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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섭 / 운동태의 자연 풍경

박영택

동. 서양의 공간구도의 근본적 차이는 사물을 보는 눈의 위치를 어디에 있는 것으로 설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서양의 원근법은 고정된 한 눈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가시적 공간을 구성한다. 서양의 회화적 구도는 자아와 세계를 서로 분명한 구획을 가진 고정된 실체들의 관계로서 파악한다. 반면 동양화에서는 고정된 하나의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화, 혼융상태에 있다. 자연의 형태란 다만 고정된, 물리적인 실체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특질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는 고정되지 않는다. 세계는 정지태가 아니라 운동태며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며 고정이 아니라 떨림과 흔들림이란 것이 동양인들이 깨달은 공간, 세계였다. 서구인들처럼 인간이 세계를 고정시킬 때 그 결과물은 개념적 언어이거나 또는 원근법에 의해 프레임 안으로 걸려들거나 카메라 뷰파인더 속의 사각형 속에 갇힌 이미지일 뿐이다.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고 본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 아니라, 현상의 경험이었다. 결국 그 응시법은 다원적 시점이고, 움직이는 시점이 된다. 아울러 복판에 내재한 시점이다. 시점을 풍경의 복판으로 옮겨가는 것 즉, 그림 안에서 움직이는 관점인 것이다.
알다시피 자연계의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풍경은 단 한 번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것은 수시로 돌변하며 격렬한 시간의 흐름 속에 환각적으로 다가왔다 이내 사라지면서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기억과 사라지는 시간의 속도에 따르는 몸, 의식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찰나적인 순간 속에서만 풍경은 있고/ 없다.
김장섭은 한국의 어느 자연풍경을 찍었다.(금산갤러리, 3,21-4.8) 의도적으로 특정한 풍경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저 물질덩어리인 풍경이다. 풍경은 엇갈리고 이분되는데 그 사이로 필름에 찍힌 실재적인 문자, 즉 필름의 종류와 생산회화의 정보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프린트된 사진이 실재가 아니라 물질이라는 것이다. 그는 눈앞에 있는 풍경을 한 컷 찍은 후 다시 한 컷 찍었다. 섬세하게 재현된 풍경이 조금 기이하게 엇갈린다. 따라서 이 풍경사진은 명백히 풍경이면서도 풍경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진 찍기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 풍경을 본다는 것이 그저 눈앞에 있는 대상을 관습적 시선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를 질문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자신이 하는 행위를 객관화하고, 거리를 두고 보겠다는 태도다. 이는 사진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회의하는 태도다.
“분명 나는 사진에서 말하는 실재를 믿는 편은 아니다. ‘대상을 본다’라는 구조 속에 있는 한 사진은 언제나 기계(과학)와 생각(예술) 사이에서 진동할 수밖에 없다”(김장섭) 작가란 존재는 자기 앞의 사물에 자신의 몸과 의식으로 관여하는 이들이다. 세계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읽고 반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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