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아롱진 무지개 풍경
때때로 그림은 터의 무늬요, 터의 자취다. 마음 사로잡아 꿈틀 파닥거리는 풍경이 손끝으로 나가 캔버스에 아로새긴 것이 아름다움의 터무니다. 덩이 물감이 무르고 매끄럽게 붓을 타면서 몽글몽글 터무니를 피어 올렸으나 붓짓은 물 찬 제비같이 산드러졌다. 사로잡힌 마음이 몸을 움직여 듬성듬성 뒹구는 돌을 깨우고, 모래를 깨우고 나무를 깨우고 이끼를 깨우고 하늘을 깨울 때 붓은 한없이 가벼운 물너울 춤을 춘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그림은 크고 작은 물너울의 무늬 결이 다다른 해안선(Shoreline)의 속살이다.
마음이 팔을 움직여 슬몃슬몃 제자리 잃은 길옆을 더듬고 멀리 있는 빈터를 당기고 불쑥 꺼져버린 땅 아래를 솟구치게 할 때 붓은 가차없이 밀고 내리고 휘어감아 올리면서 산숨(生氣)의 굿춤을 춘다. 김세은의 그림은 그렇게 스스로를 잃어서 비어버린 곳곳의 터가 산 무늬로 살아 오른 가쁜 숨이다. 숨결이다.
에릭슨과 김세은의 그림은 무늬와 숨결이 여울져 맺히고 세차게 쏟아져 흐르면서 아롱진 무지개로 수수하고 맞물림으로 야무진 풍경이었다.
날것의 속살
그는 스웨덴에서 두 눈 크게 뜨고 인공위성의 눈으로 이러 저리 동해(東海)를 살피며 풍경의 살갗을 더듬었다. 그림 그리워 그리는 동해의 이곳저곳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요, 소름 돋지 못하는 몸의 불러일으킴이었다. 그의 마음씀이 깊었으리라. 마음 씀씀이로 그린 그림이리라. 풍경을 일으키고 마음을 일으켜서 끝끝내 지어올린 그림들은 놀랍도록 싱싱한 무늬들이다. 그 무늬 하나하나를 좇아 걷다가 날다가 뛰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봉우리에 앉으면 그가 펼쳐놓은 산들바람에 휘감겨 깊숙이 더 깊숙이 스며든다.
자잘하고 소소한 여기, 밝고 뚜렷한 저기, 꽃내음 흔들리는 거기, 딱 맞아 떨어지는 여기저기 사이, 어쩌다 열려 열린 드넓은 푸르름. 넋 놓고 잠겨서 그림과 나 사이의 때빔(時空)을 넘어서니 불현듯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펼쳐지고, 강세황의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에 실린 <영통동구(靈通洞口)>가 솟았다. 이곳의 풍경을 건너편 저곳에서 꿈결처럼 거닐며 그린 그림이니 이 그림은 몽유도원이요, 저곳에서 여기 이곳에 깊이 내려 해안의 낱낱을 더듬어 온통을 그렸으니 기행첩이 아니고 무엇일까? 감응이 일고 감흥이 밝아서 그린 그림들은 동서(東西)의 미학을 나누지 않았다. 둘이 하나라고 뭉뚱그릴 수도 없었다. 그것들은 서로 갈마들어서 숨을 틔운 가장 그림다운 그림의 옹알이였다. 첫 숨의 그림 무늬! 그림의 숨 무늬!
유리창 너머에 걸린 김세은의 회화를 보았다. 내 앞에 서서 두런두런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 그림은 말이 될 수 없는 말을 잇고 붙여서 속삭였는데 무어라 말하는지 도무지 귀가 열리지 않았다. 끊어지는 말을 귀로 좇으며 눈으로 듣다가 손가락으로 받아서 꼼지락 거렸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듯 선은 미끄러지지. 아니 이쪽저쪽에 걸쳐서 이어 붙어야지. 끊어서 끝나고 끝난 곳에서 넘어가. 솟구쳐서 밟히는 그림자를 빼. 온갖 씨앗들의 무덤으로 살아가는. 모든 경계가 맞닿아 ‘서로섬(界面)’을 이루도록. 가 닿을 수 없는 풍경 아니, 풍경이 될 수 없는 너머. 상상되어진 도시의 바깥을 이루는 깊숙한 내부 아니, 찢기고 갈라진 토지의 빈틈이 되어버린 현실의 바깥. 끝없이 열려서 함부로 넘어갈 수 없는 닫힌 경계 아니, 한 걸음만 내 디디면 쉽게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 바로 거기.풍경의 날것에 마음을 심어 틔우며 터무니의 닫힌 가슴을 여는 그의 그림은 세차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붓으로 칠하고 쌓고 나이프로 긁고 문지르고 돌린 듯한 캔버스는 숨차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에 밀리고 몰리고 물린 자리들은 제 자리 제 꼴 갖지 못해서 추상(抽象)이다. 그는 그 추상을 훔쳤다. 그의 그림이 추상처럼 보이는 이유는 도시가 차지한 소유권에도 불구하고 사이사이 쓸모없는 자투리로 남아 스스로 자라는 무늬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있어서 자유로운 그 터무니는 도시에 끼여 있는 빈틈이요, 아무도 갖지 못하는 속살이다. 그는 그 속살의 결을 캔버스에 짓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찾듯이 붓으로 더듬어 만질 때, 한 번 그어진 붓의 자취를 타고 넘어 묻은 것들이 서로 말끔하게 화해할 때, 들이덤비어 야무지게 훔쳐서 휘어감을 때, 그의 그림은 마치 몸으로 부활하듯 갈비뼈가 드러나고 쇄골이 솟았다. 어깨가 서면서 결은 올발라 졌다.
한반도로 옮겨 남북의 어딘가를 오갔다. 동해의 해안을 따라 확대하고 축소해도 그의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기 DMZ와 달리 그의 숲은 다 푸르러서 풍경이 세워지지 않았고, 해안이 끝난 곳에 솟은 산들은 낮게 엎드려서 일어나지 않았다. 더 낮게 더 높이 오르내리는데 차츰 뚜렷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높고 낮은 풍경의 사이사이에 이슬이 맺혔다. 비가 쏟아졌고 바람이 불었다. 그늘이 손짓을 하고 달아나지 못한 달빛이 숨어서 어른 거렸다. 천천히 더하고 덜어내고 조금조금 눈을 내려 올려 보니 나무가 섰고 바위가 섰고 산비탈이 섰고 봉우리가 섰다. 바다도 하늘도 높높이 섰다. 아, 이렇게 그는 먼저 와서 지리산도 세우고 한라산 설악산 가리왕산도 세웠구나.
그는 그렸다. 그리면서 비우고, 비움을 지키고, 그리면서 하나하나 빼곡히 채웠다. 비우고 지키고 채우는 붓과 캔버스 사이에서 마음은 숱한 풍경의 세목들을 짓고 일으켰다. 그려야할 해안선의 풍경은 여기 있어도 그의 마음을 타고 이어가는 풍경은 거기 있었다. 여기와 거기를 이어서 마음은 사부작사부작 비단실을 지어냈다. 비단실은 환(幻)의 마음을 새기는 붓이었다.
모터스포츠 레이싱의 피트스톱(Pit Stop)은 중간 정비를 위한 잠깐의 멈춤이다. 차는 숨을 헐떡이며 정비사들 속으로 파고들어 제 몸을 맡긴다. 김세은의 이번 전시 주제다. 몸의 감각으로 캔버스의 구조를 살핀다. 여기에서 저기로 다시 저곳에서 이곳으로 나아가고 물러날 것인가를 다짐한다. 머리로 먼저 그리고 마음으로 담아서 팔을 뻗는다.
비좁은 곳은 한 번의 터치로 풀고 조인다. 길게 이어진 곳은 뻗어 긋는다. 흘린 흔적과 자취 따위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옅게 칠하고 세게 당겨서 밀치고 맺는다. 짧게 돌려서 길게 풀어내고 밀쳐서 나눈 뒤 덧칠하고 긁어내면서 관계의 끈을 마무리한다. 팔이 움직이는 사이사이에 힘이 들고나면서 그림은 하나의 몸이 된다.
그것은 하나의 구조다. 몸의 구조. 그림의 구조. 낱몸으로 있을 때는 일어서지 못한 것들이 온몸으로 일어서서 서로주체의 얼개를 짰다. 낱몸으로 있을 때는 차마 숨조차 쉬지 못한 것들이 제 몸으로 일어서서 큰 숨을 쉰다. 그림은 그 숨이 틔운 결의 힘찬 숨줄이다.
야트막한 의자에 몸을 내리고 볼 때는 그 힘찬 숨줄이 온 힘 기울여 펼치는 속도의 향연에 숨 가쁘다. 살아서 퍼덕거리는 외침이 갤러리를 가득 채운다. 비스듬한 벽에 나란히 걸린 세 작품은 선 그음과 그음의 내어 달림과 그것들의 모든 얼개가 만들어내는 소리울림이 합창이었다.
길(道)은 머리(首)를 하늘처럼 텅 비우고 늘 쉬엄쉬엄 걷는(辶) 것이다. 에릭슨은 하늘마음으로 자기를 비우고 비워서 쉬엄쉬엄 걸어 동해에 가 닿았으리라. 그의 그림은 그려졌으되, 그리려는 마음이 가벼우니 어쩌면 그리면서 동시에 지워지는 ‘비움의 회화’이리라. 김세은이 그린 ‘몸의 회화’는 여기의 풍경을 하얗게 지워야만 오롯이 새겨지는 그림이다. 한 곳의 여기가 아니라 모두의 여기로 지금을 세워야만 가능한 그림이니까.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이 시대 바로 지금 여기의 풍경이다.
아트인컬쳐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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