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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예술가의 이름

김태익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화백은 자기 그림을 전시회에도 쉽게 빌려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는 화랑과의 관계에서도 작품 값을 놓고 타협을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가격을 고집했다. 자기를 아끼고 주장이 강한 예술가였던 만큼 사람들은 유 화백이 작고하면 그의 이름을 내세운 번듯한 미술관 하나쯤은 만들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2002년 세상을 뜨며 '내 이름으로 된 미술상(賞)과 기념관을 만들지 말라'고 했고 유족은 이를 따랐다.

▶죽어서도 자기 작품이 칭송을 받고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예술가들의 꿈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가 세상의 몫이듯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세상의 권리다. 전주의 '혼불문학관'이나 하동의 '토지문학관'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아끼는 사람들 마음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작가의 손때와 땀이 묻은 유품과 작품 세계를 뒷받침하는 각종 자료들로 많은 발걸음을 불러 모으고 이들 가슴에 오래도록 작가 이름을 살아 있게 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기가 나서서, 심지어는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름을 단 문학관이나 미술관, 기념관을 만들려고 한다. 화가들 중에는 작품 일부를 연고가 있는 지자체에 기증하고 그 대가로 자기 이름을 붙인 미술관을 세워줄 것을 흥정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 옛말에 '선비 중에 상(上)은 이름을 잊고, 중(中)은 이름을 세우고, 하(下)는 이름을 훔친다'고 했다. 사후(死後)의 이름까지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하는 건 과욕일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 이런 사람들이 예술계뿐 아니라 우리 주변엔 너무 많다. '그 이름을 물에 썼던 자 이곳에 누워 있노라.' 영국 낭만파 시인 키츠는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죽으며 오직 이 한 구절만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다.

▶경기도 구리시가 올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살던 아차산 자락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이라 이름 짓고 주변에 문학관, 문학공원, 문학비 등을 만들려 하자 유족이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유족은 '어머니는 '아치울'이란 이름을 사랑했고 길·마을 어디에고 당신 이름이 남기를 원치 않으셨다'며 '오직 작품으로만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자 했다'고 했다. 평생 글 써서 모은 돈 13억원을 세상에 맡기고 훌훌 떠나더니 이름에 대해서도 매한가지다. 그렇게 해서 '박완서'라는 이름은 선비의 맨 윗자리에 자리 잡았다.

- 조선일보 2011.8.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07/2011080701185.html<- 조선일보 20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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