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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

김영호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은 준비한 자의 것, 경비를 마련하고 조사하고 실행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치밀한 계획과 결단이다. 이 글은 유럽 여행 중 꼭 들려야 할 프랑스와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소개한다. 어떻게 방문하고 살펴볼 것인가? 파리와 런던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상으로 서양미술사를 체험으로 따라잡자. (편집주)

미술사가 전공인 필자는 학생들에게 방학 동안 유럽 박물관과 미술관 답사여행을 종종 권고한다. 강의실에서 빔 프로젝터를 스크린에 투사해 보는 작품들은 명화 원작에서 얻을 수 있는 감흥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가령 반 고흐의 작품에 표현된 강렬한 색감과 붓터치의 물성은 사진이나 영상이미지로 전달되기 어렵다. 도시 광장이나 도로에 세워진 공공미술품들의 경우는 그것이 설치된 주변 공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므로 현장에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만이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외국여행을 권고하는 필연적 이유는 우리네 짧은 인생을 지구 한구석에서 소진하다 떠나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일상에서 일탈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시야는 다른 지구적 차원의 세계로 확대된다.

여행을 설계하는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패키지와 배낭여행이 그것이다. 여행사에서 기획한 패키지 상품으로 갈 경우에는 숙박에서 식사에 이르기 까지 이미 모든 스케줄이 마련되어 편리함이 있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 처럼 바쁘고 어수선해 여행의 깊은 맛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배낭여행을 권한다. 최근에는 배낭여행을 여행사가 테마별로 관리해 주는 경우도 있다. 여행사가 방문지역들의 숙소와 교통편만 정해주고 나머지 스케줄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방식인데 유럽여행의 초보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유럽의 여름은 대이동의 시기라 숙소와 교통편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값을 비싸게 치루거나 심지어 스케줄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비를 최대로 절약하거나 역전광장에서의 노숙을 원치 않는 배낭여행자들에게 특히 권장할 방법이다.

유럽 여행의 스케줄을 박물관과 미술관을 테마로 짤 경우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유럽의 각 도시마다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너무 많고 다양한 컬랙션들을 지니고 있어 판단이 무뎌지거나 금방 지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취향이나 전공 혹은 관심사에 맞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슬 꿰어내듯 정해야 한다. 유럽 여행이 초행길이라면 우선 시대별로 - 고대, 중세, 근대, 현대 - 방문계획을 세우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체크한 후 이를 중심으로 섭렵하는 것도 권할 만한 방법이다. 선택을 위해서 우선 프랑스와 영국의 수도에서 자랑하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살펴보고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연필로 체크를 해 보자. 이 두 지역의 메이저급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면 일단 서양미술사의 줄기를 명작 중심으로 탐방했다는 자족감을 갖게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시대별로 일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신고전주의까지의 미술품이 마치 명품 백화점식으로 총 망라되어 있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이다. 특히 고대 이집트, 그리스, 근동을 비롯해 교과서에 나오는 명작들의 보고로 손색없다. 군인 출신 통치자 나폴레옹의 제국주의 문화정책과 프랑스 문화산업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학습장이다. 한편 세느강 남측에 자리한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프랑스의 자존심인 인상주의 작품을 중심으로, 19세기 근대미술의 단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컬랙션을 자랑한다. 20세기를 관통하며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던 현대미술의 흐름을 감상하려면 퐁피두센터에 자리잡은 <국립근대미술관(Musée National dart Moderne)>을 들르면 된다, 아시아 유물들을 망라하고 있는 박물관으로는 주불한국문화원 근처에 자리잡은 <기메 박물관(Musée Guimet>이 대표적인데 한국의 귀한 유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기타 개인미술관으로서 <피카소 미술관(Musée Picasso de Paris)>과 <로댕 미술관Musée Rodin)> 역시 빼놓은 수 없는 장소다. 피카소미술관에 가면 한국에서의 학살을 찾는 일은 필수며 로댕미술관에는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키스 등 대표작들이 망라되어 있다. 최근에 에펠탑 근처에 지어진 <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Ouai Branly)>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를 비롯한 비서구권 세계의 민속 유물을 총괄적으로 소장하고 있어 또 하나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박물관 미술관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고대에서 현대로 이르는 순서로 열거해 보면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테이트 모던(Tate Modern)>으로 정리된다. 영국 최대의 국립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은 흔히 역사적 경쟁국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여러모로 비교될 만한데, 양국이 구가했던 제국시대의 산물이며 고대에서 중세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고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근동의 약탈 유물들로 채워져 있어 연구할 거리가 풍부하다. 전시장을 방문하다 보면 영국 박물관들이 상설전시장 입장료를 받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르네상스 초기에서 19세기 후반까지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렘브란트를 정점으로 한 네덜란드 명작들이 백미다. 숨을 좀 돌리고, 근대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테이트 갤러리’를 찾아야 한다. ‘테이트 갤러리’는 모두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런던에는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이 있고 항구도시 리버풀에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이 1988년에 들어섰다. <테이트 브리튼>은 고풍스런 건물에다 영국과 프랑스의 근대미술을 자랑하며 특히 영국의 자존심인 윌리엄 터너가 컬랙션의 백미다. <테이트 모던>은 런던을 흐르는 템즈강 옆에 자리 잡았던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문을 열었으며 미술사를 장식하는 근대 및 현대미술의 진수들을 만날 수 있다.
이상의 유럽 박물관과 미술관을 테마여행으로 돌아볼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과도한 스케줄은 금물이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현지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적응하느라 정신은 혼미해 질 것이다. 체력으로 극복한다 하더라도 여행은 계속해 걷는 일이므로 사흗날이 되면 세상이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파리와 런던에 각각 충분할 날짜를 배정해 무리하지 않게 즐겨야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방대한 컬랙션을 자랑하는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우 하루에 두 곳을 정해 오전과 오후로 방문하길 권한다. 또한 여행시 기록은 즐거움을 더해준다.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상설작품에 대한 사진촬영은 프래쉬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 사진촬영을 할 경우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 아래 있는 설명판(캡션)도 함께 찍어두는 것이 나중에 학술자료로 쓰는데 좋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에 대한 기본정보가 없으면 이용가치가 없게된다. 이 일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자료 정리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 촬영에 이어 해당 설명판은 반드시 찍어놓을 것을 권한다.

유럽의 박물관 미술관 탐사여행을 위한 기본적 마음가짐은 타국의 독특한 문화를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된 유물이나 예술품들은 모두가 시대를 반영하는 자식들이다. 우리가 예술품과 작가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은 작품이 지닌 고유한 미적 가치를 넘어 예술품을 통해 그것을 만든 작가의 삶을 경험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작가가 살던 시대와 환경을 거슬러 추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물관 미술관 탐사여행은 과거의 시간을 살았던 선인들의 삶과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현재의 내가 자리한 위치를 스스로 가늠해 내는 일로 가치가 귀결된다.

우리는 프랑스와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하면서 제국시대의 약탈문화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유럽 박물관과 미술관은 기부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 경의감 또한 갖게된다. 방대한 컬랙션을 자랑하는 근현대 미술관은 대부분 재벌 그룹의 총수를 비롯한 부유층이 사재를 털어 작품을 구립하고 국가에 기증함으로서 탄생되었다. 기부문화는 개인의 사택에 사장될 운명의 미술품들이 공공의 품으로 안겨 문화적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게 되면서 계층의 벽을 허물고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도에의 사회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기부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장은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기부모금함에 쌓여가는 화폐의 양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우리가 답사해야 하는 당위성은 여기에도 있다.
(‘여기는 중앙’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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