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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_자연 속 은거隱居의 삶이면 족하리

조은정

글 ㅣ 조은정


초야에 묻힌 즐거움 1801년 12월 깊은 겨울에 단원 김홍도(1745~1805)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공의 벼슬자리를 준다 해도 초야에 묻혀 사는 한가로움과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내용의 <삼공불환도>를 그렸다. 그가 그린 산수화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8폭 병풍이었다. 수두에 걸린 순조 임금의 병이 완치되어 온 나라가 기뻐하던 중, 한모라는 관리가 발의하여 그림 계를 만들어 휘하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삼공불환도>는 전체적으로 보는 이가 새가 되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장대한 산수화이다. 화면 오른쪽에는 정자에서 아회雅會를 갖는 이들에게 밥과 술을 내오는 장면과 집안 풍경이 펼쳐지고, 중앙에는 우뚝 솟은 산과 초야가 있고, 왼쪽에는 상단에 「낙지론樂志論」이 적혀 있고, 멀리 소를 타고 오는 사람, 논에서 일하는 노부, 낚시하는 촌부와 그에게 식사를 나르는 듯한 그의 처와 아이 그리고 농가가 보인다. 원래‘삼공불환’이라는 말이 「낙지론」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문인 홍의영은 화제로적었는데 그림에 맞는 내용의 글을 골라 적은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중국의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을 좋아하였다. 하지만 화가는 실지 조선의 인물과 풍경을 적용하여 내용을 해석, 조선의 풍속도처럼 그려 내었다. 조선문화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삼공불환도>도 바로 그러한 그림 중 하나이다.
“거처하는 곳에 좋은 논밭과 넓은 집이 있고 산을 등지고 냇물이 흐르고 도랑과 연못이 둘러 있으며,대나무와 수목이 두루 펼쳐져 있고, 타작 마당과 채소밭이 집 앞에 있고 과수원이 집 뒤에 있다. 배와수레가 걷거나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대신하여 줄 수 있고, 심부름하는 이가 몸을 부리는 일에서 쉴 수 있게 한다. 부모를 봉양함에는 진미를 곁들인 음식을 드리고, 아내나 아이들은 몸을 괴롭히는 수고도 없다. 좋은 벗들이 모여 머무르면 술과 안주를 차려서 즐기며, 기쁠 때나 길한 날에는 염소와 돼지를 삶아 바친다.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시원한 바람을 좇으며 헤엄치는 잉어를 낚는다. 통달한 몇몇과 도를 논하고 책을 강론하며 하늘과 땅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고금의 인물을 평한다. 남쪽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청상곡의 미묘한 곡도 연주한다. 온 세상을 초월한 위에서 거닐며 놀고 하늘과 땅사이를 곁눈질하며 당시의 책임을 맡지 않고 기약된 목숨을 길이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하늘을 넘어서 우주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니,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열심히 글을 읽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한 선비들의 삶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벼슬길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궁극적인 도道를 지향할 경우에는 세상에서 떠나 자연과 함께 은거하는 삶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 「낙지론」은 바로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비단에 담채로 그린 병풍은 그러나 소장가의 집에 불이 나서 하단부가 불에 타고 말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림 부분이 잘 남아 있어 접이식의 병풍이 아니라 커다란 족자로 표구하여 보관하고 있다.
경계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다 화면 우측의 집안 풍경이 이 그림의 주요 내용이다. 집은 들과 산의 자연영역과 담을 쌓아 인간의 구획을 설정하였다. 기와까지 얹은 담장은 솟을대문을 통해 집안과 소통된다. 하지만 높은 누각을 담장 위에 두어 바깥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은 높은 담의 경계가 정신적인 경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집은 바깥채와 사랑채, 안채와 후원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조선시대 반가의 생활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바깥채 또는 사랑채는 남성의 영역이다. 연잎이 떠 있는 네모난 연지에 발을 담근 정자에는 손님이 와아회를 열고 있다. 밖을 내다보며 시상詩想을 고르는 사방관을 쓴 선비 앞에는 바르게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방관을 쓴 선비의 자태가 단아하다. 갓을 쓴 이는 손님인데 왼손에는 부채를 들고 오른손에는 종이를 들고 있어 막 글을 쓰려는 참인 성싶다. 난간 가까이에는 젊은이 둘이 선 채로 환담 중인데 마당을 가로질러 주안상을 들고 오는 찬모가 보인다. 찬모가 든 소반 위에는 술병과 찬그릇이 보이는데, 술병은 색이 짙은 옹기이고 찬그릇은 흰색의 백자를 쓰고 있다. 백자보다 표면이 거친 옹기는 표면의 통기성 때문에 곡주를 담기에 좋고 백자는 흔히 맑은 술을 담았으니, 찬모가 들고가는 것은 곡주에 조촐한 찬을 올린 소박한 주안상인 것이다.

정자의 문은 모두 위로 들어올려 사방을 개방한 분합문이어서 겨울에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공간의 운영법을 보여준다. 마루에는 기다란 평상을 두고 그 위에서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누워 책을 읽는 선비가 있다. 그의 발치에 연상이 있어 쉬는 듯이 보이지만 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마음을 닦는 선비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방 안에는 기다란 장죽을 물고 창턱에 기대 툇마루 밖을 내다보는 선비가 의젓하게 앉아 있다. 그는 마당을 거니는 두 마리 학을 바라보는데, 학은 무병장수의 상징이므로 이 선비의 조용하고 고상한 삶을 대변한다 하겠다. 김홍도는 학 두 마리가 거닐거나 날아가는 모습을 여러 점 그렸다. 서책이 쌓인 방 안에는 책상을 사이에 둔 선비와 아이가 함께 글을 읽고 있다. 그 앞쪽으로는 초가를 얹은 마구간에서여물을 먹이는 시종이 있다.
조선시대 남성의 공간은 손님을 맞고, 자녀를 교육하며,독서를 하는 사랑채이다. 사랑채는 집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어 사회에서 집 안으로 들어서는 첫 공간이다. 남성의 생활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데 행랑 사이로안채와는 항상 소통할 수 있는 문이 있어 내외는 하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안채 마당에는 수탉과 암탉이 새끼들을 이끌고 거닐고 있다.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개도 두 마리가 앞서거니뒤거니 하여 짝임을 알려준다. 닭들은 새끼들을 넘보는 두 마리 개를 경계하는 몸짓을 보인다. 마당 건너편의 마루에서는 베틀을 놓고 길쌈을 하는 여인이 있다. 툇마루에는 여인이 앉아 물레를 돌려 길쌈에 쓰일 실을 잣고있다. 안채의 뒤쪽인 별당에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이 나무에 걸린 그네를 타고 있는데 아기를 업은할머니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후원에는 빽빽한 대나무숲 앞에서 노루가 뛰놀고 장독대도 그득하여 살림이 넉넉하고 안온하다.
그림에서는 여성의 공간과 남성의 공간을 구분하여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다.손님 접대와 독서, 훈육의 공간 그리고 여성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등을 보여준다. 한 집이지만 각기 다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상사가 서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그 영역의 경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조합 안채 마루에서 여인이 베틀에 앉아 길쌈하는 모습은 김홍도의 풍속화첩에도 나온다. 베틀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분리하여 두었다가 조립하여 쓸 수 있는데 몸체와 베틀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짜기는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여인의 노동이지만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서 여성이 맡은 주요한 생산체계이기도 했다. 풍속화첩에서는 베틀의 자세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길쌈질하는 여인의 앞모습과 실에 풀을 먹이는 모습을, <삼공불환도>에서는 길쌈을 하는 옆모습과 물레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아들은 책을 읽고 남편은 자리를 짜는 <자리짜기>에서도 물레를 돌려 실을 잣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 길쌈하는 장면을 재구성할 수 있다. 풍속화첩에서의 <길쌈>이 서민을 모델로 하고 있어 구김이 많이 간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한데 반해 <자리짜기>의 여인은 비록 가난하지만 곱게 빗은 머리, 단정한 매무새를 하고 있으므로 반가를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의 여인 또한 그러한 모습이리라 짐작케 한다. 별당에서 아기를 업고 그네 뛰는 처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길쌈>에서 며느리 뒤에서 아기를 업은 노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서민의 힘든 노동을 위하여 아기를 돌보는 노파의 심정과 그네 뛰는 소녀를 바라보는 노파의 심정은 다를 것이다. 아기를 업은 채 그네 뛰는 소녀를 바라보는 노파의 애정 어린 태도가 작은 그림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한편, 사랑채에서 생활하는 남성은 손님이나 시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을 쓴 사람이다. 양반은 집 안에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생활했으므로 그 집에 기거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손님을 맞아 시를 짓거나 거문고를 연주하고 독서를 하거나 아이를 훈육하고 자연을 감상하고 마당을 내다보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별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인물이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전부 보여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즉,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풍족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도만을 추구하는 삶, 가끔 벗이 찾아오면 기꺼이 맞아 주안상을 내오고 시를 읊조리는 생활은 조선시대 선비의 이상향이었다. 그런 이상적인 삶을 병풍에 그려 방에 둘러 두고 사는 삶은 항상 검소하고 자연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니, 12월 깊은 겨울에 그린 그림이 5월의 따사한 햇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소원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은정│미술평론가 겸 미술사학자. 196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아르꼬스모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대원사 기획실장, 한국근대미술사학회 간사로 활동했고 제2회 구상조각회 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 조각미의 발견』, 『비평으로본 한국미술』(공저) 등이 있으며 현재 한남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출처-기전문화예술 2005.11ㆍ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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