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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작품 감상 소통을 실현하는 김종하 화백

김달진


7월 어느 날 인사동에 나갔다가 갤러리라메르 앞에서 원로화가 김종하 화백을 만났다. 연세가 아흔이시라 지팡이를 의지하셨고, 알아듣는데 조금 어두우셨지만 건강하셨다. 김화백은 작년 11월 베아르떼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여전히 작품활동 중이시다. 지난 3월에 우리 연구소를 갑자기 찾아오셨다. 작품을 서울아트가이드에 소개하시고 본인의 화실을 일부 공개하여 미술애호가와 소통을 원하셨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김화백의 댁을 방문했다. 성북구청을 지나 브라운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몇 m의 가까운 거리였다. 이 집은 1968년에 이사를 와서 1993년에 새로 지으셨다고 했다. 자택 입구에는 넝쿨장미, 한쪽에는 담쟁이넝쿨이 올라가고 있지만 대지가 없고 건물만 있다. 한 층에 15평 정도 규모로 4층이었고 1, 2층은 응접실, 전시실이며 3층 내실, 4층은 화실이다. 2층 전시실은 작은 원탁의자와 소파, 한쪽 벽면엔 작품이 쌓여 있었다. 주위에는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했던 ‘한국 근대 미술 60년 전’ 출품 기념패, 작품 소재로 등장했던 소도구도 있었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개인전 기간이나 미술관에 전시 중이지 않으면 원작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평일 미리 연락을 하면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 작품을 보여주고 담소를 나눈다고 하셨는데 옛날 제자, 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내방객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인사동에 나가신다는데 요즈음 미술시장이 호황 탓인지 “인기작가가 되기 위해 팔리는 그림, 색다른 그림으로 흐르고 진실된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전시회의 성과를 좋은 작품으로 평가를 하는 게 아니고, 몇 점 팔렸느냐 매출액을 가지고 판단하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어 가고 있어 염려스럽다. 옥션에서 비싸게 팔리는 몇 작가만이 대한민국 작가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는 뼈아픈 말씀을 하셨다. 김화백은 2005년 말 사모님도 타계하시고 자녀도 없이 검소하게 혼자 사신다. 하지만 후손에게 보여 줄 대표적인 작품을 남기고 미술재단을 설립하여 작품과 창작의 산실을 보존하고 싶다는 의욕을 과시했다. 최근 열정적인 작업으로 손가락 마디가 물혹처럼 튀어 나와 있었다. 김화백은 국전시절 초대작가, 심사위원, 2001년 예술원상, 2002년 은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했었고, 환상적이고 사실적이지만 고전기법을 고수해온 우리 미술계에 소중한 작가의 한 분이다.



김종하(1918-2011) 동경제국미술학교, 파리아카데미 몽파르나스, 포털아트(2007), 표화랑(1991), 동화화랑(1956) 등 다수 개인전, 다수 단체전 참가, 제59회 서울시특별시 문화상(2010), 은관문화훈장(200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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