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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 아찔한 순간의 기록

박영택

박진영의 근작 사진은 자신의 일상에서 보고 발견한 것을 담고 있다. 사진이란 어쩔수 없이 자신이 본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을 채집하는 행위인데 그것이 조금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현재 사진이란 것이 특정한 주제나 개념을 도해한, 연출한 사진들로 채워져있기에 상대적으로 그럴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진뿐만이 아니라 미술 역시 유사해보인다. 현대 시각예술 혹은 문화와 관련된 이론을 읽고 그것을 작업의 틀로 삼고 주제의식으로 두르면서 그 이론에 맞는 작업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체적인 추이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진에 관한 많은 담론도 나오고 무수한 말들과 이론, 정보가 흘러 다니고 세련된 작품들, 개념적이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사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죄다 상투적으로, 일률적으로 학습된 것들이란 점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풍요(?)가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하나씩 컨셉을 잡아 인덱스 같은, 아카이브 같은,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증명사진 같기도 한 그런 사진들을 마냥 찍고 선보인다.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듯, 누군가 안 찍은 소재를 공들여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 피상적으로 이해되고 반복해서 다루어 남루해진 개념의 도상화로 줄을 세운 사진들을 벽면에 죽죽 걸어 놓았다. 그런가하면 상당수 작가들은 사진이미지의 대형화(이는 사진에 그림의 위상과 외관을 부여하고 작품과 관객의 또 다른 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 컨셉이 강한 사진을 통해 사진가라기보다는 ‘미술가/예술가’로 불리거나 대우받으며 아울러 사진 관련 제도, 기관보다는 미술관 속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보이고 주목을 받거나 논의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미술제도와 담론에 과도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 주어진 틀 안으로 편입되고 인정받는 것이 곧바로 동시대 예술사진의 위상을 부여받는 것으로 여지기는 것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유사한 외형적인 스타일과 방법론, 상식적인 컨셉, 기존 미술의 어법과 담론을 답습하는 것, 아울러 기존 미술제도에 편입되고 인정받는 것 등은 사진의 표현매체로서의 입지를 어느정도 보장해 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과연 사진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이상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해 볼 과제다. 그래서일까 박진영은 사진 본연의 맛, 쉽고 간결한 사진을 모토로 내세웠다. ‘실존했던 피사체와 죽어버린 시간만이 남은 사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 모든 렌즈에 비친 사물을 빛으로 말미암아 고스란히 재현하는것이라 믿으며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보여준다. 그런 인식아래 마련된 근작은 일본말로 ‘히타마리’로 되어있다. 변역하면 ‘찬란히 떨어지는 빛’이란 뜻이란다. 마치 하이쿠의 한 구절이 연상된다.

무성한 풀밭에 던져지듯 놓인 조치훈의 자서전<목숨을 걸고 둔다>는 “여름풀이여 무사들이 공명을 꿈꾸던 자취”와 같은 문구를 연상시키는 연출로 다가온다. “해는 벚꽃에 지니 쓸쓸하여라 나한백나무” ,“ 두 생명 사이 해마다 피어남은 벚꽃일레라”와 같은 시구가 연상되는 사진도 있다. 땅바닥에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와 눈송이처럼 흩뿌려진 벚꽃, 그리고 짜부러진 캔과 기타노 다케시의 자서전이 놓인 사진이 그것이다. 전시장에 갔다와서는 다시 나는 마츠오 바쇼(松尾芭蕉의)의 하이쿠와 함께 그의 사진/사진도록을 보고 있다.
그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간간히 읽은 책들과 그가 둘러본 도시, 바다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었다. 이른바 구경꾼 혹은 소요자, 여행자의 시각에서 순간 순간 접하고 만난 ‘경이’ 같은 삶의 한 자락을 수사없이,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체 찍었다. 그의 사진에서는 그가 보낸 시간의 느림과 여유로움, 특별할 것없는 세계의 모든 장면들에서 발견한 찰나적인 감응, 혹은 설명과 수식없이 파고드는 느낌 같은 것들의 편린이 묻어있다.

홀연히 깨달은 것, 순간 보아버린 것, 그러나 이내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한 애도란 사진의 아주 오랜 속성일 것이다. 새삼 그가 사진의 이러한 근원적인 것으로 귀환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작금의 사진적 추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진 본연의 맛’을 추구하고자 함을 이미 표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본 세계를 촬영하고 이를 암실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사진이 매력과 힘을 새삼 확인하려 든다. 그래서 그의 여행길은 그 매력과 힘을 찾으려는 시간의 여정인 듯 하다. 그가 여행길에 갖고 간 책이 조치훈과 다케시의 자서전임은 의미심장하다. 어울러 일순간 활짝 폈다가 ‘아쌀하게’ 떨어져버리는 벚꽃, 한줄기 낙하하는 빛, 시원한 아사히 맥주 한 잔, 아지랑이 속에서 흔들리는 봄의 끝장면, 육지의 끝 바다 앞에 선 카오루,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드모델의 한 순간 흔들림 등은 덧없고 찰나적인 세계, 순간의 초상이다. 그는 그 순간 앞에 섰다. 그리고 그 경이롭고 매혹적인, 더러 슬픈 순간을 자각한다. 모든 이미지는 소멸과 순간에 저항하고자 했다. 영속적인 이미지의 재현을 통해 찰나에 저항한 것이지만 여전히 그 찰나, 순간은 부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이자 생의 조건이고 나아가 이미지의 조건이다. ‘히타마리’ 속에서 그는 그 사실을 다시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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