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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1) 신화의 변주-헬레니즘과 헤브라이

편집부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신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 신과의 관계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헬레니즘과 ‘신본주의’ 의 헤브라이즘을 아는 게 필수적이다. 사진은 헬레니즘의 본산지인 그리스 아테네 전경.
서해를 건너자. 광활한 중국대륙을 지나, 인도 문명이 태어난 갠지스강과 인더스강을 넘어, 페르시아 제국의 옛 영토를 가로질러가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고도(古都)를 지나리라. 그 땅이 끝나는 지점에 서자. 일렁이는 옥빛의 지중해 - 그 왼쪽으로는 나일강 문명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있어 구라파 대륙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피어난 서구 사상을 하나의 거대한 건물에 비유한다면, 이를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바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Hellenism)’이란 ‘헬라스(Hellas)’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을 가리킨다. ‘헬라스’란 영어로는 ‘그리스(Greece)’며, 한자로는 ‘희랍(希臘)’이다. 따라서 헬레니즘이란 고대 그리스(희랍) 사람들의 사상과 문화 전체를 가리킨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역사.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기하학을 정리한 유클리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유레카(알아냈다)!”를 외치며 알몸으로 목욕탕을 박차고 나왔다는 아르키메데스. 문(文)·사(史)·철(哲)의 인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의 영역에서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쌓아올린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만들어냈다.
한편 ‘헤브라이즘(Hebraism)’이란 ‘헤브라이(유대)’ 민족의 사상과 문화, 종교를 가리킨다. 이는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고, 예수가 유대교 율법을 사랑의 원리로 완성시킨 기독교의 바탕이 되었다. 기독교는 당시 서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로마를 지배하며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1000년 이상 중세를 지배하는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였다. 근세의 종교개혁 이후 현대까지도 기독교는 여전히 서구 사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이며, 이런 까닭에 헤브라이즘을 빼고는 서구를 이해할 수 없다.
구약성서에 근거한 헤브라이즘의 세계 속엔 여호와라는 유일신이 중심에 있다. 인간은 유일신의 피조물이며, 오로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고, 그 영광의 후광을 입어야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헤브라이즘은 이른바 ‘신본주의(神本主義)’라 불린다. 반면 헬레니즘은 인간이 중심이 된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한다. 기독교가 중세 내내 위세를 떨칠 때, 이에 도전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인문주의자들이 “고전으로, 원전으로”를 외치며 헬레니즘의 ‘재생(Renaissance)’을 기도하였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과연 헬레니즘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진정한 인본주의로서 신본주의와 맞서고 있는가? 적잖이 의심쩍다. 왜냐하면 헬레니즘을 단순히 인본주의라고 말하기엔 그 안에 너무나도 많은 신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헬레니즘의 중심지였던 ‘그리스’에 제일 먼저 ‘신화(神話)’라는 단어를 연결시킬 것이다. 몇해 전부터 ‘그리스 신화’는 교양인의 필독서가 되었고,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와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다.
헬레니즘의 문학 속에는 온통 신들의 이야기가 메아리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는 신들이 역동한다. 그리스 비극에는 인간과 신들 사이의 함수관계가 플롯의 궤적을 이끈다. 사포의 서정시에는 신들의 입김이 아련하게 후끈거린다. 문학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말한다. “신은 우주의 정신”이며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고. 플라톤은 철학적 대화편 속에서 신에 대한 믿음과 경건함을 강조하며, 종종 논리적인 변증을 보류하고 신화적 설명에 의존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진실을 열망하고 탐구하는 철학의 최고 정점에는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 중의 존재가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이 바로 신이다. 따라서 철학(philosophia) 가운데 으뜸 철학이란 ‘신에 대한 탐구’, 곧 ‘신학(theologia)’이 된다.
도대체 헬레니즘을 형성하고 주도하던 사람들 가운데 신을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신으로 충만한 세계를 가진 헬레니즘은 신을 향한 열정의 표현이며, 헤브라이즘과는 다른 방식의 신본주의일지도 모른다. 헬레니즘이란 신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헬레니즘의 원초적이고 핵심적인 패러다임을 ‘뮈토스(muthos)’라 할 수 있다. 이를 ‘신화(神話)’라 번역한다. 신화란, 말 그대로 풀어본다면 ‘신(神)’에 관한 ‘이야기(話)’다. 가장 넓고 소박한 의미에서 신화란 신이 등장하는 이야기, 신이 빠지면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이런 규정 속에서 우리가 픽션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는 물론, 진지한 종교적 경전 역시 신화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다.
과연 신화는 픽션이고, 종교적 경전은 진리를 표현한다고 둘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 재미있게 읽고 있는 그리스 신화도 그것이 성립하고 유행하던 당시에는 픽션이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제우스나 아폴론, 아테네 등과 같이 그들이 숭배하던 신들을 믿지 않는 불경스러운 인물이라고 사형을 언도하였다. 기독교의 이론적 초석을 닦았던 바울이 그리스 지역에서 전도활동을 하며 이적을 베풀었을 때, 그곳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취급하였다. “바나바와 사울이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을 낫게 하자,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라, 사울을 헤르메스라 칭하고…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사도행전 14장 8~20절).” 성경 속에 기술된 이 사건은 환하게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실존하며, 만물의 온갖 현상을 일으킨다고 믿었으며, 경건한 찬양과 제사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 시대의 종교적 경전은 머나먼 미래엔 흥미로운 ‘신화’가 될지도 모른다.
된장국에 된장만 있는 것이 아니듯, 신화엔 신만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엔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이 움직인다. 신화는 말 그대로는 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다. 헬레니즘의 문화 속에서 신화란 신을 통해 인간 세계의 역사와 자연과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고 유통되던 인식의 도구였음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중요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이로써 서구 정신의 건물 전체엔 신을 향한 인간의 지향성이 변주되며 깊게 울린다.
어찌 보면 서구인들은 신 없이는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신화는 신화로 끝나지 않고 탈신화적 사유 속으로도 깊이 배어들어 갔다. 서구인들의 ‘신 중심적(theocentric)’ 사유의 경향성은 세계의 중심에서 ‘신(神)’의 이름을 지우더라도, 그 이름의 빈자리엔 다시 ‘신적(神的)’인 무엇인가를 놓고야마는 행태 속에서 이성이 신이 되고, 자본이 신이 되며, 과학이 신이 되고, 물질과 허무조차 신이 되는 사유의 틀 속에서 오롯이 도드라진다. 신이나 신적인 존재를 중심에 두고 모든 존재를 유기적인 통합체 속에서 설명하려는 사유의 방식, 그것이 서구 사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경향신문 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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