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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 강국이 21세기 강국이다]4.30년 앞을 내다보는 기업이 기초예술을 지원한다

편집부

전위예술 키우는 전통기업
기초예술강국이 2세기 강국이다
“뜻있는 젊은이여, 돈있는 우리에게 오라”
특별취재팀
김태훈기자(문학담당) scoop87@chosun.com
김수혜기자(미술담당) goodluck@chosun.com
김성현기자(음악담당) danpa@chosun.com
박돈규기자(연극·무용담당) coeur@chosun.com
전세계에 수출되는 한국 뮤지컬, 해외 일급 컬렉터들을 전율시키는 한국 예술가,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 해외를 뒤흔드는 한국 문화 붐…. 이런 우리들의 꿈은 문학·무용·연극·미술·음악 등 기초 예술을 육성하는 비전과 투자가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지난 연말 특별 취재팀을 구성해, 3개월간 9개국 14개 도시를 뛰며 자국(自國)의 기초 예술을 살리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을 취재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 사회와 지역 공동체는 어떻게 예술에 기여하는지, 기업은 어떻게 후원하는지 4가지 주제에 따라 이 문제를 파헤친다.

가는 비가 벨기에의 푸른 들판을 적셨다. 이곳은 캉(Kain). 인구 3만5000명인 소도시 투르네 외곽에 있는 한적한 소읍이다. 설치 미술을 하는 작가 로렌스 더보(44)씨가 2년 전 이 마을에 있는 버려진 직물 공장을 사들여 작업실로 개조했다. 그녀의 직업은 미대 교수. 그러나 작가로선 무명이다. 교수 봉급 외의 다른 수입이 없다. 그래도 그녀는 지난 1년간 돈 걱정 안하고 원 없이 재료를 사 쓰며 작품을 만들었다. 수도 브뤼셀에 있는 라 베리에르 에르메스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두 달간 더보씨의 개인전을 열어준 뒤, 전시가 끝나자 작품을 작가에게 돌려줬다. 이걸 컬렉터에게 팔건, 다른 전시회에 올리건 더보씨 자유다.

▲로렌스 더보 씨가 지난해 9~10월 벨기에 브뤼셀의 라 베리에르 에르메스 미술관에 전시한 설치 작품‘우리 존재는 65%가 물’의 일부. 더보 씨는 유리를 불어서 만든 공과 대롱 1000개에 물 34Z를 담아 유리 진열대 40개에 올려놓았다. 이 미술관은 명품 가방과 옷 등을 만드는 에르메스사(社)가 2001년 지은 전시장으로, 에르메스는 매년 유럽 작가 4명의 작품을 이 미술관에 세운다. /로렌스 더보 씨 제공

◆전위 예술 후원해 ‘젊은 기업’ 이미지 구축하는 에르메스
라 베리에르 에르메스 미술관은 명품 가방과 옷 등을 만드는 에르메스사(社)가 2001년 브뤼셀에 지은 전시장이다. 에르메스는 매년 살아있는 유럽 작가 4명을 골라 이 미술관에 세운다.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고, 재료비를 댄 뒤, 미술관에서 2~3달 동안 전시회를 열어준다. 에르메스 본사 인력을 동원해 언론과 평단에 홍보도 해준다. 브뤼셀 전시가 끝난 뒤, 이 회사의 싱가포르·서울·도쿄·파리지점에 있는 미술관에서 추가로 해외 전시를 열 수 있게 주선해주기도 한다.
알리스 모겐(68) 예술 감독은 “우리는 ‘인기 작가’ ‘뜨는 작가’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비상업적인 작가를 고른다는 얘기다. 전략적인 선택이다. 에르메스는 “전통에 충실한, 값비싼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전통에서 일탈하는 실험적인 작가를 후원해서, ‘고급’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젊다’는 인상을 추가하는 것이다.
◆미술 문외한을 현대미술관으로 이끄는 징검다리, ‘까사 엔센디다’ 전시장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까사 엔센디다’ 전시장은 평일에도 아이 손 잡고 놀러 온 일반인 미술 팬으로 북적거린다. 공연이 있는 주말 밤에는 스타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메인 홀에 500명 넘게 관객이 꽉꽉 찬다.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회와 공연과 워크샵은 모두 무료거나, 무료에 가까운 소액이다.
‘까사 엔센디다’는 마드리드 은행이 2002년 설립해, 매년 96억 원씩 예산을 대는 독립법인이다. “이 돈을 다 쓰고 절대 수익을 올리지 않는 게 운영 원칙”이라고 이 전시장 이그나시오 카브레로 로드리게스(40) 문화국장은 말했다.

▲공연장을 품고 있는 일본 교토역. 오른쪽 기둥에‘교토극장’이라고 적혀있다. /교토=박돈규기자
목표는 현대 미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 전시장에서는 미술품 옆에 작품이 무슨 뜻인지, 왜 좋은 작품인지, 왜 흥미로운지 쉬운 말로 설명한 한 장짜리 설명서가 수북이 쌓아 놓는다. 일반인과 미대생 20~30명이 작가의 지도에 따라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는 소규모 워크숍도 1년에 600회 연다.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한, 돈 없는 사람에게도 ‘작가’가 되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평론가 하비에르 몬테스(29)씨는 “까사 엔센디다가 생기기 전에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현대 미술 전시장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로드리게스 국장은 “미술 문외한이 어느 날 갑자기 국립현대미술관에 나타날 리 없다”며 “사람들이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나오다가, 차차 호기심을 느껴서 다른 미술관에도 드나들게 만드는 게 핵심 전략”이라고 했다.
◆기차 역에 극장 만든 일본철도(JR)
연간 4700만 명이 이용하는 일본 교토(京都)역. 신간센과 지하철이 연결되고 호텔, 백화점, 쇼핑센터가 밀집된 역사(驛舍) 안에 1000석짜리 교토 극장이 있다. 일본철도(JR)는 2002년 이 극장을 극단 시키(四季)에 장기 임대했다. 시키는 이곳에서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공연 중이다.
이 공연장을 찾는 관객 대부분이 철도를 이용한다. 승차권 판매소에서 공연티켓도 판다. 직장인 이노우에(여·28)씨는 “철도로 출퇴근하는데, 교토극장이 집과 회사 중간에 있어 평일 저녁에도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교토극장 이용객은 연간 30만~34만 명. 하지만 효과는 그 숫자 이상이다. 교토역 개발 주식회사의 요시히로 시미즈 지배인은 “관객은 공연장에만 들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공연이 있는 날 교토역 주변 레스토랑은 10~20%, 호텔은 7~12%씩 매출이 는다.
시키는 1985년 오사카에서 JR이 소유한 땅을 빌려 뮤지컬 ‘캣츠’를 공연한 것을 비롯해 20년 넘게 JR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JR은 2009년 새로 완공되는 센다이(仙臺)역에도 ‘기차역 공연장’을 지을 계획이다. 요시히로 지배인은 “철도와 공연은 둘 다 사람이 있든 없든 달려야 하고, 소음을 많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문화를 지원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게 ‘역사 안 공연장’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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