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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먹고 사는 일

박영택

먹고 산다는 사실은 슬프다. 자기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식물과 달리 동물성의 육체를 지닌 이들, 입 달린 존재들은 매끼마다 자기 목구멍으로 다른 생명체를 밀어 넣어야 사는 이들이다. 입이 없었다면 치욕도 없었을 것이다. 입을 지운다면 욕망도 불안도 죄다 잦아들까? 우리는 끊임없이 정확한 주기로 찾아오는 배고픔을 생의 한 단락으로 받아들여 이를 가까스로 넘어서는 이들이다. 매 한 끼가 절박한 생의 고비며 다음 한 끼까지만 버티는 간당거리는 삶의 초라함이 목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 끼와 다음 한 끼까지의 거리와 시간이 생이다. 배가 고프다는 절대적인 실존 앞에서, 치명적인 본능 앞에서 마냥 누추한 생의 주름은 어떻게 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지속해서 먹어야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다들 열심히, 잘 먹겠다고 끼니마다 부산을 떠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쌔면 어딘지 서글프고 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 인생의 모든 일이고 더구나 이 각박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모든 것도 결국 먹는 일로 귀결된다 해도 그리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해도 그게 전부라고 말해지면 왠지 헛헛하다. 그것은 인간이란 결국 혓바닥에서 항문까지라고만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원생생물과 하등의 차이가 없이 식도와 항문까지의 그 일직선상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그 길을 덮고 있는 다른 생의 길들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먹는 본능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일직선상의 그 단순한 길로 모든 생의 욕망이 수렵되는 현실 속에 산다. 그 욕망의 비등점은 점점 뜨겁게 달궈지고 부풀어 오른다. 정경심의 그림은 이런 생각 속에서 몸을 내민다.

밥은 생명이다. 그래서 다들 그 밥을 먹겠다고 치열하게 사는 것을 보면 산다는 것은 좀 더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결국 먹는 일이다. 한없이 위태롭고 불안하며 처절한 본능인 이 먹고 사는 일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정경심은 그 끝없이 반복되는 우주의 질서가 실현되는 원초적 본능인 먹는 행위 속에 삶에 대한 애착과 회환, 슬픔과 기쁨이 모두 담겨있다고 본다. 작가는 그렇게 먹고 사는 다채로운 생의 만화경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보여준다. 먹는 행위 속에 삶이 있고 그렇게 먹으면서 생을 영위하지만 사실 그 궁극의 목적은 잘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작가는 목적을 모르는 삶 때문에 삶은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삶은 카오스 안에 고여있는데 그러나 이내 질서가 부여되면 코스모스가 되듯 혼돈과 질서가 한 순간 교차하는 지점에 비로소 삶의 진리가 펼쳐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번 작품의 제목이 코스모스 레스토랑인 이유이다. 작은 소반과 그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몇 가지 찬그릇, 생선과 나물, 찌개 등이 놓여있고 그와 함께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밥상풍경을 위에서 조망하듯 그려놓은 그림이 보인다.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그려나간 선들이 인물과 밥상/식탁 풍경을 담백하게 재현하는데 음식물이 정갈하게 놓인 식탁에 놓인 숟가락은 여성을 젓가락은 남성이미지를 내포한다. 그것은 마치 일심동체의 부부 같다. 한 쌍으로 마주보고 놓여있는 이 도구는 그것으로 음식물을 집어 목으로 집어넣었을 어떤 순간을 연상시킨다. 우리네 밥상은 겸상의 형태를 지니는데 함께 음식을 먹는 이들과 서로의 숟가락을 뚝배기에 담그는 순간 서로 내통하는 결과를 낳고 그것은 곧 몸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밥상이야말로 한국인의 완강한 일체감을 보여주는 존재다. 근작은 그 밥상위의 풍경이 다른 풍경과 잇대어져서 밥 먹고 사는 일의 여러 의미를 부풀려주는 주면서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먹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녀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만화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히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무척 매력적이다. 기존 동양화 인물그림이 보여주는 정형화된 그리기에서 벗어나있다. 물론 최근에는 이 같은 캐릭터화 된 인물그림, 팬시한 감성으로 추려낸 감수성의 미감이 동시대미술이 보편적 언어가 되고 있다. 삽화적이면서도 정감있고 해학적인 유머러스한 도상은 즐거운 시각적 체험을 주는 매개들이자 이야기를 전개하는 맥락들이다. 그렇게 그려진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탐욕스럽게 먹는 일에 열중이다. 이들은
수제한지로 조각보를 만들듯 혹은 콜라주하듯 조각조각 잇대어 부착한 바탕화면에 올라가있다. 그 자체로 견고하면서도 충분한 지지대를 만들어 보이는 화면은 부드럽고 가라앉은 색감과 질감, 일정한 면들의 겹침과 구획으로 화면 안에 다채로운 변화를 구성하면서 자연스레 방바닥이나 삶의 한 정경의 공간을 끌어당겨준다. 또는 환한 창살문을 배경으로 일상 풍경이 오버랩되는 듯 하다. 더구나 조각들의 잇대어짐은 평면의 화면을 슬쩍 촉각적으로 상기시키는 편이다. 그 위로 슥슥 빗질하듯,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무심히 칠하고 문지른듯한 붓질은 그리다 만것같으면서도 허허로움과 적절한 여백 속에서 자연스럽게 얼룩진다. 그 어딘가 그림의 중간에 연필로 써넣은 사인, 그 이름과 숫자도 퍽이나 감각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근작은 아크릴물감의 물성을 강조하면서 식탁위에 놓인 음식물이나 꽃의 형상을 질료화시키고 있어서 선염된 평면의 바탕 면과 대조를 이룬다. 이 같은 질감의 강조는 음식물이란 존재성을 끈적거리는 욕망적 대상으로 시각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는 그 음식물 자체를 강조하거나 그것의 질료성을 촉각화시킨다. 열린 입은 오로지 음식물과 맞닿아있다. 그것은 허기지고 배교픈 자들의 입이다. 사실 배고품은 고귀한 본능이다. 우리는 그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 강력한 전언이다. 예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팔짱을 낀 체, 식탁위에서 춤을 추며 얽혀있는 남녀가 그 전언에 충실한 체 열심히 먹고 있다. 여기서 식욕이라는 본능이 성욕과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해주며 남녀 역시 그렇게 먹고 먹히는 모종의 관계망 속에 놓여있음을 일러준다. 아울러 상위에 둘러서있는 가족이, 혼자 독상을 받은 아이 등이 각자 음식을 먹고 있다. 단지 식탁뿐만이 아니라 버스나 운동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도 제각기 무엇인가를 아귀적으로 먹고 있다. 음식물로 인해 얼굴이 지워지고 입이 가려진 체 마냥 먹고 있다. 목구멍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텅 빈 욕망같다. 음식물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혹은 말풍선인듯 아니면 식욕의 포만감을 밖으로 끌어내 덩어리로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음식물의 맛을 커다란 풍선마냥 외화 시켜 그려놓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레몬을 먹는 소녀의 얼굴과 그 주변으로 물방울 같은 것이 팽창하면서 부유하는 것은 레몬의 톡 쏘는 시큼하고 신맛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측면은 작가의 해학적인 인물의 선과 형태감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회화를 좀 더 소통적인 도상으로 만들어나가는 시도로 보여진다. 여기에 만화적 기법도 당연히 참고가 되는 셈이다. 몸에 밥상이 그려진 체 달착지근한 푸딩에 걸터앉아서 먹는 일에 열중인 이는 식탁위에 놓인 다른 음식물과 함께 놓여있다. 그도 역시 누군가에게 먹히는 존재라는 은유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살아왔다. 목숨이 지속하는 한 먹는 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먹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 한 그릇 밥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그 밥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생의 다양한 풍경이 작가의 그림 속에 담겨있다. 먹는 다는 것은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이자 목숨을 유지하는 숭고한 일인 동시에 힘들고 눈물겨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먹고 살까? 삶의 궁극의 모습은 무엇일까? 다만 작가는 자신의 그림(코스모스 레스토랑) 안에 다양한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통해 그들 각자의 알고 모르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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