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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박헌열 / 빛을 품은 포용과 포월의 조각

김성호

빛을 품은 포용과 포월의 조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조각가 박헌열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형식적으로 ‘철(凸) 혹은 기둥(柱)’을 중심으로 한 포지티브 형식의 기이한 식물 형상이나 추상적 구조 혹은 초현실적 인체 형상을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요(凹) 혹은 지붕(宙)’을 중심으로 한 네거티브 형식의 그릇(器)혹은 구멍(穴)의 형상 안에 빛을 투과하는 일련의 풍경 조각을 선보여 왔다. 내용으로 풀어 말하면, 전자를 채움과 탈주의 공간이라 칭한다면, 후자는 비움과 포용 그리고 포월의 공간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본다.
 

박헌열, Conversation 221 45x22x105cm,  Marble. 2022



II. ‘철(凸)’ 혹은 ‘기둥’이라는 탈주의 욕망 
박헌열은 1982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자마자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다. 같은 해 그는 제2회 동아미술상을 받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국립미술대 조소과에 입학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가 1987년 이탈리아 카라라국립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에도 오랫동안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며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서울 등 세계무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을 펼치게 된 원동력은 분명 이탈리아 전통의 돌 조각이 지닌 ‘어떠한 힘’에 대한 작가의 굳은 신뢰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탈리아에서의 신진 작가 시절부터 귀국 후 원로를 앞둔 중진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브론즈와 같은 철조와 다양한 매체 실험을 거치면서도 ‘돌 조각’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의 이러한 추측을 방증한다. 그가 견지해 왔던 ‘돌이 지닌 어떠한 힘’에 대한 무한 신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청년기에 맞닥뜨린 ‘견고한 돌이 품은 모든 세계의 가능성’ 때문이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돌이라는 매체가 지닌 볼륨과 매스에 매혹된 채 그것을 깎고 갈아 내면서 일련의 ‘기둥’과 같은 볼록한 형상 속에서 창작에 관한 탈주의 욕망을 매만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 ‘기둥’은 무엇이며 ‘탈주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먼저 기둥은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본 조형 언어다. 그것은 대지에 뿌리를 내린 채 중력에 저항하며 수직으로 키를 키우며 자라는 나무처럼, 혹은 네 발에서 두 발로 직립하며 진화해 온 인류처럼, ‘힘에 저항하는 새로운 힘’이라는 메타포의 언어로 자리한다.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대지를 뚫고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하게 줄기를 키우며 자라는 식물 형상의 작품들을 자주 목도한다. 그것은 튼실한 식물의 줄기 형상뿐 아니라 여러 몸통으로부터 촉수를 뻗어 올리는 강장동물 혹은 연체동물로 보이거나 또는 똬리를 튼 채 트랩(trap)으로 곤충을 공격하는 식충식물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씨앗의 껍질을 허물고 대지의 틈을 뚫고 피어오르는 식물 또는 촉수를 뻗어 적을 포획하는 강장동물처럼 생존을 위한 생명력이란 얼마나 심오하고 위대한 것인가? 그것은 물리력으로 당장 가늠할 수 없지만, 자연의 심층에 거주하면서 시간에 따라 엄청난 힘을 키우는 ‘잠재력’으로 존재한다. 
박헌열의 작품에서 ‘힘에 저항하는 새로운 힘’은 ‘남근’과 같은 상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실제로 남근 형상처럼 보이는 상징적인 추상 작품뿐 아니라 이러한 상징을 유추하게 만드는 다양한 수직형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것은 ‘돌출한 무엇 혹은 기둥’의 형상처럼 ‘폭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있음’을 전제하는 존재론적 근거로 자리한다. 그래서일까? 외형상 식물처럼 보이는 그의 조각은 상단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그 위에 우뚝 선 인간의 형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 인간은 날개를 단 채 태양을 향해 현실로부터 탈주하고자 했던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Icarus)처럼 보이거나, 신과 인간의 중간형인 천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초현실주의 양태로 선보이는 다수의 인체 조각 또한 이러한 탈주의 욕망을 품어 안는다. 실제 철조망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인체상, 기이하게 목을 움츠린 채 서 있는 인체상 그리고 머리가 세 개인 인체상이나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남녀추니상’ 또한 ‘돌출한 무엇 혹은 기둥’의 양태를 띤 채, 현실 탈주의 욕망으로 초현실주의와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박헌열, Forest 146, 49x17x82cm, Marble, 2014


박헌열, A blessed lend, 36x22x64cm, Marble, 2011


III. ‘요(凹)’ 혹은 ‘구멍’의 포용과 ‘빛’을 품은 포월
박헌열의 조각이 품은 또 다른 세계는 ‘요(凹)’ 혹은 ‘구멍’과 같은 비움의 공간이 품은 ‘포용’과 얇은 두께의 돌의 배면에서 ’빛을 투과시켜 창출하는 포월‘에 관한 것이다. 
가히 ‘빛 조각’이라고 할 만한 그의 이러한 작업 경향은 1980년대 작업 도중 여러 실험 속에서 우연한 기회에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가 ‘남근처럼 돌출한 무엇’ 혹은 ‘기둥’의 조형 언어로 탐구했던 식물이나 인체 형상이 ‘탈주의 욕망’과 관계했다면, ‘구멍’과 같은 비움의 공간과 ‘빛의 투과성’을 대리석으로 실험해 온 조각은 ‘포용과 포월의 미학’과 관계하는 것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에서 구멍과 빛은 대리석 질료와 상응하는 가운데 발현된다. 그도 그럴 것이 ‘구멍’은 그가 빛을 품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대리석의 볼륨을 네거티브의 형식으로 덜어내는 가운데 창출된 것이며, ‘빛’은 대리석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새로운 질료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했던 다양한 조형 실험 속에서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견고한 대리석 조각에 빛을 효과적으로 투과시키기 위해서 박헌열은 돌의 한 면을 5mm 정도로 얇게 만든다. 얇은 두께의 대리석 면에 빛이 투과되면서 조각은 은은하고도 영롱한 빛을 품게 된다. 이러한 얇은 두께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리석의 속살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한다. 아울러 얇은 두께 앞에 신묘한 형상의 풍경이나 인체 조각을 함께 배치하고, 조각 몸체 안에 ‘빛’을 효과적으로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관(棺) 혹은 상자의 형태로 돌을 만드는 세밀한 공정과 지난한 노동이 필수적이다. 얇은 돌판의 배면에서 투과하는 빛을 앞쪽에 은은하고도 효과적으로 맺히게 하기 위해서 어둠을 품은 구멍이라는 네거티브의 공간을 만드는 노력은 필연적이지만 어떤 면에서 역설이기도 하다. ‘빛이 거주하는 공간’을 위해 어둠을 만드는 노력을 전제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구멍’은 어떻게 포용의 공간을 형성하는가? 구멍은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철학적 개념어 ‘코라(chora)’와 같은 것이다. 코라는 자궁의 비유처럼 무정형의 덩어리라는 정체성을 품은 공포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무한한 생성을 잉태하는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구멍은 바슐라르(Gaston Bashelard)의 비유처럼 우주를 품은 ‘집’이나 상상과 몽상의 공간인 ‘서랍’ 혹은 ‘상자’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구멍은 그 자체로 빛을 결여한 부재의 공간이지만, 한편 어둠이 충만한 공간이기도 하다. 즉 ‘비움’과 ‘충만’이 혼재한 공간이다. 이 부재의 공간을 영롱하게 만드는 빛의 침투를 통해서 박헌열은 조각을 포용과 상상력 가득한 무엇으로 변주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에서 빛은 포월(匍越)의 공간을 만든다. 한국의 철학자 김진석이 만든 개념인 포월은 경계를 단번에 탈주하는 초월(超越)과 달리, 경계 위를 기듯이 느릿느릿하게 넘어서는 행위를 가리킨다. 박헌열의 이른바 ‘빛 조각’은 대리석의 안과 밖의 공간을 느릿하게 넘어서는 빛을 통해 조각과 조각 아닌 공간을 한데 아우르며 포월의 공간을 만든다. 때로는 거리를 비추는 조명등의 모양처럼, 때로는 빛을 밝힌 집의 풍경처럼, 때로는 노을 속 정령을 품은 숲의 풍경처럼, 때로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무한 생성의 공간처럼 ‘빛’은 그렇게 박헌열의 조각 안에서 포월의 공간을 긋는다.    
한편, 시메트리(symmetry) 안에 미묘한 아시메트리(asymmetry)를 품은 그의 신묘한 작품들은 박헌열이 2021년 20회 문신미술상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이처럼 그는 시메트리의 정형화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아시메트리를 실험하고, 볼록과 기둥과 같은 조각의 몸체에 탈주의 욕망을 녹여 내거나, 오목과 구멍과 같은 조각의 몸체에 포용과 빛을 품은 포월을 녹여 낸 다양한 작업 방향성을 오늘도 지속해서 탐구하는 중이다. ●


출전/ 
김성호, 「빛을 품은 포용과 포월의 조각」, 박헌열 작가론, 『미술과비평』, 여름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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