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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뜯어보기 (2) 앤디 워홀에 휘둘리는 세계 시장

편집부

미술개념 뿌리째 흔든 ‘팝아트 선구자’의 힘
- 최윤석 (서울옥션 기획마케팅팀 과장)
- 조선일보 6월 2일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2800만 달러에 낙찰된‘레몬 마릴린’(캔버스에 실크 스크린·1962). 지난 5월 16일,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 센터. 세계 양대 경매회사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티의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이 열렸다. 크리스티 경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세일이지만, 이날 출품작은 고작 79점뿐이다. 선별에 선별을 거쳐 그야말로 현대미술 거장들의 최고 작품만이 모인 자리다.
앤디 워홀(1928~1987)은 지난해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낙찰된 작품 가격의 총액이 피카소 다음으로 높았다. 그의 입지는 이날 경매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출품작 79점 가운데 9점(11.4%)이 워홀의 작품이었고, 총 낙찰금액 3억8465만 달러(이하 구매수수료 포함) 가운데 35%나 되는 1억3515만 달러가 워홀 작품의 낙찰 금액이었다. 그의 작품 ‘그린 카 크래시(Green Car Crash)’는 7170만 달러(약 665억원)에 낙찰돼 이날 최고가를 기록했다.
앤디 워홀, 그는 분명 오늘날 세계 미술시장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가 없는 미술시장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면 미술시장은 왜 워홀에 열광하는가? 또 워홀을 통해 미술시장은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가?
인기 있는 팝아티스트라면 워홀 말고도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많이 있다. 물론 이들 역시 활발하게 거래되긴 하지만, 그 인기가 워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워홀의 인기를 단순히 팝아트에 대한 선호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갈렌슨(David W. Galenson)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약진’이란 글을 통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워홀의 위상을 설명해준다. 갈렌슨 교수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있는 미술사 책 30권을 분석한 결과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첫 번째가 1907년이고 두 번째가 1962년이다. 1907년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제작된 때이고, 1962년은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과 ‘마릴린 먼로’가 제작된 때다. 피카소가 입체파 스타일을 처음 시도한 ‘아비뇽의 처녀들’이 이후 전개되는 미술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듯, 워홀이 일상적 이미지를 빌려 실크스크린이라는 기계적 기법을 사용해 찍은 것 역시 이후 전개되는 미술사에 질적 변화를 야기했던 것이다. 별것 아닌 일상을 미술의 소재로 사용하고, 한 소재를 반복해서 쓰고, 게다가 기계가 만들어 내듯 찍어내는 방식은 기존의 미술 개념을 뿌리째 흔들며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워홀은 팝아트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기보다 팝아트의 논리를 정립한 사람이고, 그에 대한 미술시장의 평가는 바로 그의 이러한 위대한 업적에 근거한 것이다.
워홀을 통해 다작(多作)과 미술품 가격의 상관관계도 읽을 수 있다. 워홀은 판화기법의 일종인 ‘실크스크린’을 주로 사용하면서 매우 많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지난 5년 동안 워홀 작품이 경매시장을 통해 거래된 건수가 3500건을 넘을 정도다. 같은 작품이 두 번 이상 거래된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숫자다.
작품 수가 많으면 희소가치가 덜해 작품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워홀에 대한 열기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희소성이 작품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품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이상의 유동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작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바로 작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 수요자가 지속적으로 생기고 안정적인 가격 상승세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성이 풍부하다고 반드시 작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유동성은 확보돼야 한다는 의미다.
워홀이 일깨워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현대미술이기 때문에 인상파나 근대미술에 비해 가격이 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진다는 점이다. 인상파나 근대미술보다 비싸게 낙찰되는 현대미술품이 늘고 있고, 이 움직임의 선봉에 워홀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크리스티의 5월 경매만 봐도 근대미술품 경매(이브닝 세일 기준)의 경우 총 낙찰금액이 2억3646만 달러를 기록, 현대미술품 낙찰 금액에 크게 못 미쳤다. 10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된 작품 수도 현대미술 경매에서는 6점이었는데 근대미술품은 4점에 그쳤다. 팝아트의 논리를 만들어 냈듯 워홀은 미술시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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