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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순 / 표현에서 사유와 직관으로

하계훈



표현에서 사유와 직관으로 

하계훈 | 미술평론가



서효숙이 작품 속에 일관되게 담아온 주제는 ‘생명’과 ‘관계’라는, 우리들의 삶에서 근본을 이루는 명제들이다. 평론가로서 필자와 작가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10여 년 전으로서, 그 당시 작가는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모전 수상 및 개인전과 단체전 참가로 작가의 초기 도약을 꿈꾸던 시기를 결혼과 육아라는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일과 맞바꿔서 붓과 캔버스를 접어놓았던 시간의 터널을 막 지나왔었다. 
이러한 만남이 있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최근에 다시 작가의 작품을 대했을 때, 처음 작가와의 만남이 상세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육아의 공백기를 넘어서 다시 붓을 잡는 작가의 의욕이 강하게 읽혔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본격적인 작가 활동이 유보된 기간 동안에도 서효숙은 육아와 가정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종종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창작의 감각을 놓지 않았다. 비록 전업 작가의 의욕과 투지를 강력하게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의식적으로나마 작품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음으로써 조금 늦은 나이었지만 다시 창작활동의 전면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생명과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서효숙 작가가 선택한 주요 모티브는 화면을 가득 채운 원색의 꽃잎이었다. 그리고 그 꽃잎 위에 비추는 햇빛의 작용은 관람자들이 쉽게 초자연적인 그 무언가의 힘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꽃의 모습은 서효숙의 작품 속에서 좀 더 특별하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일상의 소소한 사물이라 할 수 있는 꽃과 햇빛의 작용을 통해서 작가는 시각적 생명력을 넘어서 촉각적, 청각적 신선함까지 작품 안에 담아내어 줌으로써 관람객들의 가슴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치유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꽃잎과 햇빛 속에 내재된 생명과 에너지를 포착한 작가의 관심과 감수성에 의해서 일상에서 무심코 흘려보낼 수도 있는 식물에 불과할지 모르는 꽃이 역동적 에너지와 성장, 부활의 상징으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창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작가는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고, 강의와 작업을 병행하면서 계속해서 꽃의 모티브를 확장시켜가며 빛과 생명을 표현하여 왔다. 빛과 생명에 대한 관심은 그 뒤로도 수년간 작가의 작업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작품의 모티브를 꽃에서부터 나무와 같은 생명을 상징하는 사물로 확대되어가기도 했다. 모티브의 확장과 함께 화면의 구성도 하나의 화면이 두 개의 화면으로 나눠짐으로써 생명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때로는 대상을 일정 거리에 놓고 관조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마치 확대경으로 대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미시적 탐구의 자세로 접근하기도 하는 이중적 시각이 한 화면에 담겨질 수 있었다.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대와 다양화는 자연스럽게 사유의 확장과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로서의 작업 뿐 아니라 교수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중심적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가 캔버스를 마주 대하는 자세는 경험의 축적과 함께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思辨的)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표현 형식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생각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 듯하다.

다음 단계에서 서효숙은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메시지를 보다 깊이 있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모색은 자연스럽게 표현 수단과 재료의 확장이나 전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작가는 이제까지 사용해왔던 캔버스에서 좀 더 자연스럽게 번지고 스미는 물감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한지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꽃의 모티브는 이제 사실적 묘사를 넘어 형상의 중첩과 반복을 통해 점차 추상적 표현으로 진행된다. 꽃잎의 형태가 중첩된 화면은 은은한 깊이감이 심화되면서 재현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인 표현에 의해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를 유도한다.

재료상의 전환과 함께 작가는 색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상징성을 강조하여 주로 푸른색 계열의 색으로 스며드는 물감이 곧 인간관계의 깊이를 심화시켜주는 교감임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서효숙의 초기 작품에서 강렬한 노란 색의 꽃들이 생기와 활력이 충만한 화면을 구성했다면, 후기의 한지 위에 스며드는 푸른색들은 생기와 활력을 바탕으로 삶을 이끌어 온 작가의 사유가 숙성되면서 삶의 현상 너머 본질을 꿰뚫어보는 성숙하고 안정된 시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반 고흐도 노란색은 지상의 기쁨을 상징하는 색이고 푸른색은 천상의 정신과 기품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의 생기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진중함과 원숙함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색채로 표현한다면 이러한 전환이 일어날 듯하다. 

작가의 예술관이 형식의 실험과 표현의 변천을 거쳐 시간의 숙성이 완성을 향하는 과정에서 생명과 인간관계의 좀 더 의미 있는 완성을 위한 시각적 표현으로서 주로 청색을,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한지의 스며듦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청색으로 스며들며 사유되는 인간관계의 상징성은 고귀하고 진지하게 읽힐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청색 계열의 상징성은 성화 속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의 외투를 표현하는 색으로서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색이었으며 재료 측면에서도 청금석(Lapis Lazuli)을 갈아 만든 물감으로 채색하였는데, 이 청금석은 색채의 고귀한 품위와 함께 그 가치에 있어서도 거의 금값과 같은 정도의 고가로 거래되는 귀한 재료였다. 

작가로서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세심하면서도 성숙해진 화가의 눈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사유적 공감능력과 관찰력이 심화되게 된다. 시각적 표현과 정서는 형이상학적 사유와 본질을 꿰뚫는 직관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작가의 작품 안에서 시각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곧 서효숙의 작품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펼쳐 온 작가의 노력을 중간 점검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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