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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범 / 읽을 수 없는 책들

박영택

고기범은 펼쳐진 책의 형상을 만든 후 이를 캐스팅했다. 그것은 부조가 되어 벽에 걸리는 한편 조각이 되어 바닥에 자립한다. 회화이자 조각이고 또한 설치인 셈이다. 벽에 걸린 부조회화와 앞에 놓인 조각,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벽과 바닥으로 퍼지면서 일종의 새로운 환경,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연출된 작업은 우리에게 새삼 책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거나 낯설게 조우시킨다. 기존에 익숙하게 보던 책들이 아니라 조금은 이상한 책들이고 또 색다른 배열이자 독특한 책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작업을 그냥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머뭇거려진다. 책의 모양을 흉내 낸 의사 책들이고 읽거나 보면서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한편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책들이 아니다.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놓여진, 읽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희한한 책/물질이다. 그러니까 고기범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고 소유하고 있고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누구나 몇 권씩은 소유하고 있는 그 책의 존재성을 문제시하고 있다. 그는 책의 외형에 기생해 그것과 동일하면서도 아주 다른 책을 만들어냈다. 평면의 화면위에서 여러 권의 책들이 서로 겹쳐 파도처럼 일어나는 형국을 연출했다. 책과 책이 스며들고 책 위에 책, 책 아래에 또 다른 책들이 마구 섞여 있는 장면은 과잉된 책/지식,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비판적 언술로 다가온다. 그 책들은 한결같이 텅 비어버린 책들이다. 책의 내부가 없는 책들, 다만 책의 꼴만 지니고 있는 이상한 책들이다. 책장을 펼치면 책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즉물적인 자신의 살만 보여준다. 책의 살은 가볍고 하얀 종이지만 여기서는 단단한 물질로 채워져 있다. 더러 그 책의 내부가 절개되고 구멍이 파져서 공간을 만들면 공간은 이내 자연스레 프레임이 되면서 그 안에 실제 책들이 부분적으로 잘리거나 축소되어 부착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책들은 책 등을 보여주면서 그림처럼 응고되었다. 책 등은 그 책의 존재성을 알리는 시각적 기호들로 가득하다. 문자와 이미지, 색채로 장식된 책 등 만을 촘촘히 배열해서 보여주자 이내 그것이 매력적인 화면, 볼거리가 된 것이다. 책 속에 또 다른 책이 들어오는 한편 가짜 책 안에 진짜 책이 들어있는 꼴이다. 펼쳐진 책의 평면성 안에 책의 수직성의 세계가 그렇게 공존한다. 그러한 수직과 수평의 관계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나로서는 그 같은 작업을 좀 더 진전시키고 그 안에서 흥미로운 유희나 날카로운 패러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핸디코트로 마감한 작업의 표면은 단단한 물질감과 매끈하고 단호한 질감, 그리고 백색의 색채감으로 다가선다. 현실계에 실존하는 책이란 사물, 오브제를 온통 순백색의 색감으로 덮어버리거나 채워버렸다는 생각이다. 좀 가학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책이란 존재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삭제한다. 단일한 하나의 물질로 책의 외형을 고스란히 응고시키고 박제로 만든 꼴이다. 종이를 넘길 수도 없고 책표지를 볼 수도 없다. 그저 이 책/물질은 펼쳐진 상태로 마냥 침묵한다. 책들은 수없이 중첩되고 켜켜히 쌓여있다. 단일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무수한 책들이자 수없이 다양한 생각과 이론, 주장과 이데올로기 혹은 가치나 신념의 체계를 암시한다. 책이란 문자로 기록된 누군가의 말이다. 말/소리는 사라지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시적으로 머물다 이내 흩어져버리는 소리를 다시 거둬들여 보존하고 기억하자 하는 것이 문자/책이 되었다. 소리가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문자, 책은 시각에 의존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오래도록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책이다. 모든 것이 기억/기록되고 문자꼴로 정착하면서 오래 살아남게 된 것이다. 문자의 등장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역사시대로 들어간다. 문화가 가능한 시기로 이동한다. ‘문화’란 ‘문자화’의 준말이다. 다시말해 모든 것이 글로 기록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의 역사는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삶의 모든 것이 문자로 정착되고 기억이 전수되고 그 기억이 시각적 존재가 되면서부터 인간의 사유는 엄청나게 진보한다. 인간의 지식과 사유는 책의 등장과 책의 출간해 힘입어 지속적으로 부풀려져나갔다. 책은 책을 통해서 새로운, 다른 책으로 나아간다. 책의 탄생은 새로운 사유를 만들고 새로운 인간을 가능하게 하며 새로운 삶과 세계를 요동치게 한다. 고기범은 일상의 공간에서 책들을 발견했다. 책은 우리 주변에 흘러넘친다. 책은 읽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치되기도 하고 그저 쌓여져 있기만도 한다. 그것은 얼떨결에 장식이 되었거나 너무 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순간 책의 진정한 의미가 탈색되거나 무화되어 버렸다. 또한 동시대는 여전히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책의 존재 자체가 위기에 처해있기도 하다. 특히나 전자매체의 등장은 활자로 된 책의 운명을 위협한다. 그러나 활자로 인쇄되어 나오는 책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자나 영상이 줄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고기범은 그 책의 소중한 힘과 의미를 환기시킨다. 그는 책을 다시 보여준다. 그것은 책이자 동시에 책의 꼴을 한 물질이다. 텅 빈 책은 보는 이의 시선을 무력화한다. 무엇인가를 읽고 찾고 보고자 하는 시각적 욕망을 거세한다. 읽을 수 없는, 망막에 호소하지 않는 책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책의 내부를 보면서 사람들은 새삼 각자가 읽고 소유하고 접했던 책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내면으로 들어가 책의 존재를 사유하게 된다. 스스로가 읽고자 하는 책의 내용, 원하는 의미, 사유하는 모든 것을 찾아보라는 권유 같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기존의 책에 쓰여진, 기술된 모든 이론과 사유를 의심하고 회의해보라는, 그 모든 것을 지우고 자기 식으로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도 있어 보인다. 분명 고기범은 그런 성찰이랄까, 반성이랄까 아니면 잠시라도 책의 존재를 상기해보는 시간과 마음을,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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