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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 ②] 상상력과 시멘트

진중권


선거철 공약, 거꾸로 '향수'대신 앞으로 '비전' 보고 싶다
기술을 넘어 예술로 가야 할 정보화 시대에 정치권은 표를 얻으려 대중의 향수 자극
토건 마인드엔 능하나 안보이는 상상력 약해…청계천과 선유도공원 인공-자연미 대비돼
정치권에서는 ‘경부운하’를 둘러싸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선거와 맞물리면서, 그것은 이미 냉철한 경제학적 논제가 아니라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되어버렸다. ‘침로상실’이라는 말이 있다.
폭풍우 속에서 배는 설사 항로가 틀렸더라도 계속 직진을 해야 침몰을 면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경부운하를 가장 큰 정책으로 내세운 후보는, 설사 그게 타당성이 없음을 스스로 안다 할지라도 제 정치적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끝까지 그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 갖춰야 할 미덕 중의 하나는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것. 어차피 선거란 대중 앞에 허황된 약속을 늘어놓는 세리머니다. 당선된 후 그 허위과장 광고를 모조리 실현하려 들면 어떻게 될까? 나라 절단 난다.
그리하여 이명박씨 역시 7% 성장, 4만 달러, 7대 강국의 약속을 공약(空約)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하 판다는 약속만은 꼭 지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왜? 그 분야만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까.
선거철을 맞아 정치권에서는 미래의 비전을 내놓기 바쁘다. 그렇게 제출된 기획들은 하나 같이 복고풍. ‘카리스마 가진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전 국민이 삽질하면 선진국 된다’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국가발주의 건설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여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하겠다는 얘기다. 덧붙여지는 게 있다면, 기껏해야 법인세 깎아주겠다는 정도. 상상력의 부족으로 인해 미래의 비전을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로 때우는 셈이다.
●탈(脫)물질화와 재(再)물질화
한국은 이미 산업이후(post-industrial)의 정보사회로 진입했다. 과거의 산업사회는 물질의 육중함을 갖고 있었다. 가령 정유, 화학의 파이프라인은 산업사회의 혈관계통이며 불도저, 크레인, 공작기계 등은 산업사회의 근골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사회에 들어오면 세계는 무게를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정보사회의 혈관계통은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이며, 그것의 근골계통은 키보드, 마우스, 스캐너와 같은 입력기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에는 물질성이 거의 없다.
빌 게이츠가 생산하는 상품은 원칙적으로 무게가 없다. 전자의 배열은 무한히 복제해도 닳지를 않고, 그 복제가 원본보다 질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음악, 게임, 사진, 만화, 동영상, 아이템, 소프트웨어 등 ‘정보’라는 허깨비를 다운로드 하느라 사람들은 현실의 돈을 지불한다. 10년 쓸 핸드폰을 2년만 쓰고 버릴 때, 소비자들은 상품의 물질적 속성보다 상품의 기호적 가치에 더 많은 돈을 쓴다. 그 무게 없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디자인과 브랜드다.
물론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육중한 유조선은 필요하다. 그리하여 최근엔 다시 재(再)물질화를 얘기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다시 등장한 물질은 산업사회 시절의 육중한 물질이 아니라 IT, BT, NT와 결합한 새로운 물질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선박의 몸체를 만드는 중공업이 아니다. 가치는 새로운 콘셉트, 세련된 디자인, 첨단 IT의 결합에서 창출된다. 과거에 선진국은 기계를 만들어 후진국에 팔았으나, 이제는 기계를 디자인만 하고 생산은 다른 나라로 넘기고 있다.
●기능과 기술과 예술
소비의 기호화, 생산의 정신화, 상품의 탈(脫)물질화. 정보사회의 생산력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블루오션’이니 ‘레드오션’이니 하는 말도 이와 관련이 있다. 레드오션은 이미 있는 욕구를 누가 싼 값에 만족시키느냐의 경쟁이다. 반면 블루오션은 아직 없는 욕구를 누가 먼저 상상해내느냐의 경쟁이다. 예를 들어 ‘워크맨’을 만들자 대중은 비로소 집이 아닌 거리에서 음악이 듣고 싶어졌고, 핸드폰에 카메라를 달자 대중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됐다.
몇몇 분야만 제외하고 한국의 기술은 아직 이미 존재하는 기술에 몇 가지 기능을 첨가한 게 대부분.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됐다”는 얘기는, 한국이 아직 일본의 전략을 배우지 못한 사이, 중국은 한국의 전략을 넘겨받았음을 의미한다.
한국이 넘지 못하는 문턱은 바로 선진국의 창의적 기술이다. 기능에서 기술로, 거기서 예술로 나아가야 한다. 아티스트의 상상력, 엔지니어의 기술력, 인문학자의 콘텐츠로 이루어진 삼각 컨소시엄. 이것이 미래의 생산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넘어 예술로 가야 할 시대에 아직 기능에 집착하는 게 한국의 분위기다. 가령 황우석 박사의 젓가락 기술에 보냈던 거국적 환호를 생각해 보라. 기술이란 모름지기 재연 가능해야 한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어야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쇠젓가락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능이다. 과거에 한국은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의 기술이 세계 최고였던가?
●주체에서 기획으로
과거에는 인간을 ‘주체’라 불렀다. 주체란 ‘이미 있는 세계’를 인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미래에 인간은 ‘기획’이 될 것이다. 기획으로서 인간은 ‘아직 없는 세계’를 앞으로(pro) 던지는(ject) 이를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대전환을 위한 준비다. 하지만 미래로 나가는 문턱에서 정치권은 눈을 뒤로(retro) 던진다(ject). 대중의 향수를 자극해 표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거로 던지는 시선은 전망(prospect)이 아니라 회고(retrospect)일 뿐이다. ‘747’(7% 성장, 4만 달러, 7대 강국)은 40년 묵은 노후기종이다.
‘불도저’가 너무 낡았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측근 중의 하나는 그를 ‘컴도저’라 고쳐 불렀다. ‘컴퓨터 세탁’이라 써 붙인다고 세탁업이 IT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의 낙후성은 물론 이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을 짜는 브레인의 한계일 터. 아무리 생각해도 운하 판다고 국토를 뜯어 고치기 전에 그 브레인부터 손보는 게 조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겠다. 뇌의 이식에는 발달한 대한민국 BT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게다. 모자라는 상상력을 시멘트로 때울 수는 없다.
●청계천과 선유도
‘문화’라고 하면 삽 들고 건물부터 지으려 한다. 전국 지자체에 그렇게 지은 문화관들, 대부분 1년 내내 텅 비어 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짓는 데에는 능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획력은 없다는 얘기다. 이 모두가 산업화시절의 토건 마인드가 낳은 비효율이다.
이를 닮아서 그런가? 대한민국의 인터넷 역시 망은 거미줄처럼 깔려 있으되,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이 IT의 강국이라 하나, 소비의 강국일 뿐 아직 생산의 강국은 아니다. ‘기획’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예가 있다.
먼저 청계천 복원사업. 이 사업은 낡은 패러다임의 연장에 불과하다. 온통 시멘트로 바른 인공하천은 역사복원, 생태복원과는 관계가 없는 거대한 유원지를 이룬다. (이 시장의 업적은 소프트웨어적인 것, 가령 교통체계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에서 복원사업을 이렇게 한다면 두고두고 비난을 받을 것이나, 유적을 훼손하고 물줄기를 역류시켜도 한국에서는 외려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왜 그럴까? 시민들까지도 토건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다가, 서울에 워낙 숨 돌릴 공간이 없기 때문일 게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선유도 공원. 별 기대 없이 우연히 들렀던 그곳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원래 그곳은 정수장이 있던 곳. 불도저로 밀지 않고도 그 인공의 구조물을 아기자기한 자연으로 바꿔놓았다.
청계천이 자연을 밀어버리고 거기에 인공을 갖다 놓았다면, 선유도 공원은 인공마저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것을 자연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하여 선유도 공원에 가면 구석구석에서 설계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들과 마주치는 즐거움을 갖게 된다.
토건과 기획은 서로 다른 미감으로 실현되는 법. 청계천과 선유도를 둘러보면, 토건 마인드와 기획 마인드의 확연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진중권 (문화평론가ㆍ중앙대 겸임교수)
- 한국일보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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