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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생각, 그 미술적 여정과 변주

박영택

 길은 인간적이다. 본래 자연계에는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몸으로 밀고 나간 자취, 인문적 흔적이 이내 길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그 뒤를 따르는 이들에 의해 기억되고 부단히 다져져 역사와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니 길은 그 길을 요구했던 이들의 생과 그 길을 통해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절박한 욕망을 상상하게 한다. 무엇이 그 길을 갈망하게 했을까? 그래서 대지에 난 길들은 순연한 생의 지도로 다가온다. 풍경은 길이 있음으로 인해 비로소 인간적인 텍스트가 된다. 따라서 길을 보고 읽는 것이다.  그 길이 그려진 그림 또한 읽는 그림이다. 나는 화집과 도록을 들춰가며 수많은 그림을 보고 있다. 그것이 직업이고 일이다. 어느 날 문득 그림 안에 그려진 여러 길들을 생각해보았다. 그 길이 무엇인지 읽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내게 그림은 자꾸 무엇인가를 욕망하게 한다. 이미 그림은 어떤 욕망으로 인해 발생한 것일 진데 거기에 기생해 나는 또 다른 욕망을 얹혀놓고 있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 같은 일일 것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산수화나 인물산수화는 언제나 즐겨 감상하는 그림이다. 현대미술의 그 현란한 작업들을 질리게 보고 온 날이면 나는 고요하고 소박한 옛그림에 의해 치유된다. 그 그림들은 한결같이 산이나 바다로 난 작은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작은 선비/고사의 뒷모습이 있다. 그런가하면 산 속에 작은 집에 선비 홀로 좌정하고 앉아 책을 읽거나 창밖을 관조하고 있다. 세상을 등지고 자연으로 들어와 칩거하면서 독서에 열중이거나 자연의 이치나 순리를 깨닫고 있는 선비의 참모습을 식물처럼 안겨주는 그림들이다. 그림 속에 난 길이나 다리는 또 다른 생의 길의 은유이자 현실을 등지고 과감하게 자연으로 들어와 맹렬정진해야 하는 구도의 길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그 그림들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세상을 끊고 물러날 때와 세상으로 나갈 때를 기다리는 결단의 선택이 칼날처럼 놓여진 그림이기도 하다. 선비들은 자연에서 맑은 성정을 배우는 한편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인생을 성숙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그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고 감상하였다. 그림에서 그런 운치 있는 생애를 추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전통회화의 진정한 멋이고 선비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그 같은 멋은 죄다 사라져버렸다.
여기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작은 그림이 있다. 정선이 금강산의 절경 8군데를 그린 화첩 속에 있는 그림이다. 금강산도 화첩에는 정양사, 표훈사, 만폭동, 비로봉, 은선대, 백천교, 낙산사, 삼일포가 실려 있는데 이 그림은 바로 낙산사(洛山寺)를 그린 것이다. 낙산사 앞 동해바다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나선 선비들의 행렬을 그린 그림이다. 당대의 명필 이광사(1705-1777)가 그림 안에 화제를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을 찾는 나그네 맘 바삐 누대에 올라 높은 난간 기대이니 안계(眼界)가 길구나 소낙비 지나갈 제 하늘은 멀고 푸른 산 끊어진 곳 바다가 아득하네 관음굴 터진 곳은 천년이나 예스럽고 의상대는 높직하여 오월이 시원하네 저물녘의 물과 바람 안개 모두 불어내니 부상(扶桑)에서 솟는 햇살 보기 좋구나 낙산사에서”
가파른 산에 난 작은 길 위에 몇 사람이 모여 있다. 장엄한 해돋이 장면을 보기 위해 그 길을 걸어 올라온 것이다. 손가락으로 해를 가리키는가 하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올라가는 이도 있다. 넓고 깊은 바다와 넘실거리는 파도의 모습이 화면 끝까지 올라오고 있다. 그것은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는 이의 시선에 계속해서 따라붙은 바다의 수평선이다.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렇게 생성중이고 활력적이다. 살아서 숨을 쉬며 마냥 뒤척인다. 바다를 보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계의 풍경을 뒤로 하고 가파른 산을 타고 앞으로 밀고 나갔다. 그곳까지의 길은 앞선 이들이 만들어놓은 길이고 동일한 욕망에 의해 가능한 길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정상에 서서 드디어 수면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고 영원히 소진하지 않는 바다의 출렁임을 보았다. 그림속의 선비는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순환과 이치를 새삼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오로지 ‘영원한 지금’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인의 순환적 시간관이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결과적으로 투명한 외로움과 목숨 가진 유한한 존재들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서글픔 같은 것을 만난다. 거대한 영원 앞에서 찰나적인 생을 살다 소멸될 운명에 처한 이들의 꿈같은 삶이 그런 것이리라.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과 자신이 유기적 연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자연의 무한 영역에 자신을, 주체의 감각과 사고를 열어두는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적 주체의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의 타자성'에 참여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깨닫는 일이었다. 바다로 난 가파른 길이 그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길 위에서, 자연경관을 조망하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전통 산수화는 당대인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인식행위였다. 그림 안에 그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삶의 유토피아를 가설해 보는 일이었다. 선인들이 자연과 유기적 연관을 맺으려 그 거대한 생명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란 존재를 자연계와 연결하려는 이 타자성에의 지향은 무척이나 소중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근대는 전통적인 삶과 생의 욕망이 다른 식으로 대체된 시기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꿈꾸었던 생의 욕망의 흔적 역시 좀처럼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전통이다. 이상범(1897-1972년)이 그린 이 풍경은 20세기 초 당대의 풍경이다. 충남 공주의 산골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온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향토의 야트막한 산등성과 스산한 잡목과 잡풀, 찌그러진 초가지붕, 농부의 모습을 먹과 화선지로 일평생 그려온 이다. 수평으로 자리한 구도에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 단색조로 펼쳐져있다. 건조한 대기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상단에는 야트막하니 연이어 있는 산 능선이 그려져 있고 소를 앞세운 남자의 굽은 등이 작은 개울물과 역방향으로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하단에는 작은 천이 졸졸거리는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 듯이 그려져있다. 작가 특유의 반복적으로 끄적이는 붓질이 마냥 청각적인 것이다. 이 그림 속의 길은 먹고 살기 위해 농사와 노동을 하며 반복해서 떠나고 돌아오는 길을 보여준다. 일하러 나가는 길, 귀가하는 길이 겹쳐지고 그 길을 오가며 절실한 목숨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들의 순연한 노동을 떠올려준다. 이상범은 구한말과 일제식민지시대,6.25전쟁 등의 격변을 통과하면서 고단하고 가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서민의 시선으로 우리네 자연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박수근(1914-1965) 또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50-60년대 우리 모습 가운데 근대화의 변두리에 남겨진 삶의 정경만을 소재로 택하였다. 근대화 공간의 가장 빈한했던 구석들에 대한 신화화인데 집안일을 꾸려가는 아낙네, 그들이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 이들의 일터나 놀이터였던 동내 어귀나 길, 냇가, 언덕, 개천가 등이 그것이다. 그 공간은 박수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즐겨 다룬 공간은 집, 골목, 마을, 빨래터, 자연(강변, 나무), 거리 그리고 시장이다. 그 공간은 박수근의 삶이 반경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살고 일하는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대부분 원경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대상을 보는 작가의 관조적 시점이 엿보인다.
짐을 머리에 인 여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동네로 들어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박수근 특유의 화강암 질감과 돌이나 벽의 색감을 찐득하게 머금고 있는 화면에는 소박하고 강직한 선으로 간결하게 대상의 윤곽이 그어졌다. 아마 행상을 나간 엄마가 아들과 함께 귀가하는 장면 같기도 하고 장에 나간 엄마를 동네 어귀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아들이 드디어 엄마를 발견하고는 기쁨에 겨워 손을 잡고 귀가하는 장면인 듯도 하다. 커다란 나목 두 그루가 직립하고 있고 그 아래로 동네까지의 기다란 길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가족이 서있다. 무척이나 서정적인 장면이다. 하여간 박수근의 그림은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우리 서민들의 삶을 이토록 ‘짠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자기 주변의 서민들의 생애를 담담하게, 착실하게 그렸다. 오로지 그렸고 가난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당대의 풍경, 그 진실을 소박하게 담았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을 그리고자 했다. 자기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절실히 그리고 싶었던 것만을 그렸으며 그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여긴 이다. 그래서 그의 눈에 강인한 생존력과 근면과 성실, 정직하고 따뜻했으며 욕심 없이 착한 이들이 밝고 지나간 길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저 길을 걸어 먼 곳까지 가서 행상을 하거나 장에 물건을 내다팔고는 그 돈으로 새끼들을 길러냈던 모든 어머니들이 두 발로 걸어 다녔던 그 길 말이다.
 
 삶은 내 앞에 자리한 길고 긴 길이다. 물론 그 길이 언제 느닷없이 사라지고 말지 알 수는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그 길이 존재하는 데까지만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삶이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생은 무지막지한 욕망이라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한다. 그러니 생의 길이란 그 욕망이 그려놓는 길이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하루라는 생의 길을 가야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자 여정이지만 무사히 그 길을 돌아와야 하는 게 삶이기도 하다. 집을 나서서 생활전선으로 나갔다고 일정한 시간을 지내고 다시 집으로, 잠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그 길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난해한 길들일까. 노석미(1970-)는 매일 걸아야 하는 삶의 길을 일러스트레이션 형식으로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명도 높은 색채와 단순한 형태, 그리고 제한된 색채, 흥미로운 문구가 결합되어 재미있는 그림이야기를 만들었다. 등산복 차림을 한 작가 자신이 산 속으로 난 좁고 가파른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 같다. 높고 뾰족한 붉은 산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 길가에 낙석주의보 팻말이 서있다. 그러나 이미 들어선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이 그림은 말한다. “피곤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싫다....”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는 하단은 그림 속 인물의 중얼거림, 독백과도 같다. 어쩌면 삶이란 매일 걸어야 하는 반복되는 그 길 위에서 피곤해하고 지치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결코 세상으로부터 아픈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 없는 삶은 결코 없고 지치고 피곤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있는 한 내 앞에 난 삶이란 길을 계속 걸아야만 한다. 공감이 가는 그림이자 무척이나 슬픈 그림이다.
이렇게 나는 길이 있는 몇 개의 그림들을 보고 또 봤다. 그 길을 통해 새삼 길에 대한 사유를 부풀려보는 한편 내 앞의 삶이란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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