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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주연 / 외딴 섬에 사는 어중간한 누군가의 ‘풍경-자화상’

김성호

외딴 섬에 사는 어중간한 누군가의 ‘풍경-자화상’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이주연의 신작 개인전은 이전 전시의 맥을 이으면서 도시와 인근의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을 선보인다. 전시 주제는 ‘외딴 점이 사는 외딴 섬’이다. 우리는 여기서 ‘외딴 점’은 작가 자신을 은유한 표현이고, ‘외딴 섬’은 그녀가 위치한 삶의 시공간적 배경을 은유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 이주연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게 건네어 주는 ‘은유의 풍경-자화상’이라는 성격의 ‘선물’이라고 할 만하다. 어찌 보면 ‘외딴 점이 사는 외딴 섬’이라는 것이 ‘소외를 안고 사는 현대인이 거주하는 삶의 맥락’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전시는 불특정 다수에게 헌사하는 ‘은유적 풍경-초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는가?  



두 개의 창 밖 2020, 면천에 아크릴, 마커펜, 164cm x 203.4cm



II. 홈 파인 공간 속 외딴 섬 
작가 이주연은 도시 풍경, 구체적으로 말해, 도심에서 이격된 도시 변두리 풍경을 그린다. 그것은 그녀가 삶의 일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거주의 공간이다. 그곳은 아직 개발되지 않거나 난개발된 ‘여백의 풍경’ 사이사이에 ‘밀집된 아파트 단지’와 같은 외딴 섬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는 곳이다. 
작가는 이 외딴 섬들에 주목한다. 풍경 속에 홈을 파고 수로를 만들고 벽도 쌓아 올려 만든 외딴 섬! 우리는 안다. 문명의 공간은 들뢰즈(G. Deleuze)가 살피고 있듯이, 자연의 매끈한 공간(l'espace lisse) 위에 ‘틈’을 만든 '홈 파인 공간(l'espace strié)'인 것을 말이다. 고대 인류가 유목에 안녕을 고하고 정주(定住)를 시작하면서 짓기 시작한 셸터(shelter)는 이러한 ‘홈 파인 공간’의 원형(原型)이다. 비바람과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했던 피난처로서의 셸터는 인간 집단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벽으로 인한 틈과 거리를 만들었다. 이 거리를 중재하고 통제할 수장을 뽑고 위계를 만들면서 외려 지배와 피지배를 공고히 한 문명은 집단 내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소외를 야기할 뿐이다. 오늘날 아파트의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것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문명 스스로 가둔 ‘홈 파인 공간’ 속 ‘외딴 섬’으로서 누리는 자유이자 한편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소외인 까닭이다.  
작가 이주연은 작품 <외딴 섬>에 이러한 자유와 소외의 이중 경험을 표현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사람이 참 많이 다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허허벌판이다.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지만 단지 내에는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북적북적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특히 이사한 직후에는 아이들이 간식을 사 먹고, 소리 지르며 이야기하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낯설었다. 고립에 익숙해가던 나에게 환상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영화나 연극처럼 생생히 보는 듯했다.” 작가의 말대로 도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는 도시 전체 공간에서는 허허벌판 속 ‘외딴 섬’처럼 고립된 소외의 공간이지만, 그 안의 거주자들, 특히 노인과 아이들에게는 열린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이주연은 이 ‘은유의 섬’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작품 <외딴 섬>을 완성했다. 그녀는 이 작품에 자신의 아파트 층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담았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로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오후, 노란 횡단보도가 내려다보이는 단지 내 도로와 그 위를 걷는 거주민들, 그리고 야트막한 인근의 상가 건물이 어울려 만드는 조용한 풍경은 캔버스 화면에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낯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조형 언어인, 포토 콜라주(photo collage)처럼 표현되어 있다. 즉 피사체에 대한 시점(視點)과 시점(時點)이 각기 다른 사진 이미지들이 절단면의 경계를 만들면서 하나의 화면 안에 중첩되는 포토 콜라주처럼, 이 작품은 이질적인 두세 화면이 ‘홈 파인 공간’처럼 서로를 경계를 두고 만난다. 
다른 작품 〈어떤 집〉에서 이러한 포토 콜라주의 효과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일견 동일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시점(視點)으로 표현한 집을 볼 수 있는데, 각기 밤과 낮이라는 이질적인 시점(時點)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파란색 지붕을 이고 있는 좌측 집은 토속적인 한옥 구조를 지닌 밤의 풍경을, 우측 집은 시멘트 블록으로 된 외벽을 한 채 비 내리는 낮의 풍경을 담고 있다. 동일한 집의 외부와 내부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좌측 하단의 잔디와 우측 하단의 마루의 절단면을 명확히 시각화함으로써 이 작품이 두 개의 다른 시점(視點)과 시점(時點)으로 화면을 구성한 포토 콜라주 방식의 결과물임을 드러낸다.  
또 다른 작품 〈두 개의 창밖〉은 작가의 작업실에 있는 두 개의 창을 통해서 보이는 외부 풍경을 각기 다른 시점(視點)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다. 여기서 완성된 그림은 두 시점을 콜라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하나의 시점으로 된 풍경처럼 보이는데, 그러한 까닭은 두 개의 창이 인접한 거리에 있는 까닭도 있거니와 마치 포토몽타주(photomontage)처럼 자연스럽게 두 시점을 이어붙인 까닭이기도 하다. 이러한 포토몽타주의 방식은, 대개의 포토 콜라주가 잘린 면 외부에 여백을 남기는 것과 달리, 여백을 지우고 마치 원래 ‘거기 있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미지를 위장한다.  


미완성 퍼즐 2018-2019, 캔버스에 아크릴, 80.3cm x 100cm


미완성 퍼즐 2 2020, 캔버스에 아크릴, 마커펜, 65.1cm x 100cm



III. 외딴 섬 속 ‘빈 곳’ 혹은 ‘빈자리’   
그리기의 조형 언어로 ‘포토 콜라주’의 제작 방식을 차용하는 이주연의 작업은, 앞서 언급한 작품 <외딴 섬>이나 도시공원을 시점(視點)이 다른 네 개의 화면을 전개도처럼 펼쳐놓은 작품 <찰나의 숲> 등 다수의 작품에서 마치 ‘홈 파인 공간’처럼 절단된 여백을 남긴다. 후자의 작업에서, 공원 산책로를 지나는 두 여인을 중심에 두고 네 방향으로 드러누운 장면들 옆으로 남겨진 회색의 여백은 마치 실제 ‘포토 콜라주’가 올라가 있는 바탕과 같은 효과를 유발한다. 
포토 콜라주의 효과가 작동하는 이주연의 작품에서 ‘여백’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흔히 여백은 쓰임새로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진 잉여의 공간 혹은 주요 사건으로부터 이탈한 부재와 결핍의 공간으로 간주되지만, 그녀에게 여백은 이질적인 이미지의 만남을 수용하는 존재의 장이자, 이미지의 경계면들이 만나는 접점을 열어두는 생성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이주연의 작품 속 여백이 동양철학의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가르침대로 ‘비어 있음(空)’ 자체가 ‘만물(色)’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여백은 현재로선 조용한 무엇이지만 언젠가는 무엇인가 채워질 가능성을 잉태한 ‘생성을 위한 잠재태(virtualité)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작가 노트를 살펴보자. “공터를 보면 왠지 퍼즐판 같다. 주어진 공간에 알맞은 크기로 건물이 지어질 것을 상상해서 그런 걸까. 건물과 건물 사이에 빈 곳을 보면 얼른 무언가로 다시 채워야만 할 것 같다. 갑자기 비어있는 흙바닥을 보면 어색하고 허전하다. 늘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도시 속에서 느닷없이 생니가 빠진 느낌이다. 흐트러져있는 공터 자체가 반듯한 퍼즐 조각으로 맞추어 완성되길 기다리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작품 <미완성 퍼즐>에서 우리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앞에 잡초가 우거진 채 자리한 어수선한 흙바닥의 공터를 볼 수 있다. 바닥에 홈을 파고 만들어진 ‘수직의 공간’은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었지만, 수평의 공간은 공터로 남아 생성을 위한 잠재태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그곳에는 흰색의 띠들이 ‘무엇인가 생성될 가능성’의 경계를 퍼즐처럼 구획한다. 또 다른 작품 <미완성 퍼즐 2>에서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공터에, 파란 방수천이 공사 현장의 무엇인가를 뒤덮고 있는 모습을 선보인다. 어수선한 이곳을 무엇인가 정리하려는 듯, 흰색의 띠는 공터를 퍼즐처럼 구획해 놓았다.       
이주연이 ‘외딴 섬’으로 표현한 일상의 삶에서 만난 공터, 즉 ‘빈 곳’은 어떤 면에서 ‘빈자리’처럼 간주된다. 전자가 ‘비어 있는 상태’ 자체를 강조한다면 후자는 ‘무엇이 혹은 누군가 있어야 할 곳’을 상정한다. 즉 그녀는 공터를 그저 ‘빈 곳’으로 간주하기보다는 무엇인가 채워지거나 생성될 ‘빈자리’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꿈꾸는 생성의 공간으로 변주한다. 상상으로 만드는 ‘현실의 재구성’인 셈이다.   
이러한 관심 때문일까? 작품들은 넓은 공터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목도하는 비좁은 ‘틈’과 ‘사이’에 주목하면서 ‘빈자리’에 관한 생성의 꿈을 펼친다. 작품들은 건물 외벽에 생긴 ‘틈’, 건물 아래로 뚫린 ‘통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생성을 위한 공간으로 간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주연은 A와 B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틈’과 ‘사이’를 양자를 위한 소통과 화해의 공간으로 내주려는 사유에 골몰한다: “공간의 안과 밖을 이루는 경계들이 모이면 다양한 집합체를 이루게 된다. 각각의 공간들은 분리된 듯하지만, 상대적인 안과 밖, 통로의 역할이 생기면서 연관성이 생겨난다.” 이러한 차원에서 캔버스라는 프레임 안에 경계의 집합체를 끌어와 탐구하는 작품들은 공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간의 문제의식으로까지 확장하게 된다. 빈자리를 야기한 과거, 현재의 빈자리, 그리고 빈자리를 메울 무엇인가가 생성될 미래까지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적 풍경2, 2014, 캔버스에 아크릴, 60.6cm x 80.3cm



IV. 외딴 섬 속 외딴 점 - 어중간한 누군가  
그런데 이주연은 자신의 작업에서 왜 이러한 도시 외곽의 공간을 특별히 소재로 삼고 ‘틈’, ‘사이’, ‘여백’을 통해 유독 ‘빈 곳’과 ‘빈자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외딴 섬’으로 은유하고 그곳을 자신의 심리를 투영하는 공간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풍경 속에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고 고백하면서 주거지 주변에 쓰레기로 버려진 많은 사물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를 성찰한다. 그것은 서로 독립된 사물일 뿐이지만, 작업 속으로 들어와 서로의 경계를 풀고 상호 소통하면서 관계의 문제로 이어지고 인간관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녀에게 있어, 도시 외곽의 풍경과 더불어 ’빈 곳’과 버려진 사물 속에서 발견하는 은유의 인간관계에 대한 심리, 즉 “소외나 군중 속의 고독 같은 쓸쓸함 등의 감정”은 작업을 이어가는 힘이다. 
여기서 작품 〈한 어중간한 사람이 있었다〉를 살펴보자. 각각의 종이를 총 4장으로 구성한 가로 6m, 세로 4m 크기의 이 작품은 오일 스틱과 오일 파스텔로 그린 도시 외곽의 거대 풍경이다. 기존의 작품에서처럼 이 작품도 절단된 다시점의 이미지들이 포토 콜라주의 방식으로 서로 만나는데, 여기에는 빌딩, 아파트 단지와 가로수, 정원의 넝쿨, 자연의 숲속뿐 아니라 파편화된 사람의 이목구비가 한데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 여기에 덧붙여 4장의 이미지에 각각 작가 노트와 같은 단상을 텍스트로 기록해 놓음으로써 사물에 투영된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러한 텍스트를 이끄는 내러티브는 자신을 삼자화해서 표현한 ‘어중간한 누군가’라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딱히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그림을 그리는 어중간한 그, 여러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칭찬, 격려, 조언, 비판을 받는 어중간한 그, 남들보다 모자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나지도 않은 어중간한 그’와 같은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내러티브의 주인공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 확신과 불신, 공동체 귀속과 소외를 오가는 가운데 살고 있는 작가 자신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그녀 자신을 투영한 자화상이라 할 만하다. 가히 ‘외딴 섬에 사는 외딴 점’인 것이다. 
관람자들은, 네 쪽으로 분리된 이 거대한 작품 사이사이를 거닐면서 또한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작품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에스키스처럼 작업한 16점의 드로잉 소품들을 둘러보면서, 분리되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간, 그리고 하나의 세계이지만 독립된 여러 세계를, 마치 자신의 자화상인 듯,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동·정릉 4동 2014, 캔버스에 아크릴, 97cm x 130.3cm



V. 에필로그 
작가 이주연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외딴 섬’으로 은유하면서 그것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풍경을 화폭에 담아왔다. 특히 자신의 일상에서 흔하디흔한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외딴 점’으로 은유한 자신을 투영하면서, 자유와 소외와 같은 사물과의 관계에 관해 관심을 기울인다. ‘작가의 은유화된 자신’을 풍경에 투사한다는 차원에서 필자는 그녀의 작업을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은유의 풍경-자화상’이라고 정의했다. 한편 그것은 작가와 공감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헌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작품 속에서 직조하는 사물과 사물이 생성하는 관계는 마치 오늘날 SNS에서 사용되는 해시태그(#)처럼 서로의 관계를 잇고 하나의 전체상을 만든다. 이주연은 이러한 관계와 전체상을 포토 콜라주 기법의 회화로 실험하면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 문제를 성찰한다. 사실 그 경계란 그녀가 주시했던 공간과 사물의 ‘틈, 사이, 빈 곳’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촉발한 것이다. 이러한 ‘빈 곳’을 ‘폐기된 잉여물, 부재의 공간’으로 바라보기보다 ‘빈자리’처럼 미래의 생산을 기대하는 ‘생성의 장’이자 ‘잠재태’로 바라본 것이다. 자신을 ‘어중간한 누군가’라는 대체 인물로 삼자화하는 이주연의 입장에서, 미술 창작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명쾌한 답을 내리는 과정이기보다 끊임없이 ‘생성할 무엇’을 고민하고 문제 제기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가는 그녀의 예술 실험이 빛을 발하기 바란다.● 


출전/ 
김성호, 「외딴 섬에 사는 어중간한 누군가의 ‘풍경-자화상’」, 카탈로그 서문, 『이주연』, 리각미술관, 2022. 《 이주연-외딴 섬이 사는 외딴 섬 》(2022. 3. 11~5. 8, 리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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