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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라가 그린 매화그림

박영택

서미라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매화를 그렸다. 구체적인 주변 풍경은 지워지고 슬쩍 산의 능선이나 대지, 바다나 강을 연상시키는 흔적을 바탕으로 하단이나 중심에서 매화나무가 드세 있게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아마도 거친 날씨나 바람, 추위나 혹독한 환경에서도 흰 꽃망울을 피우는 매화의 자태나 속성을 강조하려는 구성인 듯하다.
강요배가 그린 제주도의 거친 바람에 뒤척이는 수선화를 그린 그림이나 권순철의 용마산, 이상국의 나무, 손장섭의 당산목, 이강일의 소나무, 이재삼의 매화나무 같은 것들이 연상된다.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서 엿보이는 공유성이 있는데 그것은 식물성의 세계를 빌어 전통사회에서 기능했던 식물에 부여한 인문적 의미를 환생시키는 한편 그것은 통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치로 다룬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군자에 대한 번안이고 계승이자 해석인 셈이다. 굳이 전통의 계승 같은 의미를 의도적으로, 목적론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히 식물을 대하는 태도에는 선인들이 품었던 마음의 자락들이 유전되고 있는 것 같다.

서미라는 유화물감의 질료성과 드센 붓터치를 빌어 선비들이 숭상했던 매화의 덕목을 부단히 분출시키고자 한다. 모필과 먹을 대신해 유화물감과 붓을 빌어 화면을 채우고 덮어나가면서 끈적이는 질료와 물성으로 여백을 대체한다. 그 스산하고 황량한 느낌을 자극하는 단색조의 색채와 표현적인 붓질,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한 배경 등이 어우러져 전통사회에서 정신적 세계를 표상한 매화의 의미를 형상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분위기의 연출로 너무 앞서면 보는 사람이 좀 불편해진다. 드라마가 과잉된 작품은 감동을 반감시킨다. 새삼 사군자./식물성의 세계를 오늘날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다.
옛사람들은 식물성의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길을 살폈다. 왜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결같이 동물성의 육체를 지우고 식물성의 존재가 되기를 갈망했을까? 왜 난이나 대나무, 바위나 물이 되고자 했을까? 왜 그러한 자연이 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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