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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 강국이 21세기 강국이다]5ㆍ끝 “우리는 어떤가, 어떻게 해야하나” 전문가 대담

편집부

“대중적인 것만 찾다간 미래에 우리 고전은 없다”
인상주의도 당시엔 아방가르드 대접
한편엔 대형 미술관·공연장 짓지만
한편엔 연습실 부족한 무용·음악계…
현장 목소리 반영한 정책 입안해야
정리=김성현기자
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
음악·미술·문학·연극·무용 같은 기초예술이 깊은 뿌리를 갖지 못하면 그 나라 문화의 층위도 결국 부실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특별 취재팀을 구성하고 9개국 14개 도시를 돌며 세계 각국이 기초예술을 튼튼히 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4회에 걸쳐 연재했다. 소설가 김연수씨, 정은숙 국립오페라단 단장, 우연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차장, 미술 비평가 강수미씨가 12일 기초 예술 육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정은숙 국립오페라단 단장, 소설가 김연수씨, 미술비평가 강수미씨, 우연 예술경영지원센터 차장.
―‘한류(韓流)’ 열풍이 불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정작 기초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우연=개인적으로 기초 예술은 ‘미래의 고전(古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트렌드를 따라가는 분야와 기초예술이 다른 이유는, 기초 예술의 파장이 그만큼 크고 영향이 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전은 ‘전범이 되는 예술’인데, 상대적으로 고전을 만드는 과정이나 고전에 대한 가치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기초 체력이 매우 빈약한 비만아’ 같다고 할까.
▶강수미=기초 예술과 대중 문화라는 이분법으로만 접근하는 건 환상이겠지만, 우리 문화의 토양이 되는 ‘기초예술’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화가 갈수록 복합화하고 빠르게 변화하는데 그 속에서 기초예술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인상주의는 고전에 속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창작 당시에는 냉정한 대접을 받았다. 그 시대의 아방가르드는 지금 우리에게 고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동시대 작품에 대해 계속 지원하고 주목할 때, 훗날 그 작품이 다시 기초예술이 될 수 있다.
―예술 창작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정착된 편인가.
▶김연수=문예지에 소설이 실리면 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많다. 산업적으로 접근해서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을 곧바로 계산하는 방식이 진정한 기초예술 육성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추곡 수매 당한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작품을 쓰고 어쩔 수 없이 지원을 받지만, 창작자의 의욕과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민간 차원에서 장학금 형식으로 지원하는 창작 지원금 제도가 정착돼 있다. 민간 재단에서 문학 분야에 창작 지원을 한다면 우리에게도 큰 변화일 것 같다. 각 지자체나 학교에서 순수 문학을 향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살려나가야 한다. 작가들이 낭독회 등을 통해 독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가 더 필요하다.
▶정은숙=예술의 산업화에서 가장 피해를 받는 게 순수음악 분야인 것 같다. 음악회를 하나 준비해도 음악 자체로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중적인 것을 찾다 보니 퓨전처럼 자꾸 다른 걸 집어넣으려고 한다. 고전이나 기초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을 자꾸 잊게 된다. 그럴수록 음악 자체를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애써야 한다.
―현재 기초 예술을 지원하는 방법에 문제는 없는가.
▶우=사실 공연 예술은 결과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제작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의 제도나 정책은 결과만 남긴다. 영국 런던의 BAC라는 극장에서는 제작 과정을 5단계에 걸쳐서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작품 아이디어만 있어도 그 아이디어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프로듀서나 제작자들도 여기에 와서 작품이 될 수 있을지 판단한다. 이런 피드백을 계속 주고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만들어진 공연의 백스테이지를 보는 것에 머물고 있다. 제작 과정 자체를 공개하면 예술가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정=프랑스는 인프라 투자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우리는 무용이나 음악 분야에서도 연습실이 충분하지 않아서 고생한다. 이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입안자가 많아야 한다. 대형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짓고 있지만 정작 연습장도 없어서 고생하지 않는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를 잘 모르고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강=전문가나 작가에 대한 후원이 예전보다 훨씬 늘어난 편이다. 하지만 항상 ‘선(先)지원 후(後)평가’ 방식이다 보니 항상 일단 지원해서 성공하고 난 뒤에야, 그 때부터 작업을 추진한다. 때로는 지원을 받을 법한 프로그램에만 치중하는 ‘프로젝트형’ 예술 사업이 왕성해진다. 자칫 모방과 카피의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에도 ‘상주 작가’나 ‘상주 예술가’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 적지 않지만 조건이 많이 붙어서 정작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심사에 많이 참여했지만, 지원 대상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이 돈을 지원 받아서 얼마나 작품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솔직히 ‘편법 공연’도 많다. 급하게 창작해서 무대에 올리고 나면 끝인 공연이 많은 것이다. 공연 지원금은 더욱 더 엄밀한 기준으로 선별해서 잘 하는 단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식으로 변해야 한다.
▶우=기획 인력이 없다 보니 작가나 예술가가 기획자로 변신한다. 해외 진출 오퍼를 받았는데 예술가 본인이 직접 영어로 레터를 쓰느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작가들은 창작 활동에만 힘쓸 수 있도록 전문 인력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레퍼토리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무대에 한 번 올리고 다음부턴 책임을 못지는 일회성 공연이 많다. 작품의 생명력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예술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강=어린 아이 때부터 생생한 문화 체험이나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 그룹이 절실하다. 외국에서는 작가들이나 창작자들이 직접 예술 교육에 참가한다. 학생들에게 예술에 대한 일종의 ‘긍정적 판타지’를 심어주고 나아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김대진 같은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동네 학교와 문화회관에서 아이들이나 지역 주민과 함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예술인이 단지 기능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관객들이나 독자들과 함께 사회와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조선일보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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