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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채워지는 自然, 비워지는 自然

유병훈

어느덧 내 시선이 자연의 본성 앞에 머리를 숙인 지 30년이 되었다. 춘천에 돌아온 후, 내 작업의 변화는 시선에 있다. 이곳은 창을 열면 숲이고, 거닐면 산이고, 들이고 물이다. 하늘과 땅은 언제나 내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춘천 근교에 대룡산이라는, 깊은 무게를 느끼게 하는 산이 있다. 나는 사시사철 내내 수려한 이 산 밑에 살고 있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이 산을 좋아한다. 언제였던가? 나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산하가 슬프게 느껴진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수많은 여행길 차창에서 만난 풍광들, 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본 풍경들이 내겐 하나의 기억이 되고, 감정이 되어 버렸다. 이런 마음으로 숲을 보고, 마음 속 응어리가 작업으로 이어지며 점을 찍게 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순간순간 점으로, 획으로 손가락에 묻혀진 물감 또는 붓끝에서 화면에 멈칫 멈춰 호흡을 가다듬으며 채워나가는 나의 몸짓이 그만큼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동안 나를 에워싼 자연은 내게 소통의 손짓으로, 느낌으로 다가오며 작은 점, 커다란 묵의 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산하의 슬픔이 자연의 묵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 숲-바람-묵(默)2004>연작을 시작하면서 내 작업의 연륜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작은 점 하나가 화면을 채워나감으로써 靜ㆍ重ㆍ動을 얘기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내게 용서와 관용을 베푼다. 나 또한 겁 없이 다가서는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힘겨운 작업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 저질러 놓은 순간을 즐겁게 맞이하려 한다. 나는 오늘도 자연 앞에서 오만을 부리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나는 작업에서 느끼게 되는 막연한 공허함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욕심을 부려본다. <숲-바람-묵>연작은 영원히 풀리지 않은 숙제일 지도 모른다. 나는 자연에 대한 빚을 남기지 않고, 철저히 알기를 거부한다.
좋은 소리는 자연에서 완성 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싶다.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입체가 되듯 점 하나 또는 점에서 획으로 이어지듯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렇게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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