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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색자체>가 된 ‘색 자체’, 이향미의 경계 실험 | 권화영

현대미술포럼



<색자체>가 된 ‘색 자체’, 이향미의 경계 실험



<색자체>.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주제를 전달하는 제목의 작품은 1970~8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뚜렷한 행보와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선보인 이향미(1948~2007)의 대표작으로 작품 제목이 말하듯 ‘색’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향미는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여중, 대구여고를 졸업했고 196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한 후 효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후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그는 모노크롬 추상회화인 단색화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ST(Space and Time)’ 등 실험미술이 공존한 당대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독창적인 어법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지만,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누락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향미의 대표작 <색자체> 연작을 중심으로 작업을 고찰하고, 단색화와 실험미술의 경계에 섰던 그의 작품세계를 당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향미가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7~1971년의 한국 미술계는 앵포르멜 계열의 추상 이후 단색조 추상이 주류미술로 형성되기 시작한 동시에 전위적 성격의 한국 실험미술이 태동한 시기이다. 1967년 한국 실험미술의 시작을 알린 《한국청년작가연립전》(1967)이 개최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에 한국 최초의 전위예술그룹인 ‘AG’ 결성에 이어 실험미술 경향의 모임인 ‘ST’가 미술연구모임으로 출범했다. 또한 1970년에는 서울대 미술대 동문이 주축이 된 ‘신체제(新體制)’와 행위 미술 단체인 ‘제4집단’이 결성되었다. 

한편 이향미가 재학 당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는 단색화의 주역인 박서보, 하종현, 최명영 등이 교수진으로 있었고 추상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 역시 대학에 입학한 해부터 추상 작업을 선보였는데, 대학교 1학년 때 제작한 <무제>(1967)는 1960년대 후반 한국 화단에 부상한 기하학적 추상 경향의 작품으로, 스승 박서보의 <유전질> 연작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향미는 “대학에서는 추상의 세계를 참되게 보는 방법, 그리고 전력투구하는 작가의 자세를 스승으로부터 은연 중에 보게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1)  

이향미는 졸업 이후 매년 빠짐없이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며 점차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73년 제22회 《국전》에 참가하여 추상작업인 <時點 the time point-7>(1973)로 입선하여 이름을 알린 것과 동시에, 같은 해 《20대작가전》(1973, 국립현대미술관)과 제2회 《현대판화전》(1973, 명동화랑)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1974년에는 제1회 《서울비엔날레》(1974, 국립현대미술관)와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이었던 제2회 《앙데빵당》전(1974, 국립현대미술관)에 연이어 참가했다. 

이향미는 특히 고향인 대구에서 지역 현대미술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있어 실험미술의 범주를 확장시켰던 《대구현대미술제》에 지속적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1973년 《엑스포제(Expóse)전》(1973, 대구백화점화랑)과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73, 대구백화점화랑),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1974, 대구백화점화랑), 1975년 《DCAA(대구현대작가협회) 창립전》(1975, 대구백화점화랑)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의욕적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 활동들을 이념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대구의 전위미술단체 <35/128>이다. 이 단체는 1974년 개최된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에 참가한 작가들이 주도하고, 이듬해 1975년 2월 18일에 결성한 것으로 이향미는 박현기, 이명미, 최병소, 황현욱 등과 이 그룹의 창립 구성원이었다. 이에 따라 이향미는 이명미, 신정주와 함께 대구 현대미술의 여성 전위부대로 평가되었고2)  같은 이유로 <색자체>는 한국아방가르드미술과 행위미술을 정리한 전시인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2018, 대구미술관)에서 강국진, 김구림, 박현기,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정강자 등과 함께 전위적인 작업으로 소개되었다. 

그는 또한 단색화 중심의 단체전인 《에꼴 드 서울》 창립전(197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초대작가 24명 중 유일한 여성작가로 참여했다. 이 밖에도 1975년 제7회 《까뉴국제회화제》(1975, 프랑스 카뉴)에 이승조, 진옥선 등과 참가하여 국가상인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를 오가며 전방위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던 이향미는 1981년에 제1회 개인전(1981, 도쿄 마키화랑[真木画廊])을 개최했다. 이후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 활동을 이어가다 1984년 미국 하트포드 예술대학(The art school of Hardford) 대학원에 진학했고, 1986년 귀국 후에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출강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이향미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인 1970~80년대에 발표했던 작품이 바로 <색자체> 연작으로, 당대 주류미술인 단색화의 경향에 반해 ‘색’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이다. 제작 과정은 원색의 물감을 화면의 윗부분에 올려놓은 다음 판을 세워 물감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수직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후 마르고 나면 또 다른 색의 물감을 놓고 흘리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 나가는 것이다. 이 때 흘러내린 원색의 물감 줄기들이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며 층위를 생성해 나감으로써 하나의 색면을 완성하게 된다. 즉 ‘색’과 물감을 흘리는 ‘행위’가 만나 ‘흘림의 흔적’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완성은 작가의 의지가 아닌 색 스스로가 수행하게 되는데 이는 매체 자체가 결과를 책임지는 익명성의 실행(Anonymous Execution)과도 다름이 없다. 

이처럼 이향미의 작품은 작가의 인위적 의도가 최대한 배제된 채 고정되지 않은 상황과 문맥 속에 놓임으로써 그때마다 다른 의미가 생성되는 ‘우연적’이고도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흘림의 방식은 자연스레 미국의 후기 회화적 추상 작가인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과 매체 특정성을 구현한 동시에 작가성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잭슨 폴록이 이룩한 추상표현주의 유산의 계승과 극복을 시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향미의 작업은 ‘색’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실험에 보다 천착해 있다. 이에 이향미가 1976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오브제성’을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몇 년 이래로 관심을 가져 온 것은 색채가 지닌 오브제성입니다. 흐를 수 있도록 한 색덩어리를 제각기 판 위에 부어 오다, 색과 색이 겹쳐 이루어지는 세계는 단순한 색의 감각 및 존재를 뛰어넘는 걸 깨달았습니다. [...] 중요한 점은 일상의 물질이 여기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이러한 흘림의 방식은 흐름, 번짐, 겹침, 응고 등 그것이 남긴 우연의 흔적이 물감의 색과 농도뿐 아니라 종이와 캔버스, 비닐, 유리 등 바탕의 재료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며 물감이 지닌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즉 <색자체>의 색은 조형적 요소가 아닌 물질로서 존재함으로써 오브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에 작품은 미술평론가 이일의 표현처럼 “‘조형성’과 ‘회화성’을 동시에 거부” 4) 하고 흘러내린 ‘색 자체’가 작품인 <색자체>로 현현하여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이향미는 자신의 글에서 ‘흘림’ 작업의 시작에 대해 졸업 후 고향에 내려와 대학시절의 외적, 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고, 일상의 것들을 자유롭게 비전 시킬 수 있는 한 맥락이 ‘흘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5)  

또한 <35/128> 관련 인터뷰에서 “왜 실험 미술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통의 미학에 불안정과 불만족을 느꼈다면 바로 이것이 비회화(非繪畵)의 충동이라고 단정했었다”며 젊은이가 해 볼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6)  이로부터 그가 대구에서 실험미술을 추구한 젊은 작가들과 함께 한 일련의 활동들과 <색자체>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색자체>는 종래의 회화가 지녔던 미술양식과 ‘그린다’는 행위를 벗어나 있다. 즉 <색자체>는 색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작업의 가능성을 탐구한 하나의 실험적 ‘태도’로, 이는 곧 당대 실험미술이 천착한 매체 실험과 물성 탐구의 ‘회화적’ 시도인 동시에 작가가 언급한 ‘비회화’의 실천인 것이다. 

실험미술과의 관계는 1973년 제1회 《엑스포제전》에서 발표한 <흘림>(1973)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흘림>은 투명한 비닐과 유리를 세워 놓고 그 위에 물감을 올려놓아 흐르도록 한 후 물감이 마르고 나면 화면 위에 다시 몇 장의 비닐과 유리를 겹쳐 놓음으로써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이 입체적 공간 안에서 중첩되어 보이도록 의도한 작업이다.7)  따라서 <색자체>는 일상의 재료를 사용한 입체 작업에서의 실험이 평면으로 이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흘림’과 더불어 이향미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이 바로 ‘반복’이다. 반복적인 행위는 일군의 단색화 작가들의 방법론으로 이들은 ‘물질의 정신화’ 즉 수행적인 반복의 행위를 통해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인 것에 도달하고자 했다. 국전 입선작인 <時點 the time point-7>(1973)은 희석한 물감을 스펀지에 묻혀 찍어내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여 색을 중첩시킨 작업이다. 반복의 행위를 통해 화면을 구축하는 것은 단색화의 어법으로, 갈색톤으로 완성된 단색의 화면은 단색화의 그것과 닮아 있다. <색자체> 역시 원색을 사용했으나 무엇을 그리겠다는 의도가 없는 ‘무목적성’과 ‘행위의 반복성’이라는 단색화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박서보는 이러한 이유로 이향미의 작업을 단색화로 범주화했고8)  그는 《에꼴 드 서울》에 연이어 참가하며 남성중심 현상이 두드러졌던 1970년대 한국 화단에서 단색화 작가들과 행보를 함께 했다. 이후 이향미는 단색의 모노크롬 추상인 <색자체>(1970년대)를 선보였고, 「단색의 모노크롬으로 진한 리얼리티를」(1980)라는 자신의 글에서 단색화와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향미는 전위적 흐름에 동참하여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천착하지 않고 ‘반복적인 행위’와 ‘비회화’의 방식을 통해 유연하게 양자를 아우름으로써 그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모색해 나갔다.

1988년 이향미는 마지막 개인전(힐튼화랑)이 된 제5회 전시를 개최했다. 당시 전시에는 <Untitled-H86>(1986)을 비롯한 신작들이 발표 되었는데, 미국 유학 이후 나타난 변화를 보여준다. 이일은 전시 서문에서 이향미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점을 언급하며 그의 변신에 주목했다. 새롭게 선보인 작품에서는 기존의 흘림의 행위가 그리는 행위로 변화했는데, 이를 통해 흐르는 색선은 색면으로 발전했고 물성의 탐구를 거친 색은 자유분방하게 화면 전체로 확장되었다. 

이향미의 작품은 후기 작업으로 이행하며 또 다시 변주한다. 1995년에 제작한 <untitled9505>(1995)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로 다른 길이의 색막대기들을 나란히 기대어 세워서 설치한 작품이다. 캔버스 속 붉은 색면 덩어리는 제5회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색면의 회화를, 나란히 선 색막대기들은 <색자체>에서의 물감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이는 전작과의 연속성을 견지하며 색을 매개로 한 실험을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세폭 제단화 형식의 <미세레레(miserere. 불쌍히 여기소서)>(1994)는 십자가 형태를 중심으로 하여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원색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색을 통해 종교적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향미는 물질로서의 색의 탐구에서 나아가 색의 정신성을 추구함으로써 단색화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물질성을 초월하는 예술을 완성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작품세계 전반을 통해 색에 대한 다양하고도 심도 있는 탐구를 이어갔으며, <색자체>에서 보여준 경계의 실험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향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 역시 보기 어렵던 중 2007년 뜻하지 않게 5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따라서 그의 후기 작업은 하나의 경향으로 범주화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색’을 화두로 한 이향미의 작업은 당대 한국 현대미술의 복합적인 영향 아래 구축된 입체적인 결과물로 주류인 단색화와 주변인 실험미술 사이에서 발아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색자체>는 오브제, 행위예술, 비디오 아트 등 탈평면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실험미술의 회화적 시도인 동시에 색채를 매개로 하여 단색화의 가치를 구현한 작업인 것이다. 이처럼 ‘사이(in-between)’의 공간에서 경계를 아우르며 제3의 작업을 추구한 이향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일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권화영(1971~),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수료



ㅡㅡㅡㅡㅡ
1)   이향미, 「단색의 모노크롬으로 진한 리얼리티를」 , 『공간』, 1980년 8월호. p. 72.

2)   대구미술협회, 『대구미술 100년사: 현대편』,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 2016, p. 185.

3)   이명미, 이향미,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실험미술과 지방화단- <Group 35/128>의 창립동기와 활동」, 『공간』, 1976년 2월호, p. 102.

4)   이일, 《제5회 이향미 개인전》 리플릿, 1988.

5)   이향미, 위의 글. p. 72. 

6)   이명미, 이향미,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위의 글, p. 102.

7)   이강소, 「대구의 미술-상황적 조명」, 『공간』, 1980년 10월호, p. 85. 

8)   이명미 작가(이향미 작가의 동생.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동문)와의 인터뷰, 2022년 7월 14일, 작가의 작업실. 




이향미, <時點 the time point-7>, 1973, 유화, 162x163.5cm, 경북대학교미술관 




이향미, <색자체>, 1976, 캔버스에 아크릴, 162x130cm, 대구문화예술회관  




이향미, <흘림>, 1973, 비닐, 유리, 아크릴, 163x132cm, 유족소장




이향미, <Untitled-H86>, 1986, 천 위에 아크릴, 211x330cm, 유족소장




이향미, <untitled9505>, 1995, 유화, 218x291cm, 경북대학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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