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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인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

이선영

미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인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미술인 데이터 뱅크의 필요성
5월 어느날 필자의 인터넷 시작 페이지이기도 한 대표적인 포탈 싸이트의 인기 검색어로 ‘5.18 민주화 운동’과 새로 나온 영화 ‘스타워스 시리즈’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낀 적이 있다. ‘5.18 민주와 운동’이란 단어는 20여년 전만해도 금기시 된 것으로, 엄청난 제작비와 광고료를 쏟아붇는 다국적 문화상품과 동렬에 서서 정보 이용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몇시간 안에 인기 검색어의 순위는 바뀔 것이고, 이렇게 저렇게 대중의 관심은 변해갈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도의 5.18관련 자료는 20여년 전에도 찾아보려면 찾을 수 있는 자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진실을 알기 위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길목에 그 항목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10명이 알고 있는 진실과 천명, 만명이 알고 있는 진실은 그 무게가 다르다. 양이 많아지면 질적인 전화가 일어난다. 돌이켜 보면 인터넷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것도 불과 10여년 사이의 일이다. 다른 분야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미술 분야에서도 정보를 접하게 되는 주요 통로는 인터넷이 되었다. 일간지와 미술전문지에 실리는 미술기사가 거의 전부였던 미술 관련 정보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으로 폭주하고 있다. 가령 전시 프리뷰를 보자. 메일진으로 자리잡은 네오룩(www.neolook.com) 싸이트에는 전시가 열리기 전에 꽤 많은 작품 사진과 텍스트가 실린 긴 문건의 형태로 수만명의 네티즌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해당 작가들에게 실비의 광고료를 받지만, 부담스러운 도록 제작의 대용으로 경제적이다.
일간지나 월간지의 경우, 자그마한 작품 사진 한두컷에 짧은 안내 기사를 실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전시에 대한 리뷰도 마찬가지이다. 희한하게도 정보가 폭주하는 만큼 전시장이 붐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도 편해진 정보의 열람이 실제 감상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그것은 전시에 대한 담론도 마찬가지여서, 볼거리가 많아질 수록 빽빽하게 채워진 글은 안읽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미래의 미술 관객을 발굴하는데 있어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사실 미술인들끼리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익명적인 대중이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작품을 눈여겨 보며 텍스트를 읽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러하다. 미술의 정보화는 서서히 미술문화를 바꾸어 가는 근본적인 축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정보의 양적인 폭주에 비해 그것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대중적인 포탈싸이트의 검색창에 어떤 미술인의 이름을 치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장난삼아 자기 이름을 검색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때 나오는 정보의 황당함과 난감함을 생각해 본다면, 다른 미술인에 대한 정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찾고자 하는 작가나 미술의 어떤 항목을 입력했을 때, 관련 작가 홈페이지 등의 웹싸이트 주소가 단번에 시원하게 뜨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저런 관련 정보들에 우연히 묻혀 나온 정보들을 추적하여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계속된다.
필자의 경우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지만, 정작 필요한 작가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때는 결국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간다. 가령 그 작가를 알만한 또 다른 작가나 기획자들에게 수소문해서 자료를 얻는 식이다. 일반 대중 및 타분야에서는 물론 같은 미술인들 사이에도 꼭 필요해진 것이 미술인에 관련된 종합 데이터 베이스이다. 미술계에 이미 많은 유용한 싸이트들이 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종합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투명한 도구로서의 효율성을 가진 데이터 뱅크, 요컨대 미술인들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링크와 검색 기능이 강화된 싸이트가 없다. 우리 미술인들은 거창한 대의명분에만 관심이 쏠려 있지, 작지만 정말 필요한 일에 무심하다. 꼭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서 좋은게 아니라, 지금 작동되고 있는 특화된 미술정보 싸이트들을 일반적인 유저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매뉴얼을 재정비하는 것,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미술인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미술 정보화의 의미와 실태
마크 포스터는 [뉴 미디어의 철학]에서 [자본론]의 한구절을 인용한 바 있다; ‘인구는 비교적 희박하나 발달된 통신수단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인구는 더 많으나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더 높다’ 정보는 지구 전체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손아귀로 들어올 수 있으며, 또 전류로 변환되어 저장되고 검색될 수도 있다. 미술에 대한 정보도 시공간의 제약에 덜 구애받는 기호라는 형식을 통해 발신되고 수신된다. 미술이 속해있는 현대사회의 구조 자체가 메시지들이 수렴되고 발산되는 소통 격자로 재편성되고 있다. 반세기전 인터넷을 가능하게 발상의 효시는 새로운 형태의 백과사전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압축된 문서를 자동적으로 검색한다는 개념이다.
오늘날 기술은 최대 수행성(optimal performance)이라는 원칙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수행성의 개념은 고도로 안정된 체계를 전제로 한다. 에너지의 투입은 최소화하고 정보의 산출을 최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리오타르는 기술은 진리, 정의, 아름다움 등과 관련된 게임이 아니라, 효율성과 관련된 게임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은 더욱 커져 단순한 창의 역할을 넘어서 현실을 규정하고 생성해 간다. 약호화 내지 디지털화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 데이터 뱅크는 미래의 개개 사용자들의 능력을 넘어서서 새로운 자연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자연은 희소성과 필요에 기준을 둔 이전의 자연법칙을 벗어나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근대의 정치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된다. 정보는 무한히 복제할수 있고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근대근대 경제학의 기본인 희소성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인터넷은 나무줄기나 세포처럼 연결이 집중되는 중심 줄기 부분이 있고 여기에 접속이 비교적 덜한 수많은 가지들이 뻗어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전체 웹 상에서 검색엔진에 포착되지 않는 숨겨진 정보들이 많이 있다. 미술인에 관련된 정보들도 그 중 하나이다. 미술인들에 관련된 총괄적인 데이터 베이스 구축의 필요성은 모든 것을 하나로 수렴하는 중심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다.
인터넷 망 그자체가 그렇게 생겼듯이, 하나의 중심축은 수많은 잔가지들로 접근을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교통 정리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매우 공공적인 성격을 지니며, 이 방대한 일을 지속적으로 전담할 기구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문예진흥기금으로 해마다 ‘예술정보화’라는 항목으로 많은 액수의 기금이 지원되는 것으로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 사업에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미술인 관련 데이터 베이스만 제대로 구축되어도 미술문화는 상당히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특히 문예진흥원의 여러 기능들이 민간으로 이양되어가는 시점에서 기구의 투명성을 가다듬는 것은 중요하다.
몇몇 잘 돌아가는 미술사이트들도 이제는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기 때문에 정보와 광고를 뒤섞는 식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돈있고 힘있는 작가들은 여전히 온라인 상이나 오프라인 상이나 좋은 길목에 위치해 있고, 미술 정보의 폭주 속에서도 여전히 사각 지대에 존재하는 작가들이 있다. 따라서 미술인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프로젝트이며,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 존재하는 미술인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 소식에 관련된 정보에 채 100개의 클릭이 안되는 일이 허다한데, 공모전같은 전시 지원에 대한 정보에는 1000 건이 넘는 클릭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공모전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사업들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또한 미술인들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의 추진은 이론과 현장 간에 존재하는 간극을 많이 해소시킬 것이다. 사실 수많은 미술관련 학회가 있고 해마다 미술관련 논문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그것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닿지 않는다. 졸업논문이나 학술논문, 온라인 상이나 오프라인 상의 작가론, 전시 비평같은 것들은 이론가들의 생산물이며 작가의 작업에 대한 정보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기본적인 소통구조가 확립되면 전문 미술잡지들은 단순 정보전달을 넘어 보다 심층적인, 그래서 자신의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확보될 수 있다. 사실 인터넷에서 작가나 전시에 관련된 담론을 새로이 창출하기는 쉽지 않다. 1999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웹진 미술과 담론(www.artndiscourse.net)를 비롯하여, 2000년대 이후 몇몇 미술 웹진이 생겨났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간단한 논평 이상의 텍스트를 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의 투자와 동기 부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체가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는 일은 힘들다 할지라도, 오프라인 상이든 온라인 상이든 이미 만들어진 텍스트가 있다면, 그것이라도 정보로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기승전결을 갖춘 텍스트의 형태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미술은 결국 이미지로 어필하는 것이니만큼, 다른 싸이트의 노하우를 빌릴 수도 있다. 가령 디지털 사진 전문 싸이트인 ‘디시인사이드’처럼 이미지 중심의 갤러리를 운영한다거나,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포트 폴리오를 쉽게 올릴 수 있게 하는 방식도 있다.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데이터 베이스는 자신을 미술계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와 그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 간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보다 다양한 언어게임이 이루어지는 장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데이터베이스 망의 구축에 있어 수많은 작가들을 하나의 채로 걸러내는 식의 발상은 자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과 시도였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실패한, 문예진흥원의 500인 작가의 홈페이지 제작 사업이 그러하다. 누가 누구를 대변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개별 작가의 세계를 직접 접하고 싶은 것이 네티즌들의 욕망이다. 더구나 이제는 블로그 같은 개인 홈페이지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각 작가가 만들어놓은 홈페이지의 성격이나 개성을 유지하면서 링크와 검색기능이 강화된 공공적인 싸이트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별 작가의 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인터페이스이다.
전체와 부분이 제대로 연동될 때 개점휴업 식으로 방치되어있는 각 홈페이지도 활성화 될 수 있다. 개별성과 자율성을 살리는 네트워킹, 요컨대 열린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물론 각자 업데이트 시킨 내용물를 네트워크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통적인 양식과 정보의 축약 부분은 있을 수 있다. 확립된 정보의 틀에 의해 작품이나 텍스트의 질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관건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시너지 효과를 증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미술 작가의 이름을 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살려 외국에서의 접근도 용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화에 취약한 집단들의 홈 페이지 제작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보가 재화인 시대에 정보 빈자에 대한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많은 것을 축약하게 되면서 정보혁명은 현실을 ‘다양한 요소들이 내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담론적 총체화’(마크 포스터)로 만들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 형태로 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은 문화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지 사이버 공간 내에서 정보에 접근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보를 입력하고 바꿀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리오타르는 원칙적으로 모든 전문가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완벽한 정보 게임에 의해 지배되는 포스트모던적 지식의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능력이 똑같다면 여분의 수행성은 결국 상상력에 달려있다. 상상력은 게임 참여자가 새로운 수를 두게할 수 있고 게임규칙으 바꾸게 할 수도 있다.
리오타르에 의하면 사회적 유대는 언어적이지만 단일한 실로 짜여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사회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언어게임들, 다시말하면 언어 요소들의 이질성이 있다. 그것은 차이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세련시켜주고 통약 불가능한 것에 대한 관용을 강화해준다. 그 원리는 전문가의 상동성이 아니라 발명가들의 배리(背理)이다. 결국 효율성있는 투명한 도구의 확보는 이질성과 차이를 지향하는 예술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작가들은 그 도구가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실제로 ‘굴뚝 산업’과 연결되지 못한 인터넷 업체들이 수익 창출을 못하여 사라져가고, 그래서 인터넷 포탈 업체들이 오프라인 브랜드 마케팅에 몰두하고 있듯이, 미술에 있어서도 전시장이나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상황이 더 중요하기는 하다.
사실 인터넷은 작업보다는 담론에 강한 작가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인터넷 상에서 화려한 말빨이 구사하는 작가의 실제 작업이 말만큼 따라주지 못할 때 적지않은 실망을 주기도 한다. 물론 담론 역시 작업의 일환일 수 있고, 담론화는 어느 순간 개념화의 길로 나아간 현대 미술사의 경향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미술은 본질적으로 몸뚱아리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나비처럼 떠도는 말들의 향연을 피해 인터넷 문화와 완전히 등지는 작가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소모적인 논쟁들 자체도 미술이 가지는 내적인 특성이다.
이미 여러 미술 싸이트나 홈페이지가 가동되고 있는 중이지만, 또 다른 인터페이스 즉 미술인에 관련된 종합적인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공공성과 합리성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을 통해 만들어져서 필요한 이들이 백과사전처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싸이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공공성이 강한 미술 싸이트의 구축이 가능해 진다면 개별적인 웹 싸이트의 정보 생산력도 강화 될 것이며, 작가들은 부차적인 일들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에 더욱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네트워크로 피드백 되어 미술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다.

문화예술 2005.6월호 '문화현상읽기-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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