름처럼 자기 내부에서 들려오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음성에 기꺼이 투항한 뮤지션이 젊은 시절 갖은 고생을 겪어나가면서도 그 길을 강렬히 추구해나갔던 여정인데 특히 금세기 최고의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메이플 소트의 연인이자 동반자였던 이의 솔직한 기록이어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그날 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 이유는 너무 먼 기억이 되어 버린 어린 시절 예술가가 되고자 열망 했던 내 추억이 떠오르고 동시에 저런 열정을 지니며 치열하게, 극단적으로 살아가는 아티스트를 오늘날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 소프의 젊은 날의 자화상을 적은 이 책은 2010년에 출간되었다. 메이플 소프가 에이즈로 죽은 후 한참이 지난 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두 예술가의 소울메이트적 관계를 추억하는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회고록인 동시에 두 예술계 거장의 어린 날의 자화상이며, 또한 1960-70년대 히피문화, 그리고 뉴욕을 중심으로 피어났던 문예부흥의 기운에 대한 기록이자, 미국 예술계에 대한 상세한 지형도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읽는 재미가 몇 배로 겹쳐진다. 메이플 소프에 관한 내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젊은 날 패티 스미스의 연인이었다는 사실과 그의 절은 시절 예술적 재능과 기호 등은 새삼스러운 대목이었다. 이 책을 쓴 패티 스미스는 12살 때 예술가가 되고자 결심한다. 그녀는 자질과 재능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진심으로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다. 예술가가 되라는 계시를 받는 걸 상상했고 그렇게 되길 바랐다. 무엇보다도 자유와 예술을 동경했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예술이나 자신에게 대해서는 확고하게 자신이 있었지만 어떻게 생활을 꾸릴지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차비만을 가지고 뉴욕에 온다. 노숙과 굶주림을 견디며 그녀는 랭보의 시를 읽는다. 그러다 메이플 소프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1967년 여름 뉴욕 부르클린에서 두 남녀가 우연히 조우한 것이다. 아티스트를 갈망했던 두 젊은이는 사랑에 빠지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극빈의 삶과 굶주림, 영화와 음악과 시와 미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기갈, 서로 소울메이트가 되어 지탱해주고 힘이 되고 동거했던 이들이 겪어낸 참담하지만 뜨겁고 가슴 뛰는 젊은 날의 고백이다. 동시에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를 횡단하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술과 음악, 예술적 감성과 혁명적 기운이 흘러넘쳤던 뉴욕의 기록이다. 그, 당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벅차다. 극빈 속에서도 이 둘은 오로지 미적인 부분에 매료되어 지낸다. 특히 메이플 소프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즉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을 보고자 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장애를 맞닥뜨렸을 때는 그냥 부숴버리고자 했다. 그 결과 메이플 소프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어두운 본질적 내면을 예술로 표현해냈다. 이후 패티 스미스는 뮤지션과 시인이 되었고 메이플 소프는 자신만의 도발적인 스타일을 담은 흑백사진의 대가가 되었다. 사물과 대상의 본질을 극한까지 들어간 눈을 가진 이가 되었다. 그의 사진은 너무나 탐미적이고 너무나 지독한 시선으로 안착된 것이었다. 이 커플은 순수하고 강렬했고 가난하고 철없고 위험했고 위태로운 삶을 살았던 정말 ‘저스트 키즈’였다. 과연 우리 화단에서 이 같은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예술은 모든 것을 투기하고 극한으로 밀고나가 죽어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미술계는 다들 살겠다고, 잘 살겠다고 난리고 잘 팔리고 교수가 되고 시장에서 선호되는 작가가 되려는 아귀다툼 속에서 정작 미술과 아티스트는 실종되는 형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책이 새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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