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루벤스의 드로잉 ‘한국인’을 보고

김영호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 피터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한국인’이 서울에 오면서 오랜만에 미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161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드로잉 원작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그것이 ‘서양인 예술가가 그린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점과 ‘주인공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려졌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는 것에 모아진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문화담당관 줄리안 리코어가 밝히고 있듯이 이 그림이 그려진 400여년 전 ‘당시는 양국간의 교류가 없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것의 제작배경을 따져보는 것은 과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미술사와 미술비평이 전문인 필자에게는 무엇보다 한국의 대중들이 루벤스의 드로잉 원작을 어떤 안목으로 받아드릴 것인가를 살피는데 더 관심이 간다. 또한 이 거장의 드로잉들을 관객들에게 소통시키는 장소로서 미술관의 전시기법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염려는 최근 국내 미술관들에서 열리는 대형 ‘유물전’ 및 ‘명작전’들이 지나치게 상업화 되어있고 복제물을 전시함으로서 예술가와 예술세계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일으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된 루벤스의 ‘한국인’은 과연 역작이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정박된 한척의 배가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서서 관객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선 무관의 공복으로 알려진 철릭(天翼)의 소매자락 안으로 두 손을 모은 인물의 태도는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시선을 약간 옆으로 비켜 세워 당당하고 여유롭다. 루벤스는 인물의 가슴을 양쪽으로 휘감아 올린 소매의 주름을 강조함으로서 물길건너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온 이방인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유감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안면이 붉은 색연필로 군데군데 덧칠된 것은 동양인의 얼굴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조형방식은 결국 바로크 예술이 드러내는 이국적 취향과 드라마틱한 서술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 작품이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드로잉의 하나로 추앙 받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국인’을 선보이는 ‘루벤스-반다이크 드로잉전’은 분명 2003년 말-2004년 초 전시계의 히트작이다. 그러나 전시장을 방문하면서 전시기법상의 아쉬움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작품의 크기와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단일 박스형 전시공간 디자인과 단순 나열식 작품배치>에서 <전시주제 해석이 어렵게 뒤바뀐 작가군 배치의 순서>, <작품을 다 돌아보기 전에 설정된 출구에 의한 전시동선의 뒤엉킴>, <지정된 공간벽면을 채우기 위한 복제물의 사용>, <조악한 전시도록의 편집 및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것이 드물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한국인’을 벽에 고정시키기 위해 제작했다는 합판재질의 임시액자는 전시기법의 무심함을 한눈에 드러내었다.

- 출처 / 조선일보 2004.1월7일자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