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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어머니가 넣어주신 지갑 속 부적

윤태건

지갑이 너덜너덜해졌다. 귀퉁이는 다 해졌고, 이러저런 카드 두께 때문에 배불뚝이가 됐다. 손때, 기름때도 반질반질. 며칠 전 '이젠 바꿀 때가 됐다' 싶어 지갑을 이리저리 만지다 비밀장소(?)를 발견했다. 꼬깃꼬깃 접은 노란색 기름종이가 튀어나왔다.

'삼재부(三災符)'였다. '이거 영험한 큰스님께서 써주신 거니까 잘 간직해야 한다.' 올 초 어머니께서 '점 같은 거 안 믿는다니까' 손사래 치는 막내아들을 윽박질러 억지로 지갑 안쪽에 넣어주신 것이다. 어머니는 중요한 일이 있으실 때면 '점'을 보러 가신다. 내가 '점'이라고 얘기하면 역정을 내신다. '점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게 어머니의 지론이다.

꽤 오래전 뉴욕에 출장갔을 때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공공조형물 '황소상'을 보러갔다. 황소는 주식에서 강세장을 상징한다. 그래서 상승장을 '불 마켓(Bull Market)'이라고도 한다. 이 황소조형물의 '심벌'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덕분에 관광객들이 하도 만져서 그 부분만 누런색으로 반질반질하다. 제주도 돌하르방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속설처럼 '거기'를 만진다고 부자가 될 리 만무하지만.

그러나 우리 어머니가 뉴욕에 가신다면 당신의 아들딸이 부자가 되길 바라시면서 정성껏 만지실 게다. 막내아들이 올 한해 큰 사고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도 '삼재부의 영험함'으로 돌리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적' 덕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 언제나 무탈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함' 덕분일 것이다.

-조선일보 2011.11.2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24/20111124028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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