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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전적인 클리셰, 공존

김민정

얼마 전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천둥소리를 들은 아이가 겁에 질린 장면이 나왔다. 뻔한 전개였다. 번개를 두려워하는 아이와 아이를 달래주는 어른. 이 구도는 많은 창작물에 무수히 차용된 고리타분한 클리셰다. 반세기 전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세기 전뿐만이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번개를 신격화했을 정도니, 천둥을 향한 경외심은 만국 공통이었던 모양이다. 중국에서 비롯되어 한일 양국에 널리 퍼진 뇌신雷神의 이미지는 불화佛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다. 북유럽 신화에도 천둥의 신 토르Thor Odinson가 있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마블 히어로 ‘토르’의 기원이다.


그러나 토르가 숭배의 대상에서 오락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듯,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현대 국가의 운영 기반은 토테미즘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 문명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지배-피지배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설정된다. 

 


윌리엄 터너, <눈보라 :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 1812, 캔버스에 유채, 236x144.7cm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 Snow Storm: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는 대표적인 낭만주의 회화다. 제목에 한니발의 이름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터너는 영웅의 서사 대신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을 광활하게 묘사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진다. 금방이라도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한 눈보라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 상반되는 장면이 샌포드 기포드(Sanford Robinson Gifford)의 <헌터 마운틴, 황혼 Hunter Mountain, Twilight>에서 드러난다. 전경을 채우고 있는 것은 인간에 의해 벌목된 나무들이다. 이 작품에서 자연은 종교적 감정을 촉발하는 절대자의 권위를 상실했다. 정말 인간은 생태계의 지배층이 된 것일까? 


    1972년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 환경 회의가 개최된다. 환경 문제가 전 지구적인 공통 관심사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자비한 벌목의 말로였다. 90년대에 접어들며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모색하는 윤리적 실천 방안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미술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지배-피지배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탈피하여 생태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미술, 이른바 ‘생태 미술’이 등장했다. 




한스 하케, <풀은 자란다>, 1969


생태미술은 환경문제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접근하는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일상의 영역을 벗어난 환상적인 도피처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인간들의 일상 속 전유물로 여겨지는 장소 역시 자연과 상호의존적 관계에 놓여 있다. 한스 하케(Hans Haacke)는 <풀은 자란다 grass grows>라는 작업물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한스는 전시장에 겨울독보리를 심은 흙을 배치한 후 지속해서 물을 주었다. 10일 후, 녹지가 아닌 전시장 안에서 싹이 튼다. 이 과정에서 전시장이라는 인간만의 고유한 문화적 산물은 식물의 생장 환경으로서 존재하며, 자연스럽게 생태계 일부가 된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터너의 작품처럼 압도적인 눈보라를 직면하는 상황은 드물다. 삼림보다 빌딩 숲이 친근한 시대다. 자연을 대체할 인공물이 끊임없이 생산된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환경 이슈는 마치 말이 안 통하는 머나먼 이국의 소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터너의 작품을 살펴보면, 눈보라 틈에서 캔버스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 군상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화폭 속의 모든 요소가 이 사건의 당사자인 것이다. 전시장에서도 식물은 싹을 틔운다. 눈보라 속에서도 인간은 그들의 고유한 역사를 써 내려간다. 토르 역시 번개가 내리쳤기에 탄생했다. 이러한 상호의존적 공생이야말로 지구의 전 생애를 통틀어 수없이 차용된 가장 고전적인 클리셰인 셈이다. 생태란 지구를 이루는 모든 생명과 그 부산물의 총체이며, 이 거대한 시스템은 수직적 위계질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김민정 mntil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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