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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럽 ‘예술인 사회보험’ 눈여겨보길

이승엽

프랑스 등 예술인 ‘사회적 생산성’ 인정
최저수입 보장·연금제·실업보험 등 운영
국회발의 ‘예술인복지법안’ 첫발 잘 떼야

예술인복지법이 입법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정치판에서 이 이슈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실시된 크고 작은 선거에서는 단골 공약 메뉴였다. 현 정부도 대선 당시 정책공약에 ‘문화예술인 공제회 설립을 통한 창작 기반 조성’을 포함시켰고 정부 출범 뒤에는 ‘예술인 공제회 설립 검토’를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200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한 조각가 구본주 사태가 분수령이 됐다. 당시 가해 차량의 보험사는 37살의 유망한 전업 조각가에게 도시일용노임, 즉 무직자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계는 크게 반발했다. 예술인의 사회적 삶과 지위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고민은 연초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사건에서 비등점에 이른 듯했다. 사건 직후 여야는 이미 국회에 발의된 예술인복지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일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지금 법안은 관련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이 고작이다. 법사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 통과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부 안에서도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반대가 여전하다. 특히 비연속적 고용관계에 있는 예술인을 고용·산재보험 가입 대상으로 인정하는 법안 내용이 민감한 쟁점이다.

예술인 복지의 논의를 받치는 근거는 대략 두가지다. 하나는 예술의 가치와 사회적 편익이다. 1990년대 중반이후 우리 사회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새삼 발견하고 공감대를 넓혀왔다. 또 하나는 예술 활동의 특성 때문에 예술인 다수가 빈곤을 면치 못하고 기초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비껴나 있다는 점이다. 예술인들의 활동이 사회에 꼭 필요한 편익을 제공하므로 예술가의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사회가 부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한 사례들은 해외에서 꽤 찾을 수 있다. 찬반을 떠나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프랑스의 이른바 ‘앵테르미탕’ 제도다. 공연영상 분야의 비정규직 예술인을 위한 특별한 실업보험 제도다. 예술가나 스태프가 지난 10개월여 동안 총 507시간을 일했으면 이후 최대 8개월간 실업급여를 받는다. 일반 임금노동자보다는 많이 완화된 조건이다. 1969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니 40년이 넘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비정규직 예술인을 위한 별도의 통합적 사회보험 제도를 갖고 있다.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는 예술인의 최저수입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한다. 독일은 지속적 고용관계를 가지지 않는 예술인과 저술가를 묶어 예술인사회보험 혜택을 준다. 아일랜드, 일본처럼 예술인을 대상으로 별도의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자는 건 아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중인 예술인복지법도 파격적인 수준은 아니다. 예술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적용 대상 예술인의 빈곤과 소외를 당장 말끔히 해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술인을 사회적 생산자로 인정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 법률에 담겨 있다. 그 정도는 우리 사회가 품을 만하다고 본다.

- 한겨레 2011.6.28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84728.html<- 한겨레 2011.6.28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847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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