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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 18] 디지털 살리에리

진중권


상상력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예술가 컴퓨터'는 가능한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구해다가 분석한다. 거기서 작곡의 공식만 찾아낸다면, 모차르트처럼 뛰어난 작품을 쓸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좌절한 살리에리는 신을 원망한다. “신이여, 왜 내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 주시고 그것을 만드는 재능은 주지 않으셨습니까?”
푸쉬킨의 극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나머지 그를 암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평생 우정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게다가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투덜댔다는 자료는 있어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한 흔적은 없다.
하지만 내 관심은 실존인물로서 살리에리가 아니라, 푸쉬킨의 극시에 나오는 가공인물로서의 살리에리에 있다. 거기서 그는 음악에 수학적 분석의 메스를 들이댄다. 그의 발상은 예술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예술은 이성의 산물일까? 아니면 영감의 산물일까?
합리주의자는 예술을 이성의 산물로 본다. 예술에도 법칙이 있어,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을 영감의 산물이라고 본다. 재능은 습득되지 않는다. 천재는 그냥 태어날 뿐이다. 푸쉬킨의 극시에서 ‘이성’은 ‘천재’ 앞에서 좌절한다. 푸쉬킨은 낭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좌절하지 않은 살리에리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컴퓨터로 예술작품을 생성해내려 한다. 그들의 작업은 정확히 살리에리를 닮았다. 먼저 기존의 작품들을 입력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법칙들을 찾아낸다. 이를 알고리즘으로 바꾸어 컴퓨터에 입력한 후, 그것에 따라 작품을 생성한다.
예술 컴퓨터의 구조는 크게 소재(素材) 파트와 제어(制御) 파트로 이루어진다. 가령 말을 할 때 우리가 어휘들을 결합하여 문장을 만들어내듯이, 컴퓨터는 소재들을 이리저리 결합해 작품을 생성해낸다. 이 소재들을 ‘서브루틴’이라 하고, 그것들을 제어하는 것을 ‘메인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가령 컴퓨터로 몬드리안이나 파울 클레의 그림을 만들어내 보자. 먼저 이들의 작품들을 입력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선이 움직이는 여러 가지 패턴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의 알고리즘을 작성한다. 이것들의 집합이 예술 컴퓨터의 소재 파트, 즉 서브루틴을 이룬다.
여기서 예술작품이 나오려면, 이 서브루틴들을 적절히 결합시켜야 한다. 가령 사각형을 그리는 서브루틴, 삼각형을 그리는 서브루틴, 동그라미를 그리는 서브루틴이 있다고 하자. 이제 언제, 어디서, 어떤 도형을 그려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를 제어하는 게 메인 프로그램이다.
컴퓨터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메인 프로그램의 작성. 서브루틴을 만들어 모으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그것들을 그때그때 목적과 상황에 맞게 각기 다르게 조합하는 능력을 주는 것은 컴퓨터에 뇌를, 즉 인공지능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인 프로그램 없는 컴퓨터는 스스로 예술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 경우 서브루틴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인간의 손에 맡겨진다. 실제로 오늘날 ‘컴퓨터 예술’이라 불리는 것은 대부분 서브루틴의 제어를 인간에게 맡긴 것들이다. 이를 ‘컴퓨터 의존 예술’(computer aided art)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컴퓨터 예술이 되려면,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제어를 담당해야 한다. 이렇게 서브루틴을 어떻게 결합시킬지 미학적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컴퓨터에 준 것을 ‘컴퓨터 생성 예술’(computer generated art)이라 부른다. 여기에서는 진짜로 인간 대신에 컴퓨터가 예술의 주체, 즉 예술가가 된다.
‘컴퓨터 의존 예술’과 ‘컴퓨터 생성 예술’의 차이는 마징가와 아톰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징가는 인간이 조종하나, 아톰은 스스로 움직인다. 마징가가 서브루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아톰은 서브루틴에 제어계인 메인 프로그램을 결합시킨 더 발달한 형태의 로봇이다.
‘예술가 컴퓨터’의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 소련, 유럽, 일본 각국에서 이 실험에 뛰어들었다. 이는 물론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인간의 두뇌작용을 시뮬레이션해내는 사이버네틱스 학자들에게 예술이라는 영역은 특별히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을 게다.
사실 인간의 두뇌 기능 중에서 계산능력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예술은 이성의 영역 밖에 있다고 알려져 왔다. 가령 시작(詩作)에도 합리적 규칙이 있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운율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은유를 만드는 기술은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일반인들의 의식은 상투적이어서 알고리즘화하기 쉽다. 반면 상투적 규칙에서 벗어나 맘껏 일탈을 즐기는 예술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엄밀한 정식화를 거부한다. 그만큼 이를 알고리즘화하는 것도 어렵다. 예술가의 창조적 의식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야말로 사이버네틱스 연구의 최종목적이 될 것이다.
17세기에 바흐가 푸가를 만드는 기계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그렇게 뛰어난 곡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일까? 그럴 리 없을 게다. 사실을 말하자면, 바흐의 것처럼 뛰어난 푸가를 작곡하는 기계는 오늘날의 기술로도 불가능하다.
우연히 모차르트 생성기를 발명한 사람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그의 컴퓨터가 생성해낸 악보는 과연 모차르트의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첼리스트에게 들고 가 연주를 부탁하며 작품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연주를 마친 첼리스트 왈, “모차르트와 비슷하긴 한데, 뭔가 정신이 결여됐다는 느낌이다.” 오, 디지털 살리에리들이여, 분발하라.
■ 인간의 자발성과 컴퓨터의 자발성
오늘날 흔히 '컴퓨터 예술'이라 부르는 것은 대부분 '컴퓨터 의존 예술'이다. 요즘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포토샵, 페인트박스 등의 이미징 소프트웨어는 실은 서브루틴들을 담은 상자에 불과하다. 그것들의 결합을 제어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인간예술가다.
1950~60년대만 해도 컴퓨터는 연구소 같은 곳에나 있는 거대한 시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컴퓨터는 방안에 들어와 가전제품이 되었다. 과거에는 컴퓨터로 이미지를 만들려면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굳이 프로그래밍을 안 해도 소프트웨어만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일본의 정보미학자 카와노 히로시(川野洋)는 이를 '가짜 컴퓨터 예술'이라 부른다. 소재 파트(서브루틴)만이 아니라 제어 파트(메인 프로그램)가 있어야, 진짜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예술가들은 반발한다. 어차피 '진짜'라는 컴퓨터 생성 예술 역시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것이므로, 결국 인간의 손을 빌린 의존예술이 아니냐는 것.
'그러는 인간들께서는?' 히로시는 이렇게 대꾸한다. 인간의 손으로 프로그래밍된 것이라고 컴퓨터의 자발성을 부정한다면, 자연의 손으로 프로그래밍된 인간 역시 자발성이 없다고 해야 할 게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비록 인간의 손에 프로그래밍됐어도 그 안에 제어계통만 있다면, 컴퓨터 역시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얘기.
물론 이 예술가 컴퓨터는 아직 인간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모든 면에서 인간에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컴퓨터는 종종 인간이 못 만드는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가령 무수히 많은 수학적 연산으로 생성하는 프랙탈 이미지는 도저히 인간의 손과 머리로는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컴퓨터로 인간이 만든 것에 근접한 작품을 생성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그것은 현재의 선형적 컴퓨팅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두뇌는 선형(線形)이 아니라 망형(網形)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예술가 컴퓨터는 양자 컴퓨팅과 같은 새로운 비선형 컴퓨팅 방식이 개발될 때에 비로소 가능할지도 모른다.

- 진중권(문화평론가ㆍ중앙대겸임교수)
- 한국일보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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