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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 도시의 징후적 풍경

박영택

김한나는 자신의 주변풍경인 도시를 회화적 언어로 옮겼다. 그것이 그림이 된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본 것을 회화적 언어로 번안해내는 일이다. 그것은 우선 물감과 붓질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만의 회화적 터치와 질료의 연출일 것이다. 여기서 도시라는 소재는 작가 특유의 회화를 선보이기 위한, 자신의 예민한 감성이 투영될 대상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설정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풍경보다는 이 작가만의 ‘회화’를 보고 있다. 탄탄한 기량 속에 번지는 색채와 붓질의 구성이 자아내는 기묘한 화음들이 보기 좋다. 그것은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작가의 몸에서 빚어낸 도시의 장면이다.
김한나는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 환경인 도시풍경에 매료가 되었다고 말한다. 작가의 신체가 도시와 반응한 침전물이 그림이 된 것이다. 도시는 매력적이며 활기차고 더없이 재미있는 여러 요소들로 가득한데 특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 어두운 밤을 밝히는 도시의 야경 등이 작가의 눈과 마음을 특별히 자극한 소재들이다. 그 도시풍경을 구경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로부터 파생한 감정의 여러 갈래들을 화면 위로 호출한 것이다.
도시의 밤풍경을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불빛이 은은하게 번지고 퍼지면서 만들어지는 몽환적이고 화려하며 어딘지 우울하고도 탐미적인 정서적 느낌이 좋다고 한다. 밤의 도시풍경은 낮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면서도 무척이나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전형적인 도시의 속성을 불현 듯 누출하는 지도 모른다. 호퍼의 야경그림처럼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번잡하고 화려하고 부산한 도시풍경 속에서 흥미롭고 매혹적인 것들을 접촉하면서도 근원적으로는 어딘지 쓸쓸하고 적조하며 고독한 내음을 맡았던 것 같다. 자본주의가 만든 도시풍경은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헛된 욕망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어딘지 덧없고 공허하며 실체가 없다. 비정하고 잔인하기 까지 하다. 표면이 발산하는 미끌거림과 발광이 억압하며 밀봉하고 있는 진정한 내부는 여간해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예민한 작가들은 그 속을 알아채고 읽어내는 이들이다. 징후를 포착한다고나 할까? 김한나의 도시풍경도 내게는 모종의 ‘징후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림의 대부분은 도시의 내부로 근접한 시선을 보여준다. 특정 공간의 재현이면서도 다양한 시점을 동원해서 도시를 다각도로 보여줌과 함께 일상적이고 친숙한 시선에서 잠시 떼어놓기도 한다. 조감의 시선 그리고 먼 거리에서 포착한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이 흩어져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에게 있어서 도시는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정서를 대변하거나 가시화 시키는 선에서 호명되고 있다. 그러니까 도시 자체에 대한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문제적 발언을 의도적으로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자신이 늘상 접하고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일상적 환경인 도시 자체를 바라보는데서 그림은 출발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림은 자신이 바라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작가에게 도시는 그 바라봄의 결정적 대상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로 이주하면서부터 작가에게 도시는 더욱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된 것 같다. 호기심과 모험심에 의해 투영된 도시는 일정한 거리 속에서 지속적으로 주시되고 반복해서 그려진다.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작가의 삶의 동선에서 경험된 공간들이며 그 공간은 기억에 의해 축적되어 재생된다. 사진을 참조로 해서 그려진 이 그림은 그러나 사진적 재현과는 무관해 보인다. 작가는 구체적인 도시 풍경을 빌려 오지만 실은 그 도시를 차용해서 회화적인 기법이나 그림 그리기의 다양한 변주와 미묘함을 실험하는 쪽으로 풀어내고 있다. 따라서 내가 흥미롭게 보는 점은 바로 도시라고 하는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작가가 그림을 만들어가는 여러 회화적 기법과 방법론의 변주에 있다. 사실적인 재현이었다가 순간적으로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리거나 몽환적으로 퍼지고 스며드는 기법이 공존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슬쩍 부여하기도 하고 아울러 사물이 지닌 지시적 색채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동일한 색조로 마감되거나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분위기를 짙게 드리우는 연출을 통해 환상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대체로 건물은 디자인적 패턴구성으로 날카롭게 구획되어 있다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나무와 풀들은 부드럽게 이완되어 퍼져있고 달리는 자동차와 스쳐지나가는 행인들은 빠른 속도로 문질러져있다.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의 상대적 대비와 충돌은 화면에 강한 시간성과 운동성을 부여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들은 스치듯 포착된 도시의 풍경이다. 빠른 붓질과 수채화물감처럼 번지고 퍼지는 자취들, 얼룩과 반점 및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채들이 어우러져서 상당히 적조하면서도 고독하고 외로운 도시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준다. 따라서 이 그림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현대인이 겪는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초상이자 그 도시로부터 형성된 감수성과 감각의 지평위에서 융기되어 나오는 이미지에 다름아니다. 도시의 권태와 외로움 그리고 무미건조함을 엿볼 수 있는 것도 그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회화에서 도시공간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다루는 작업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것은 도시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그만큼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공간이자 우리 삶을 규정하는 총체적 시스템임과 동시에 내면의 심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기제임을 드러낸다.
김한나 작업의 몇몇 작품에서 엿보이는 이 작가만의 풍성한 회화적 터치와 민감한 색채, 감수성과 감각의 더듬이로 포착한 징후적 이미지들은 무척 매혹적이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린 그림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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