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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풍경-세부로 말하는 방식 / 이현권

박영택

한강풍경-세부로 말하는 방식



사진은 외부세계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는데 멈추지 않는다. 그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는 여러 차원의 겹들이 동시에 쌓이는데 그 하나는 사진 찍는 이의 의도적인 선택과 배제가 그것이다. 아울러 그 선택이란 것도 의도적인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이 공존한다. 촬영자는 그가 보고 싶은 것, 보고자 하는 것을 찍는 동시에 무의식 속에서 호명하는 것에 이끌려 촬영할 수도 있고 의지와는 무관한 우연적인 얼룩들이 인화지를 채울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사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창작행위에는 의식과 무의식, 의지와 우연이 한 쌍으로 뒤섞여 있다. 


서울 한강을 걷다


주지하다시피 벤야민은 사진에서 초현실적인 조우를 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사진이 단지 기계적 재현술에서 벗어난 이룬 모종의 성취를 예감하고 있다. 나아가 프로이트는 사진이 나오는 과정, 즉 현상이나 인화의 과정들을 통해 이미지가 나오는 과정들은 무의식이 의식이 되는 과정과 무의식에 있는 기억들이 뒤에 의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분히 사진은 무의식적 소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은 잃어버린, 또는 자아 이질적인 무의식적 내적 요소들을 상징적으로 복원시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진 찍는 행위에서 한 개인의 무의식의 세계를 였보는 동시에 그의 외상의 징후를, 그리고 모종의 치유적 기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현권은 한강을 찍었다. 서울 내부에 자리한 한강과 함께 그 주변을 탐사하듯이, 주밀하게 관찰하고 훑어나가듯이 촬영했다. 수 년동안 틈만 나면 한강을 찾았던 여정이 사진 속에 들어와있다. 그는 한강을 통해서 서울의 이미지, 느낌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애매하고 알 수없는 것이지만 분명한 느낌, 조짐으로, 증상으로 불현듯 출몰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해서 작가는 한강의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볼 수 있는 그 풍경을 찍었다. 그는 걸어다니며 가능한 한강의 모든 것을, 다양한 변화의 자취를, 일상적인 모습 아래 자리한 낯설음을 발견하고자 했다. 아니 문득 보았다. 자신의 몸으로 체감하는 이 보행체험으로 인해 한강은 스쳐지나가며, 빠른 질주로 접했던 풍경과는 무척 판이한 얼굴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그 풍경은 손에 잡힐 듯 하고 땅에 밀착된 시선이자 동시에 한강의 내부 깊숙히 접근하는 시각으로 건져졌다. 다가서고 물러서면서 한강을 관찰하고 있는 그런 시선이다. 마치 렌즈와 대화를 하듯이 잡아 당기도 밀어가면서 그 안에 담긴 대상을 독대하고 있다.


파노라마 구도 속에 잡힌 한강은 늘 건물, 나무나 풀과 함께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광활하게 드러난 하늘은 다양한 색채와 다채로운 구름의 형상으로 가득하다. 전경에 펼쳐진 건물과 수평으로 드러누운 한강, 그 전경에 불쑥 자리한 나무가 있거나 한강 주변을 채우고 있는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풍경이다. 한강의 외부를 밀착해서 선회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런가하면 한강 내부로 잠입하듯 들어가 다리의 내부를 촬영하거나 수면에 바짝 붙은 사진도 있다. 거의 변함없는 구도 속에 자리한 한강은 그러나 너무도 다양한 모습, 색채를 안겨준다. 한결같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무척이나 서정적인 풍경이다. 새삼 한강을 다시 보여주는 편이다. 또한 컬러사진이지만 다분히 모노톤으로 조율되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균질해보인다. 그러나 이 통일감 속에 섬세한 균열들이 나있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시간의 차이에 의해 사진 속 한강은 수없이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사진은 한강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재현될 수 없음을 자인하면서 동시에 매 순간 변화하는 한강의 이미지 속에서 무언가 '증세'를 발견하려는 듯 하다. 그것은 의식 안의 무의식, 표면 안에 내부가 공존하는 한강 풍경일 것이다.


서울 한강을 걷다


그는 한강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그가 발견한 것, 보고 싶었던 것, 혹은 우연히 보고 만 것을 찍었다. 그런 과정에 무의식 속에 깃든 기억들이 빠져나왔을 것이고 잠재된 욕망들이 얹혀졌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찍은 이 사진은 한강 풍경의 재현인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있는 무척 이상한 한강풍경이다. 도저히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표현되기 어려운 그런 이미지이자 오로지 막연한 증세로만 남아 흩어지는 풍경의 자취를 쫓은 흔적이며 결국 자신의 무의식에 이끌려 가는 사진이 그가 찍은 한강사진이고 사진 찍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한강은 기억의 매몰과 복구를 상징하는 장소이자 사진 찍은 일은 그저 지나쳤던 세상의 세부들을 하나 둘씩 인식해나가는 과정은 아닐까? 이처럼 세부를 읽어내는 방식, 세부로 말하는 방식이 바로 정신분석이라면 정신과의사인 그가 증세를 발견하듯이 세부적으로 한강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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