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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현대인의 실존적 초상, 임송자의 인체 조각 | 이슬비

현대미술포럼



현대인의 실존적 초상, 임송자의 인체 조각



임송자(1940~)는 해부학적 지식과 숙련된 기술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체를 다룬다. 인체를 변형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사실적인 표현은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조각은 탁월한 조형성과 명상적인 분위기로 특별한 아우라를 선사한다. 임송자는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청동회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1976년에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 미술 아카데미 조소과에서 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Emilio Greco)를 사사했다. 엄격한 도제 훈련을 거치면서 초기에는 딱딱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서양의 정통 조각 기법을 성실하게 익혀 3학년 때부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카데미 졸업 후 로마시립 장식미술학교에서 벽화를 공부했고, 이탈리아 조폐국 메달 학교에서 심화된 기술을 익혔다. 유럽 문화의 본고장에서 그가 체득한 것은 단순히 대상을 미적으로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인간의 호흡과 리듬, 생명 그 자체를 감각하고 표현하는 힘이었다. 또한 유학 경험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한국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살며 체화돼버린 경직된 태도를 탈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문화적 태도를 접하며 본연의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임송자의 인체 조각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다루는 구상 조각으로 한국 현대조각 흐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가 대학을 다니고 유학 이전에 활동하던 1960~1970년대 한국 미술계를 살펴보면 추상 조각은 현대적이고 구상 조각은 상투적이고 진부하다는 분위기가 만연한 시기였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1980년대는 추상을 선보이는 모더니즘과 구상 형태의 민중미술로 양분되는 구도였다. 하지만 구상 조각에 속하는 그의 작업은 민중미술과도 거리가 멀었고 어떤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유학 이전부터 현재까지 그는 자신의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외래 사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한국의 내적 구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전개된 미술을 지향했고, 현실을 비판하기보다 일상의 삶을 긍정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우직함과 성실함이 작업의 원동력이다. 

사실 당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은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지향점은 동일했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에 근거한 한국성이었다. 이에 비해 임송자가 인식한 한국 조각의 전통적인 미의식은 구체적인 실체가 아닌 자연스러운 감수성에 가까웠다. 그는 양식적 틀이나 이데올로기,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적인 감각과 삶을 매개로 한 주체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탐구했다. 

작품 속 인물은 가족, 지인, 제자 등 자주 만나는 사람들, 잘 아는 사람들, 오랫동안 지켜본 평범한 이웃들이다. 그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진솔함을 그려낸다. 어떠한 꾸밈이나 극적인 과장 없이 인물들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뿐이다. 그의 작업은 부조, 환조 형태의 초상조각뿐 아니라 여러 인물을 배치해 특정한 상황을 연출한다.   

대표작인 <현대인> 연작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인간이 만든 것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던 고전이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미치며 여전히 유효한 이유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기쁨 등 본질적인 문제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유학 시절 시작된 이 작업은 초기에는 자신과 함께 공부했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친구들의 얼굴을 모델 삼아 부조와 환조로 제작되었다. 

귀국 후 그는 사회적 제약에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 재난 현장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사람들 등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현실에서 주제를 찾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표현했다. 또한 <봄이 오는 소리> 연작은 무한히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그는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을 묘사하기보다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조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 밖에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살기 위해 끊임없이 식사를 준비하는 인간의 삶을 <손> 연작으로 선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인물은 항상 먼 곳을 응시하는데 이것은 현실에서 이상을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인상을 자아낸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탐구를 넘어 종교적인 감정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수학 중 제작한 <김대건 신부상>을 시작으로 십자가상, 성모상, 서소문 순교자 기념비 등 종교 조각을 다수 제작했다. 그렇다고 기존 작품과 외형적으로 특별히 다르지는 않다. 성서 속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도 작품의 인물은 서양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모습으로 한복을 입고 있다. 종교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임송자의 조각은 테라코타, 청동, 돌 등 그 재료가 다양한 편이다. 이탈리아에서 주물 기술과 대리석을 다루는 기술을 익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하거나 주물공장에 맡기더라도 섬세한 마감 처리는 직접 한다. 그중에서도 테라코타 작업은 작가 특유의 서정적 감수성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흙은 도구 없이 인간의 손으로 직접 성형이 가능한 유일한 재료이며 예술가의 에너지가 오롯이 감상자에게 전달된다. 청동으로 주조한 것이라도 최초의 형태를 빚어낼 때의 소조 과정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탈리아어로 ‘구운 흙’을 의미하는 테라코타(terracotta)는 선사시대부터 사용된 아주 오래된 조각 기법으로 현대 조각에서는 권진규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유학한 권진규는 점토로 모양을 만들고 이것을 석고의 형틀로 떠내고 이 틀에 다시 흙을 채우고 속은 비워 소성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권진규의 조각은 표면에 틀로 찍어낸 흔적이 남아있고 복제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임송자는 전통적인 소조 기법으로 테라코타를 제작한다. 점토로 형태를 만들고 반쯤 말려 뒷부분을 갈라 일정한 두께만 남기고 속을 파낸다. 그리고 내부를 못이나 바늘 같은 뾰족한 도구로 찔러 공기층을 없애고 가른 표면에 흙물을 발라 다시 붙인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전히 건조하고 구우면 형태가 뒤틀리지 않는다. 그는 한 작품을 만들더라도 고민을 거듭하며 흙을 붙이고 떼어내고, 흙과 씨름하며 뭉개고 허물기를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쏟는다. 그에게 작업은 특정한 결과물이 아니라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대상과 교감하는 과정이자 그 흔적이다.  

임송자의 조각은 다소 거친 마감 처리로 흙의 질감이 두드러지며 때로는 미완성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수학기에 스승인 에밀리오 그레코와 같은 매끈한 표면의 조각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본연의 감수성과는 맞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 시절 그는 유럽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에서 고대 미술부터 현대 조각까지 수많은 거장의 작품을 실견하며 서양 조각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때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메다르도 로소(Medardo Rosso)의 작품이었다. 

로소의 조각 역시 자연주의 방식으로 어린이, 노인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또한 모호한 마감 처리로 대범한 형상을 띠고 있다. 특히 로소는 왁스라는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작가의 터치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친 표면의 인물상을 제작했다. 이러한 표현은 대상의 윤곽을 예술가 스스로 제한하기보다 인물 본연의 생명력을 반영하는 태도를 반영한 것이다. 

임송자도 오랜 정감을 나눈 인물의 인체를 왜곡하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 자체를 오롯이 담아내고자 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나 세련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담담한 초상이다. 때로는 고뇌하고 좌절하며 삶의 무게를 버티지만 절대 주저앉지 않고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삶은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귀하다. 다름을 인정하다 보면 일상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임송자의 조각이 가지는 비범함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임송자는 1980년 이탈리아 산 자코모 화랑에서 연 첫 개인전 이후 1982년 신세계 화랑, 1996년 가람화랑, 그리고 제1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을 기념해 2005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회고전에 가까운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비교적 과작하는 작가이지만 1999년 제4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 2000년 제14회 김세중 조각상 등을 수상하며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았다. 중앙대학교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이슬비(1982~)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미술평론가




임송자, <흉상 93-Ⅰ>, 1993, 테라코타, 40×68×29cm




임송자, <현대인 96-Ⅱ>, 1996, 브론즈, 화강암, 190×90×133cm




임송자, <순교자 Ⅰ>, 1991 브론즈, 철, 60×64×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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