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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하종현 화백 50년의 ‘滿船(만선)’

김종호

어부가 가장 뿌듯한 때는 만선(滿船)으로 귀항(歸港)할 때일 것이다. 성취의 만족감은 각 분야가 다르지 않다.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다. 창작 활동을 통해 얻는 ‘만선의 성취’는 개인의 보람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게 하며, 예술의 지평도 더 넓힌다. 대한민국 화단의 원로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하종현(77) 화백이 최근 ‘만선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 의미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상미술의 새 장(章)을 연 하 화백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실험성’을 작품 특징이라고 자평하는 취지 그대로 젊은 시절부터 파격적인 도전을 거듭해왔다. 1962년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할 때도 어두운 색의 물감을 두껍게 화폭에 입혀 불에 그을림으로써 고목(古木)의 껍질이나 전쟁의 상흔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시도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우연히 나타나는 효과와 질감을 중시하는 비(非)정형 미술인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작업이다.

1969~1974년 전위적인 청년 미술가들의 모임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에서 활동하며, 용수철·철사·철조망 등으로 완성된 그림을 죄거나 뚫거나 두르는 식으로 군사정권이 빚어내는 억압적 현실에 대해 ‘침묵의 발언’을 한 것도 새로운 형식이었다. 그 후에 물감과 삼베로 작업한 ‘접합(接合)’ 연작 또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듯이 나는 내 언어를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의 결과다.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물감을 올 굵은 삼베 화폭 뒤편에서 앞면으로 밀어내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거나 손으로 누르는 식의 기상천외한 기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하 화백이 지난해에 “35년 간 매달려온 단색화(單色畵)를 버리고 또 새로운 예술로 승부하겠다”면서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온 것이‘이후 접합’ 연작이다. 그는 화폭에서 파도치는 찬란한 원색의 향연을 통해 ‘만선의 기쁨’을 누린다고 한다. 초기부터 최근까지 대표작 85점을 한 자리에 모아 그의 화업 50년을 돌아보는 전시회가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달 15일 개막, 8월12일까지 이어진다. 그가 표현하는 ‘만선의 기쁨’과 함께 ‘무슨 일이든지 목숨 걸고 해야 높은 경지에 오른다’는 삶의 신조 역시 많은 사람이 공유할 만하다.


 

-문화일보 2012.7.23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72301033037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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