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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영-뉴타운 풍경

박영택

풍경은 인간의 손길과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 자연과의 경계에서 여전히 생성중이다. 이 가변적인 풍경은 수시로 일어섰다 지워지고 가려지고 흐려지기를 마냥 반복한다. 특정한 공간과 문화권에서 시간의 흐름 아래 풍경의 역사는 늘 새롭게 기술 되어왔다. 공간은 거대한 텍스트가 되어 사람들의 욕망과 취향, 그리고 다양한 욕구들에 의해 정의되고 그렇게 변화와 변질된 자신의 초상을 자신의 몸에 받아 적는다.
이상영은 그렇게 생성중인 풍경의 한 정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작가는 지금 이곳의 풍경, 그중에서도 새로 도시가 들어서기 위해 공사 중인 장소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풍경은 지금 개발과 변화의 직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공간의 ‘쌩얼’에 해당한다. 우리를 둘러싼 이곳의 공간이 죄다 그런 스산하고 애잔하고 낯설고 키치적인, 이른바 ‘정신분열증적 풍경’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른바 도시적 공간으로 변모하기 직전의 휴지기에 해당하는 땅의 모습, 자연의 육체인 이 공간에는 머지않아 풀을 지우고 나무를 거둬 내면서 이런 저런 인공의 건축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과 차와 사물들이 가득 채워 나갈 것이다. 그로인해 그 주변의 생태계 자체가 일정부분 변질되거나 와해될 것이다. 그리고는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새로운 풍경이 환영처럼, 신기루처럼 대체되어 펼쳐질 것이고 사람들 역시 이내 그 풍경에 익숙하게 길들여지다가 어느 순간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변화의 속도와 그에 따른 풍경 자체의 변질이 너무 심하고 강해서 그 추이를 따라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감과 실존감 역시 은연중 망실될 것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그러한 정신적 공황, 혹은 기억상실증 등을 겪고 있지 않을까? 과거는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유령같은 공간에서 말이다.





작가는 도시를 개발하고 새로운 거주공간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순간의 풍경을 찍었다. 한때 사람들이 살았던 또는 한때 그곳이 그토록 무성한 수풀과 잡목, 맑은 공기와 여러 동식물들이 공존했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고 다만 대지의 붉은 속살이 거칠게 파헤쳐졌는가 하면 나무와 풀을 지워낸 공터에 드문드문 핀 잡초들과 개발과 건축을 위한 도구들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이 곧 개발될 예정지임을 알리는 깃발 하나가 외롭게 흔들리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그 사진에 ‘뉴타운’이란 제목을 붙여주었다. 완성된 장소보다 개발 그 자체만을 중요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모순된 관계로 점철된 도시 외곽의 풍경 속에서 나름의 서정성을 찾는 작업’이라고 한다. 개발지상주의나 과도한 성장과 이윤추구로 인해 풍경을 변질시키는 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 보다는 그저 현재 처한 상황성을 담담하게 증거하는 동시에 그 모습을 아련한 서정과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감싸안아 제시한다. 작가는 그 같은 풍경, 그리고 그런 풍경과 함께 하는 우리들 삶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사진 작업 안에 깊이 담군다. 적조하고 황량한 공간에 자리한 자연과 인공의 것들은 절묘한 콤포지션과 색채 속에 물들어있다.

작가가 찍은 사진 속에는 공사가 진행 중인 장소들과 그 과정 중에 방치되고 소외된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깃발과 공사용 합판, 드럼통과 컨테이너박스 옆에는 순환하는 원초적인 자연이 또한 자리하고 있다. 자연은 기꺼이 개발과 공사에 자리를 내주고 한 켠에 물러서있다. 그런 동시에 개발진행형의 장소에 여지없이 풀을 키우고 꽃을 피우며 사계절의 변화를 거듭하는가 하면 싱싱한 초록과 푸른 하늘, 구름과 계절의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뉴타운’의 진화에 비해 자연의 시간은 묵묵히 순환한다. 사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들판은 황금빛에서 메마른 붉은 빛으로, 습기를 머금은 푸른빛으로 모습을 바꾼다. 발전의 진통 속에서도 베니어판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비를 맞은 드럼통의 빛깔은 자연의 색으로 가까워진다”(작가노트)




당당하게 정면으로 향한 렌즈에 의해 하늘, 건물, 땅이 포착되었다. 대부분 강한 햇살을 피하고 그림자가 지지 않은 시간대에 찍어 평면성이 강하게 다가온다. 그 위로 모호한 시간이 공간을 덮고 있다. 풍경 속에 사람은 부재하다. 오로지 자연과 건물, 인간이 부려놓은 사물들만이 침묵하고 있다. 건축용 자재, 컨테이너박스, 흩어진 비닐 조각들, 논과 땅에 제멋대로 들어와 박힌 이쑤시개 같은 전봇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건물, 저 멀리 거대하고 웅장한 도시 건물과 불빛이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 길게 수평으로 자리한 땅에는 변함없이 풀들이 자란다. 꽃들이 핀다. 그것들은 자신이 곧 뿌리체 뽑히고 콘크리트로 봉인될 운명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은 콘크리트나 시멘트 사이에서도 다시 자라날 것이다. 우리 공간은 이렇듯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마구잡이로,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사진 속 공간은 곧 다른 존재로 급변하기 직전의 고요한 풍경으로 응고되었다. 무언가가 일어날 조짐으로 가득한 것이다. 뉴타운은 오늘날의 메시아이자 파라다이스이다. 그 도시공간은 사람들을 자본과 욕망으로 마냥 충동질할 것이다. 개발업자들. 투기꾼들, 땅주인들은 그 뉴타운을 열망할 것이다. 이상영의 사진 속에 보이는 깃발 하나는 그 공간에서 미친듯이 뒤척이고 나부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의지처럼 보인다.

이상영의 사진에는 이원적인 요소들이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메시지를 동반하거나 설득의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다. 그저 지금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풍경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수집한 지금 이곳의 공간에 대한 보고이자 기록이다. 우리의 풍경 이곳저곳을 지배하는 무절제한 성장에너지와 초고속, 압축 성장을 감행하는 한국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공간을 그저 구석구석, 찬찬히 보여줄 뿐이다.
이 다소 냉정한 문화비평은 그러나 형식적으로 절묘한 구성의 묘미와 색채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미묘한 중성적인 톤, 부드럽고 황량한 색채의 분위기, 절묘한 셋팅효과, 색채의 콤포지션, 형태미 등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사진을 매력적으로 절여놓는다. 무엇보다도 색채감각이 단연 돋보인다. 주제는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장소에 대한 메시지이지만 사진이미지는 기이한 아름다움(구성과 색채에서 오는)으로 가득하다. 이 모순은 도시와 농촌, 차가움과 정겨움, 철골과 나무, 드럼통과 풀, 건축자재와 논 등이 혼재한 뉴타운 주변 공간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그런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모두 포용하고 허용하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반영하는 선에서 섬세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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