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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 우아하고 슬픈 동물의 몸

박영택

김병훈은 수년간 한국, 일본, 중국의 동물원을 돌아다녔다. 동물들을 보기 위해서다. 현대사회에서 동물은 자연에 있지 않고 동물원에 갇혀있다. 우리가 산이다 들에서 동물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개나 고양이, 혹은 여러 애완용 동물들이 존재하지만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득이 동물원에 가야한다. 동물원은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는 곳이며 감옥이자 그들을 격리시킨 병동이다. 그런가하면 그곳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장이며 과학적 지식을 제공받는 도서관이기도 하다. 문명과 과학의 힘으로 야성의 자연을 관리하고 그것들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체계화, 명명화한 작은 레이블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동물을 학습한다. 인식한다. 동물원은 알다시피 기존 사회의 지식체계(혹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장소 중의 하나이다. 형태의 유사성, 닮은 꼴에 의해 그려진 계보를 더듬어가며 이국적 자연물을 인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연을 실질적으로 대면한다. 아득한 그 어느 시간부터 지금까지 유전되어 온 한 개체의 몸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김병훈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동물원이란 특정 장소가 아니라 ‘동물의 몸’을 찍고 있다. 동물의 이 개체적 몸이야 말로 그의 관심을 자극하는 영역이다.
그에게 동물들의 다양한 형태, 몸은 하나의 자연이다. 그것은 좀 더 커다란 자연 속에서 그것과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그렇게 진화하고 적응해온 결과물이다. 그 하나하나의 자연/개체들의 몸을 관찰하고 지켜본 마음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부감되었다. 그러니까 동물의 몸이자 작은 소우주고 자연인 그 대상의 활력과 기운, 섬세한 동세와 미묘한 감정과 호흡, 생리적 파동의 들락거림을 받아주는 그릇, 그들이 지어내는 표정과 우아한 몸놀림 등을 흑백의 모노톤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낸 그림/사진이다. 그는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처럼 사진을 건져 올린다. 대상/사물을 보는 감수성 짙고 감각적인 눈들이 추출해낸 정교한 구도와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한 프레밍, 검은 색의 여러 넓이와 깊이가 자아내는 색상은 질감과 표피성을 촉각적으로 자극한다. 동시에 명료함과 불명료함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동물의 느릿하고 여유로운 자태는 보는 이의 시선과 감정을 낙차 크게 이동시키면서 모종의 여운을 남긴다. 이 여운은 단지 감정의 응고물로 침전되기보다 이 동물/자연이란 대상에 대해 알 수 없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는 우선적으로 동물들의 골격과 정제되어 있는 형태를 관능적으로 더듬었다. 동물원에 갇혀있다 해도 그것들은 자연 상태에서 유전되어 온 고유의 몸과 본능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정된 동물원의 제도와 밀폐된 공간 속에서 적응된 일정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 모든 자연물은 주어진 환경에 그렇게 적응해나간다. 본성과 후천적인 관습들이 맞물려있고 그것은 그들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 작가는 그 몸과 행동을 조심스레 관찰한다. 사진은 사자와 호랑이, 표범, 코끼리와 코뿔소, 곰, 얼룩말과 사슴 그리고 원숭이와 공작을 비롯한 여러 새들을 아름다운 흑백사진으로 보여준다. 대상을 온전하게 지시한다기 보다는 몸들이 지닌 유선형의 자태와 골격들이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동물/자연의 몸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구도 속에서 동물들은 근경으로 혹은 원경으로, 아니면 전체를 보여주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육박해 들어간 시선에 의해 응고되었다. 그가 찍은 동물들의 몸은 한정된 공간안에서, 동물원안에서 그렇게 한 자연으로서 적응과 본성의 유지라는 길항 안에서 생을 영위한다. 모든 육체는 아름답고 더없이 슬프다. 생명 있는 것들이 자신의 생을 보존하고 지속하기 위해 몸을 놀리고 쉬고 멈춰선 이 장면들은 동물원의 창살과 벽을 순간 풀어버리고 차갑고 딱딱한 학명, 인간이 부여한 시스템으로 결코 가둘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자연이란 존재를 꿈처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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