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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와 김정범 / 기억을 매개하는 감각물

박영택

김선수와 김정범 / 기억을 매개하는 감각물




김선수는 캔버스와 도마 위에 숲과 음식물의 재료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원시(순수)와 천연의 내음이 짙게 풍기는, 숭고해 보이는 숲의 풍경이다. 단색 톤으로 삼세하게 조율된 치밀한 묘사는 격조 있는 자연의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자연풍경의 형상을 목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 청정한 숲에서, 울울한 산 속에서 만나는 자연/생명체의 신비스러운 기운과 장엄한 분위기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차오르는 그림이다. 그것은 다분히 비가시적인 숲의 특질의 가시화이다. 그래서 작은 화면이지만 크고 깊은 숲의 정신성이 감촉되는 그림이다. 낭만주의풍의 이 풍경화는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의 입자와 그것들의 접촉에 의해 반짝이는 대기와 풀의 빛남, 그리고 공기와 빛의 유동적인 흐름을 추적하는 그림이다. 숲과 함께 그려진 하늘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로 인해 비로소 가시적 존재가 되는 지상계와의 관계성을 주목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러니 대지는 하늘로 인해 그 존재감을 부여받는다. 


숲 그림과는 연관성이 멀어 보이는 일련의 정물은 캔버스 천 대신에 딱딱한 도마의 표면위에 요리의 재료들을 올려놓고 있다. 마치 도마 위에 실제 생물과 야채가 자리하고 있다는 착시적인 상황성을 안기는, 허구적인 그림이다. 이 환영성은 작가가 자신의 재현능력을 드러내는 한편 회화가 입체(부조)가 되고 일상에서 취한 오브제(도마)를 그림이 담긴 화면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에서 나온다. 그것은 부엌이나 주방에서 요리를 가공하기 위한 지지대에 불과한 도마에 화면(미술작품)이라는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요리에 대한 개인의 추억을 물질화시키는 수단이다. 그렇게 보면 그가 재현한 숲이나 요리의 재료들은 모두 풍경에 대한, 음식(고향과 가족)에 대한 기억, 추억을 유발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동시에 자신의 주변에서 접한 생명체,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따라서 숲의 내음과 촉각, 온몸으로 만나 지각체험 그리고 음식물에 대한 기억, 미각 등 몸의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반면 김정범은 사각형의 납작한 도판위에 그릇(사발, 다완)의 형태를 암시적으로 남기다가 돌연 짙고 선명한 청색의 물감을 거침없이 쓸고 나간 붓의 자취, 질료의 얼룩을 보여준다. 붓질의 드라마틱한 흔적이 그림의 내용이 되고 있다. 붓질이 특정 형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체로 생생한 표정과 질료성, 몸짓 등을 각인시킨다. 청색의 물감과 붓이 만난 사건, 행위가 그대로 그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안료의 유동성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 되었다. 따라서 이 도판화는 그림이기 이전에 작가의 행위, 이른바 퍼포밍 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화면이 된다. 전통적으로 도예가 흙을 빚어 불에 의해 고형의 것으로 형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면 이 작업은 도판을 이미지를 올려놓는 화면으로 적극 다루면서도 그 자체로 충분한 화면, 작업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납작한 평면에 청색 물감을 풀어 놓고 붓질로 흔적을 남기는 과정은 흡사 청화백자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청색과 거침없는 붓질은 분청의 귀얄문을 상기시킨다. 나아가 입체로서의 그릇 표면을 떠나 평면에 그려지는데 따른 극적인 해방감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도판 자체는 실용적 차원인 접시로서도 기능할 수 있고 이른바 도화, 도조벽화로도 가능하다. '순수'와 '실용'의 해묵은 경계를 지우면서 나아간다.


김선수는 천과 도마의 표면에 그림을 시술하고 있고 김정범은 흙으로 이루어진 평면에 아크릴물감으로 이미지와 함께 질료의 급박한 상황성을 남겨놓고 있다. 그것은 특정한 이미지를 제시하기 보다는 그림이 제작되는 과정에 수시로 개입하는 자기감정의 누출이자 재료의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종의 사건이 발생되고 있는 현장을 목도시키는 화면이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이 한 공간에 모였다. 생각해보면 두 작가는 익숙한 화면, 매체를 다른 식으로 벌려놓고 있으며 각자의 지난 시간에 대한 추억, 경험을 다루고 있다. 우선 김선수는 캔버스작업도 있지만 캔버스 대신 도마를 사용하고 있고 김정범은 도예/도조의 입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이 아니라 도판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평면성을 도모한다. 이른바 독립된 도화 또는 도자기 벽화 작업이다. 한편 김선수는 기억과 경험에 의한 음식(음식재료)을 상기하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빌어) 김정범은 흙을 빚어 만든 도자기, 그릇에 대한 노동의 제작 순간(기억)을 개념화 한다. 둘 다 모종의 기억, 경험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해서 매체에 대한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로인해 기존의 회화, 도예(도조)와는 다소 상이한 낯선 감각을 야기해준다. 


전시란 작품을 통해 관람자의 지식과 시각을 자극해 참여를 이끄는 행위다. 그것은 기존의 관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일이자 새로운 감각을 발생시키는 일이며 또한 전시 공간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장소를 상상하고 생산해내는 일이다. 모든 전시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감각, 감수성을 유발시키는 의도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 두 작가의 전시 역시 기존의 매체, 장르에서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감각을 발생시키고자 하는 차원에서 한 자리에 모였을 것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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