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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 '맞교환'은 안 된다

이선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1866년 강화도를 침공했다 퇴각하던 프랑스 군대가 탈취해간 외규장각 도서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75년이었다. 그 도서관에서 일하던 한국인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조선왕실의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 191종 297권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이 책들은 '중국 도서'로 분류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100년이 넘는 세월을 잊혀졌던 '약탈 문화재' 외규장각 도서는 1992년 한국 정부가 서울대 규장각의 건의를 받아들여 프랑스 정부에 반환을 요청하면서 양국 사이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1993년 9월 방한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재 반환 요구는 모두 거절했는데, 한국의 요구에는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고, 다음 날 파리에서 공수돼 온 의궤 한 권이 '영구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전달됐다. 당시 한국 고속철 차량 선정을 놓고 독일·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프랑스가 한국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관계없이 '역시 프랑스는 문화국가'라며 반겼다.

하지만 곧 이뤄질 것 같았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고속철 수주에 성공한 프랑스 정부는 국립도서관 직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0년 방한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외규장각 도서, 2001년까지 반환'에 다시 합의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싶었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외규장각 도서에 상응하는 고문서를 프랑스에 제공한다'는 조항이 한국 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10년이 지나 지난 연말 프랑스 행정법원이 한국의 시민단체가 제기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을 기각했다. '취득 당시 상황이나 조건은 외규장각 도서가 국가재산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판결 요지는 쉽게 말해서 '불을 지르고 도둑질한 물건도 프랑스 국가재산이면 돌려줄 수 없다'는 뜻으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양심과 지성'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7일 '외규장각 도서를 사실상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대신,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프랑스에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0년 무산됐던 '맞교환' 방식을 약간 변형된 형태로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등가등량(等價等量)의 원칙'은 폐기됐고, 그 대신 '상호 장기임대-교환전시' 방안을 제안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오는데 왜 우리 문화재를 '볼모'로 줘야 하느냐' '해외에 있는 다른 유출 문화재 반환에 나쁜 선례가 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이렇게 꼬이게 만든 것도 우리 정부다. 미테랑 대통령은 1993년 방한 때 '반환 형식은 실무협의토록 하자'고 했다. 중대한 협상에서 온 국민이 바라는 '영구임대'가 아니라 '문화재 교류'에 따른 '상호 대여'로 명문화한 것은 '현실론과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2000년 양국 합의를 만들어낸 우리 협상단이었다.

우리 정부가 프랑스와의 협상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사리에 맞게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방향을 바꾸는 것이 낫다. 진작부터 조기 반환에 집착하지 말고 명분으로 프랑스를 압박하면서 국제재판으로 가자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제 이 문제를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왔다.

- 2010. 01. 1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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