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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미술가 키워내려면

정강자

지난달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 화가 자오우지(趙無極)의 추상화 '2.11.59'는 치열한 경합 끝에 57억원에 낙찰됐다. 반면 세계적인 한국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TV는 키치다'는 하한가인 5억8000만원에 겨우 낙찰됐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지난 4월 방문했던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는 그곳이 소장한 20세기의 세계 거장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1층에 자리한 넓은 서점은 중국과 일본 작가의 화집(畵集)은 여러 종류 있었지만 우리 작가들의 화집은 한 권도 없었다.

이제 숫자놀음 하는 국력(國力) 자랑은 그만하고 싶다. 지금의 국력은 GNP가 아니라 '문화력(文化力)'임을 유럽을 강타한 K-Pop이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위대한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비법을 공개해볼까 한다.

아무리 새롭고 위대한 작품을 제작해도 작품을 팔기 위해 화가 자신이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화가의 가능성을 볼 줄 아는 화상(畵商)과 작품을 대중의 트렌드에 맞게 상품화해주는 큐레이터와 평론가가 필요하다. 또 문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과감한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악동(惡童)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것은 혼자 잘나서가 아니다. 그의 곁에는 무명의 젊은 작가들과 저평가된 중견작가들을 꾸준히 후원해 온 세계적인 광고재벌 찰스 사치 같은 컬렉터가 있었다. 현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는 중국 미술의 위상 역시 중국 재벌들이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청계천에 세워진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무려 50억원짜리라고 해서 논란이 휩쓸고 간 것이 5년 전인데 이번에 한 백화점에서 제프 쿤스의 '시크릿 하트'를 들여오며 300억원을 썼다고 한다. 그보다 13억원 더 주고 사온 윌렘 드 쿠닝의 '무제VI'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216억짜리 '아이를 보듬은 남자' 등 우리나라 컬렉터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들여온 작품들이 모두 그 작가의 대표작으로 미술사에 남을 명작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화가로 먹고살기란 '교수' 타이틀 없이는 매우 힘들다. 의식주를 제외하고 캔버스와 물감을 마련하기도 버거운 전업작가들은 지금 예술적인 고뇌보다 생존의 고민이 더 크다. 그림 말고는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하루하루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전업작가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당장 잘 팔리는 그림만 찾는 화랑들, 관람 흥행을 위해 교과서에서 익숙한 작품의 전시만 기획하는 미술관들, 그리고 광이 나는 메세나 활동을 위해 고민하는 기업들에 나는 감히 제안한다.

더 늦기 전에 한국 미술에도 영국과 중국처럼 국가와 미술관과 기업과 컬렉터들이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범국가적인 미술지원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저평가된 신인·중견 작가들을 발굴·육성하고 그들로부터 세계시장에 팔릴 수 있는 마케팅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국력인 문화력을 키우는 일이고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일본과 미국을 넘어 유럽에서도 주목받는 K-Pop처럼 언젠가 세계 미술 시장이 K-ART에 열광하는 날을 소망해본다.

- 조선일보 2011.6.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2/2011062202398.html
<- 조선일보 2011.6.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2/20110622023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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