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박물관
상설전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효시인 한창기가 1976년 당시의 관행을 깨고 순 한글, 가로쓰기 잡지인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동시대 한국인 중 영어회화를 가장 잘하면서도 한글사랑이 깊어 한글학자를 힘들게 했던 그가 한국 전통의 투박스러운 토박이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하나하나 모은 유물과 유품을 선보이고 있다. 벌교에서 태어나 순천중학교를 졸업한 한창기는 박물관이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모은 유물들로 한국의 민중문화를 보듬어 보여주는 박물관을 짓고자 했으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 뜻을 이루지 못하다 순천시와 뿌리깊은나무재단이 함께 2011년 그의 꿈을 이루었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는 故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모아오신 유물 6,500여점이 전시·보존 되어있다. 선생님의 뜻은 우리 것의 낡음과 투박한 것에서 문화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보잘것없고 천대받던 것들이 지금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되고, 조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재탄생되었다.
한반도 끝자락에서 태어나 세계인으로 살았던 20세기 속 21세기인. 한창기
발행인 한창기의 책 - 대표적인 책 5종과 단행본 일부, 발행인의 편지 등을 볼 수 있다.
배움나무 (127×187mm)
한창기가 한국브리태니커 대표로 있으면서 처음 발행한 월간지이다. For Betterment of Education, Culture and Environment(교육, 문화 그리고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라는 영어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국민의식의 고양을 이루고자 했다.
뿌리깊은나무 (185×260mm)
한문 잡지명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순 한글과 가로쓰기를 원칙으로 하여 만든 월간지이다. 용비어천가에서 따온, 당시로는 파격적인 이름을 붙였다. 내용, 형식뿐만 아니라 광고에서도 차별화를 이루었고 디자인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샘이깊은물 (187×258mm)
<뿌리깊은나무> 폐간 후 여성의 '기품있는 비판정신'을 구현하고자 1984년 창간되었으며 이 나라에서 정기구독자가 가장 많은 잡지가 되었다. <뿌리깊은나무>와 마찬가지로 용비어천가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민중자서전 (175×254mm)
역사에서 배제된 문맹자, 노인, 전통적인 생업과 예능에 종사했던 이름 없는 민중의 삶을 목소리 녹음 후 글로 옮긴 시리즈로 1981부터 10년간 총 20권을 출간했다. 최초의 한국어 구술생애사이며 구술 속 방언의 꾸밈없는 재현으로 인해 구비문하그이 귀한 자료로 여겨진다.
한국의 발견 (180×255mm)
여행서가 전무하던 시절 각 지방의 자연, 지리, 역사, 경제, 전통문화, 언어 등을 다룬 한국의 인문지리서로 9개의 도와 2개의 시로 총 11권을 출간했다. <동국여지승람>의 번역본을 보면서 기획한 책으로 80명의 필자와 31명의 사진작가가 전국을 누비며 두 해만에 완성했다.
샘이깊은물 (187×258mm)
민중자서전 (175×254mm)
뿌리깊은나무 (185×260mm)
한창기의 사진들
한창기의 서재
한창기가 생전에 작업했던 공간을 구현한 공간. 한창기의 그래픽 사진과 함께 반대편 벽에 걸린 용비어천가는 한창기의 철학적 기반을 보여준다.
뿌리깊은나무에 수록된 칼럼, 광고들
- 사진,글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