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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성시키는 핸드크림

박영택

내가 하는 일은 결국 손이 하는 일이다. 내 의지와 감정과 노동이 손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손으로 인해서다. 손은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그 연장된 몸으로 삶의 최전선에서 세계와 맞서고 있다. 타자와 사물과 접속되고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손이 없다면 세계는 없다. 나는 오늘도 손 하나로 사물과, 타인과 연결된다.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불현듯 손바닥을 펴서 내 생의 알 수없는 지도인 손금을 내려다본다. 지인들이 더러 지나가는 말로 손금을 보고 한 마디씩 했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저 자잘한 주름들이 짓고 있는, 판독 불가능한 난해한 텍스트를 쥐고 태어났던 때의 울음이 환청처럼 들릴 것도 같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벌였을까를 떠올려본다. 매일 음식물을 입에 넣었으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을 것이고 온갖 사물들을 매만졌을 것이다. 또 다른 육체를 성급히 갈구했을 것이고 여러 장의 종이를 넘겼고 필기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나는 차마 이 손들이 무엇을 했는지 죄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손은 분명 자신이 접촉했던 것들을 모두 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내 몸에서 손은 그렇게 완전히 노출된 것들이기에 너무 많은 기억의 용량을 지닌 체 힘들어 한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볼 때마다 그가 살아온 생의 궤적이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 환영을 느낀다. 손은 부정하지 못한다. 결코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손이 가장 슬프다. 언제부턴가 나는 손가락과 바닥이 자주 조여 와서 불편했다. 그래서 수시로 핸드크림을 바르는 편이다. 우연히 발견한 이 핸드크림은 크림 색 병에 검은 소가 그려진 흰색 뚜껑이 무척이나 근사했다. 작고 낮은 병의 크기와 형태도 훌륭하고 감각적인 소 이미지가 좋았다. 그것 자체로 완벽한 오브제였다. 작은 핸드크림 병 하나가 소박한 기품으로 반짝인다. 뚜껑을 열면 치즈처럼 크림이 약간 단단하게 담겨져 있다. 그것을 문질러서 일정 분량을 떠내 손등과 손바닥에 흡수시킨다. 부드러운 물질이 손 안으로 스며들고 내부로 파고들어 나를 녹인다. 말랑거리게 하고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나는 정말 많이 녹아야 한다. 나는 너무 경직되고 건조하고 마냥 삭막하다. 이 핸드크림이 나를 반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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