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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카페에서 …

곽수영

글이 있는 그림(75) 카페에서 …
곽수영 / 1983년 도불하여 현재 파리에서 활동 중








모처럼 강한 빗줄기가 지나간 뒤, 여느 때처럼 동네카페의 작고 둥근 탁자에 가 앉는다. 막 놓여진 커피 잔 위로 멀리, 어린이들에게서 해방된 놀이터와 그 주변에 널려있는 나뭇잎과 쓰레기들, 그 옆으로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노천식당의 탁자와 의자들이 보인다. 이른 오전부터의 작업에서 벗어난 잠깐의 감미로운 휴식이다. 더 이상 늘어놓을 공간도 없는 화실 안은 온통 캔버스들에서 뿜어 나오는 테레벤틴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이 짧은 정오의 시간, 밖으로 나와 늘 그러하듯 작은 스케치북을 펼치며 한 모금 따스한 커피를 맛본다.

어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온 벗을 맞이하러 들렀던, 그 많던 여행객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의 파리 북역의 텅 빈 모습을 떠올린다. 북적이던 여행객들 혹은 놀이터를 메우던 아이들, 그 존재의 활기와 소란이 사라진 지금은 오직 회상하며 느끼는 흔적들 뿐이다. 이미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련함일까? 잠시 스쳤음에도 그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치 시와 종교의 강렬한 흡인력을 가진 듯 나를 끌어 안는다. 이제 그것들의 흔적을 찾아 드러내고자 연필을 든다. 지나온 시간들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있다. 그 기로에서 우리는 언제나 여행객일 수 밖에 없다. 여행(voyage)…, 결국 우리는 매일 시.공간 안에서의 이동을 겨우 몇 센티 정도 충족시키면서 부족한 호기심을 채우고 소유하거나 확인하며 만족한다. 하지만 현재의 만족이란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련함의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혹 이 순간에 만족하지 않을 때, 이렇게 지나간 존재들의 흔적을 재현하여 삶의 여행에 의미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막 햇살이 구름에서 벗어날 무렵 마지막 남은 에스프레소의 향을 혀 끝에 느끼면서‘한잔 더?’의 유혹을 떨쳐낸다. 아직 끝내지 않은 데생, 그 흔적들을 덮고 다시 아틀리에로 돌아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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