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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 일상의 걸작

박영택

현대는 사물들의 시대다. 삶의 환경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시각이미지들은 그 사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모든 사물은 나름의 실용성과 미적 디자인의 배려를 자신의 피부로 증거한다. 그렇게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고 그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일, 사물들을 통해 말하게 하는 일이 현대인의 삶이자 일상이다.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만들었을 누군가의 배려, 만들어진 경로와 시간의 입김으로 조금씩 닳아서 생겨난 흔적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사용했을 한 인간의 생의 궤적이 은밀하게 감지된다. 우리는 그 사물과 함께 살고 죽는다. 이주은 역시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주목한다. 그것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다. 친숙한 오브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작가는 자신의 몸과 함께 했던 사물들 혹은 자기 동선에서 만난 사물과 공간의 어느 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 사물을 사진으로 채집했다. 레디메이드를 사진으로 응고시켰는데 사실 사진 역시 본질적으로 레디메이드인 셈이다. 그녀는 사물을 부분적으로 절취하고 색다른 시선과 질감으로 전이시켜 또 다른 존재로 만들어낸다.

작가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지금,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접한 자기 마음에 드는 곳, 자기 눈이 가서 멈춘 곳, 거의 직관적으로 필이 꽂히는 곳으로 밀고 들어가 이를 사진으로 담아낸다. 작가는 방이나 거실 혹은 특정 공간의 한 구석을 찍거나 흰 천을 깔고 그 위에 올려놓은 컵, 그리고 방바닥의 장판, 콘크리트바닥에 놓인 의자의 다리 등을 찍었다. 자신의 방이나 거실, 실내의 어느 한 구석이기도 하고 늘상 쓰던 익숙한 의자나 컵 등이다. 매일 사용하는, 그래서 조금씩 낡아가는 컵과 푸른색 줄무늬를 가진 이불, 그리고 부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병, 자신의 몸을 받아주는 의자의 다리, 바닥에 누워있는 전선줄과 모서리에서 물기를 머금고 삭아가는 나무로 만든 벽의 아래 부분 등이다.
자기 일상의 이동경로에서 만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마음의 갈피 사이로 끼여든다. 자기 감각과 취향의 더듬이로만 잡히는 것, 말할 수 없고 언어화할 수 없는, 문자가 멈춰선 자리에 오로지 감각만으로 ‘캐치’되는 사물의 피부에 들러붙는다. 그 시선은 기이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더없이 탐미적이다. 그리고 그 눈은 뱀처럼 바닥에 붙어 자기 몸으로, 배로 밀고 나가면서 더듬어 올린 것들이다. 혹은 사물에 바짝 붙어서 위로 치켜든 것이다. 근접한 시선에 의해 익숙한 사물과 공간은 무척 낯설거나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은 그 사물, 공간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적이고 고정된 개념을 찢는다. 항상 지금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찾아내고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여정을 통해서 현재 내가 서있는 이 자리, 일상 속에서 경이로운 걸작을 찾아내고자 하며 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작가노트)

바닥에 놓여진 흰 천은 주름과 결, 보송보송한 면, 그리고 더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기운을 전해준다. 그것은 또한 전통적인 정물화의 양식적 전형을 상기시켜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마치 세잔의 정물화에 대한 사진적 패러디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푸른 색의 문양이 그려진 컵은 순간 푸른 산이 되고 동굴이 되는가 하면 거대한 대리석 벽이 된다. 자신의 신체를 받아주던 의자의 다리는 기념비적인 기둥이 된다. 내 몸의 물기를 닦아주고 피부를 더듬던 보드라운 천, 수건은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대지가 된다. 다양한 시점과 거리에 비례해 사물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실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자기 마음속에 간직된 형상, 사물들 마다 그 안에 품고 있는 또 다른 모습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특정 사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지식, 선입견을 허망하게 만든다. 이렇듯 평범함과 익숙함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잠시 밀어 둔 자리에 홀연 피어오르는 기이한 세상풍경이다. 그 힘이 바로 예술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작가는 그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고 에폭시 레진을 부어 나무틀로 액자를 끼운 후 선반에 진열하듯 놓아두거나 두툼한 박스형으로 만들어 벽에 걸었다. 혹은 천 위에 프린트 한 후 마치 현수막처럼 걸어두기도 했다. 공간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며 찢어나가는 몇 개의 조각으로 분절된 이 사진/현수막은 깊이와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작은 사물을 거대한 존재로 비상시킨다. 여러 시점과 서로 다른 깊이 속에서 보는 경험, 시간에 따라 사물은 다채롭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상의 간편하고 진실한 재현의 도구인 사진과 에폭시레진, 그리고 5면을 화면으로 제공하는 박스와 액자, 현수막 등의 프레임 및 선반과 공간에 설치하는 등의 여러 방법론과 연출은 결국 작가와 일상의 삶을 함께 했던 이 소소한 사물들의 피부를 조심스레 봉인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하는 따뜻하고 정성스런 배려와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이란 기계를 핀셋처럼 사용해서 사물/공간을 집어올리고 이를 핀으로 꽂아 두듯이 투명레진을 부어 흡사 호박琥珀처럼 만들었다. 투명레진과 프린트 된 종이와의 만남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레진은 종이로 스며들어 흐르다 멈추고 일정한 막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연성까지 더해지며 매력적인 회화가 되었다. 얇은 종이는 부분적으로 밑에 자리한 합판의 결을 그대로 노출시키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얼룩을 남긴다. 레진을 흡사 붓터치를 하듯 부어나가면서 결과 층, 질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물의 껍질을 사진의 피부로 들여온 후에 다시 그 피부 위에 실리콘, 에폭시, 혹은 아크릴 등으로 새로운 껍질을 형성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그 놀라운 걸작, 경이로운 사물의 새로운 모습을 보호하고 영속적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그것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의 배려에 의한 장치일 것이다.

이 작업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물을 독대하게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진이다. 사진은 사물의 어느 한 부분만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해준다. 주변 공간이 제거되고 오로지 사물, 보고자 하는 부분만을 응집시켜준다. 바짝 조여진 시선과 거리는 세상에 나/너와 그 사물, 구석만을 대면하게 해준다. 그러는 순간, 그 사물은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 보는 이의 시선을 다 받아낸다. 이 세상에 하찮은 것들은 없다! 버려지거나 시선에서 제외되거나 너무 익숙해서 쉽게 간과하는 것에 주목시키는 이 작업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감각에 대한 애정과 단호함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의 심성이랄까 혹은 마음의 배려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작가의 내밀하고 섬세하며 조심스러운 기질의 한 단면이 감촉된다. 그래서인지 작업들은 더없이 감각적이고 촉각적이다. 한 개인의 눈과 몸, 감각과 신경이 집중된 이미지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망막에 하나씩 손을 달아주어 더듬게 한다. 그러는 순간 우리 몸은 거대한 더듬이 되어 가볍게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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