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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추위에 떨던 예술인들에게 새해엔 사회안전망 가동된다…그래도 ‘냉골 정신’은 잊지 말라

노재현

요즘같이 추운 겨울, 온기 없는 방 냉골에서 자 본 사람은 ‘뼛속까지 시리다’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할 것이다. 잠을 청했다가도 몸이 부르르 떨리며 저절로 깨고, 눈꺼풀이 시나브로 무거워지나 싶더니 다시 깨어난다. 때에 전 조각이불로 몸을 휘감고 오한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덧 신새벽이 찾아온다. 1975년 고교 2학년 시절 집을 나와 당시 신인작가이던 이외수씨의 자취방에서 몇 달간 생활할 때가 그랬다. 그해 겨울 춘천지역 문학청년들이 이외수씨를 방문할 때는 ‘예물’이 딸려 왔다. 새끼줄 끼운 연탄 두 장과 시장 좌판에서 파는 손바닥만 한 비지·시래기 뭉치, 그리고 소주였다. 그래도 다들 오연(傲然)했다.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줄줄이 안주상에 올라 난도질 당하고 거꾸러졌다.

 건강보험 제도조차 없었으니 전업 예술인들은 한겨울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월이 꽤 오래 지속됐다. 올해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안양시 석수동 월세방에서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지자 사회 여론이 움직였다. 10월 국회를 통과한 예술인복지법(일명 최고은법)은 그 결실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취약계층 아닌 특정 직업군을 위해 마련한 복지법이다.

 여기에서 예술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다시 불거졌다. 도대체 무엇이 예술활동인가. 예술활동은 어디까지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을 ‘창작·실연·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속된 말로 ‘쯩(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국민 세금을 들여 지원하므로 범위를 엄격하게 정하는 게 당연하다. 내년 말 법 시행을 앞두고 문화부·고용노동부 등이 ‘쯩’을 얼마나 찍어내야 할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예술활동의 직업 인정 문제는 지난 9월 교육과학기술부의 ‘부실대학’ 발표를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추계예술대·상명대 등 예술관련 학과 비중이 큰 대학들이 부실 판정을 받자 크게 반발했다. 졸업생 중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만 취업자로 인정한 탓에 비정규직·프리랜서나 1인 창업자는 ‘미취업자’가 됐고, 덩달아 모교까지 부실대학으로 몰린 것이다. 거센 반발에 앗 뜨거워라 한 교육부는 요즘 문화부와 함께 ‘예술인의 취업’을 재정의하느라 여념이 없다. 월소득 30만원 이상, 사업자등록증 소유자 등을 취업자로 인정하기로 일단 가닥은 잡았다.


 그래도 시비라도 벌이는 지금은 행복하다. 74년 전 “돈이 되면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고 싶다”는 절규를 유언처럼 남기고 떠난 김유정 영전에 예술인복지법 전문을 바치고 싶다. 미흡하나마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게 된 예술인들이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추워도 결코 창작열만은 꺼트리지 않는 ‘냉골 정신’이다.

-중앙일보 2011.12.17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12/17/6559929.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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