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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섭 / 보이는 조각, 쓰이는 조각

박영택

조각이 다루는 물질은 부정 할 수 없이 실존하는 사물이자 나를 둘러싼 세계이다. 그것은 완강하고 단단한 구조와 결정을 가지고 있다. 개별적인 사물들은 저마다의 물리적인 속성을 자기 정체성으로, 본성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조각은 이미지 제작 행위 이전에 사물의 물리적 속성을 헤아리고 그 본성을 깨닫는 일이다. 재료와의 일체를 꿈꾸는 것, 그것과의 소통과 융합을 갈망하는 일, 또는 그 사물 속으로 스스럼없이 스며들어가는 일이다. 물질의 본성, 한 존재를 온전히 깨닫는 일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 재료와 하나가 되는 지점으로 부단히 육박해 나간다고나 할까.

조각가란 존재는 자기 앞에 놓인 물질/ 사물과 함께 사는 이들이자 그것으로 꿈꾸는 이들이다. 물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그 물질에 말을 건네거나, 물질 스스로 발화하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외면에 감춰졌던 본 모습 같은 것을 드러낸다. 결정적인 순간 그것을 추출해 내는 일이자 그 사물, 물질에서 얼핏 보았던 모습을 얹혀준다. 그것은 진정으로 나 이외의 또 다른 존재, 타자를, 세계를 알고자 하는 일이고 이해하는 일이자 인정하는 일이다. 오광섭은 그런 기반 위에, 조각적 재료의 본성 위에 그것과 융합되는 어떤 상을 돌탑처럼 쌓아나간다. 그는 작은 돌들을 하나씩 올려놓으면서 탑의 형상으로 자연스레 나아가듯이 작업한다. 애초에 탑의 모양을 의식했다기 보다는 돌을 쌓으면서 생각도 올려놓고, 이런저런 상념이 체적화 되면서 자연스레 어떤 꼴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단위들이 집적되고 연결되어 구축 되어나가는 이른바 ‘플러스’조각이다. 이 생각위에 또 다른 생각, 그 상념 옆에 다른 상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과 몽상의 조각들이 편집되고 ‘몽타주’된다. 작가는 물질을 어루만지면서 그 순간순간 지속해서 연상 작용과 상상의 허용을 수용하며, 그것들이 모여 증식되고 마냥 부풀려 나가는 어떤 과정을 따라간다. 의식과 무의식의 물줄기가 한 도랑에서 흐른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고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공존하며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감정이, 모든 생명체와 사물이 경계없이 넘나든다.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얼굴이다. 현실계이면서 현실계의 틀에서 벗어난 기이한 차원의 세계상이다. 한 얼굴에서 파생된 복수의 얼굴이자 자기 내면이 본 얼굴이 실재하는 상 위로 겹쳐서 겹성으로 소리 지르는 그런 조각이다. 오광섭의 근작을 재료로 구분하면 돌과 브론즈 작업으로 나뉜다. 내용적으로는 이른바 공공미술에 해당하는 분수작업과 일상에서 관찰하고 꿈꾼 이미지작업으로 나뉜다. 그 둘 사이에 걸쳐있는 것은 유년의 추억과 자연이다. 사실 그의 작업은 조각의 양식이나 현대미술의 최근 흐름과 이슈, 새로움의 갈증 등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보다는 재료의 연마, 방법론의 심화, 노동과 정성을 원칙으로 하고 그 위에 자신의 삶, 자기 몸과 의식에서 연유하는 이미지를 기술한다. 이미지는 물질에 깃드는 시간/노동의 누적 아래 구현된다. 시간은 노동의 양에 의해 부피화 되는데 작가는 말하기를 지극한 정성의 시간, 노동이야말로 모든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의 근원이라고 한다. 조각가의 고된 노동과 그 노동의 양/시간의 무게와 그로인한 체취가 맡아지면서 그것들이 서사와 볼거리를 안겨주는 이 조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상에서 발견한 내용이자 자신의 유년의 추억, 자연과 함께 했던 데서 퍼올린 기억과 영감들이다. 특히나 작업의 원천은 유년시절 자연에 대한 추억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 당시 자연에서 받았던 인상, 감동의 조각화에 해당하는 작업은 이른바 기억/추억의 오랜 퇴적층을 발굴하는 작업인 셈이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지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은 이 작가에게는 은총 같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유년은 모든 이의 왕국인 셈이다.

돌로 만들어진 두 개의 커다란 분수는 상당히 정밀하게 구축되어 있다. 돌의 풍성한 매스를 유지하면서 그것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복잡한 구성을 선보인다. 흡사 건축물 모형을 보는 듯 하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각 조각들을 마치 전통적인 목조건물이나 가구에서 엿보는 이른바 바시미 구조처럼 물려놓아 연결시켰다. 부드러운 이 유선형의 형태들은 음양구조를 연상시키면서 결합되어 있고 동시에 볼륨을 지닌 덩어리 자체들이 또 다른 덩어리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풍경처럼 펼쳐진다. 물처럼 흐른다. 그래서 흡사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자연의 실제 풍경을 자연스레 연상시켜주는가 하면 시각과 청각, 촉각을 자극하면서 몸의 오감을 흡입해낸다. 지극히 편안하고 인간적인, 일상적 삶의 공간인 바닥에 납작하게 밀착된 분수는 사람과의 친연성을 유지하면서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다. 기존의 분수/ 분수조각이 보여주는 상투형의 모뉴멘탈한 과장을 지우고 보는 이의 육체와 감각기관 전체와 관여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미술 내지 실용조각의 한 지점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한국 자연의 특질과 한국 문화 속에서의 물의 의미, 그리고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엿보이는 물의 미학 등도 새삼 상기시켜 부풀려낸다. 그의 조각은 건축물처럼 하나하나의 단위, 유닛들이 맞물리고 얹혀지면서 총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그 과정이 하나씩 눈에 밟히는 편이다. 벽돌과 목재를 연결하고 봉합하듯이 돌과 브론즈 조각들을 연결해나가면서 형태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져나가는 형태 속에 느닷없는 낯선 상황이 덧붙여놓는다. 하나의 이미지에 또 다른 이미지가 개입하고 잇대어 붙여지면서 변질시키거나 위장한다. 한 개의 사물에 또 다른 사물들이 병치되어 또 다른 존재로 합성된다. 그는 사물에 기생한다. 예를 들어 곤충이 접시돌리기를 하고 있고 여왕개미의 몸통에서 미끄럼틀이 나오고 종鐘의 형상에 두상이 겹치고 그 양 귀에는 목관악기와 입술(휘파람), 고동이 달려있는 식이다. 개를 탄, 짐승과 사람이 얼굴이 구분없이 섞인 존재가 오래된 골동 다리미위에 올라가 있다. 곤충과 사람이 섞인 형상이고 사물과 오브제를 비롯 모든 존재들이 마구 엉킨 이 풍경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곤충 그리고 사물이 경계없이 뒤섞인, 아늑하고 현기증 나는 그런 경지다. 그것은 반인반수, 반은 사람이고 반은 곤충이자 의인화된 생명체들로 가득하다. 이는 세계의 완강한 구조에 구멍을 내는 일이고 상상력으로 숨통을 틔우는 일이자 외형적으로 고정된 상에 현혹되지 않으려는 제스처다. 이른바 물활론적 사유이고 정령적인 시선이다. 이는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는 체험이기도 하다. 동시에 유년시절 보았던 모든 자연계의 풍경과 생명체들이 시공을 초월해 자리바꿈을 하고 변신을 거듭하면서 현재의 시간 위에 존재하는 사물과 상황에 달라붙는다. 작가는 그것들을, 그 조각들을 자신의 상상의 흐름 위에 태워 보낸다. 그는 사물을 보고 상상을 한다. 꿈을 꾼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엿본 장면이 물질들과 함께 환생하는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낯익은 것이 가지는 이질성을 강조하여 놀라는 동시에 깨닫게 하는 방법이 낯설게 하기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 숨겨져 있는 미지적 요소를 발견하고 그 순간 느끼게 되는 불안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의 조각이다. 왁스 주물로 제작된 모든 조각들은 그렇게 일상에서의 경험, 자신이 추억, 세계의 관찰과 느낌, 그리고 실제 사물에서 얻은 영감의 소산이자 그것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에 기인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물질로 응고시켰다. 그는 오로지 자신 속에서 자신을 본다. 물질 속에서 물질을 본다. 자기가 대면한 것 이외의 것에서, 알지 못하는 것에서, 노동의 시간으로 체득한 것 밖에서 작업을 끌어내지 않으려 한다. 이 같은 조각/작업방식은 한국 현대조각사에서 좀 이례적인 경우로 보인다. 관습적인 소재의 공들인 연마나 협소한 상상력에 기인한 괴이한 조각, 조각의 물성 자체를 가혹하게 눌려놓거나 애매한 절충주의적 추상조각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오광섭의 제작 방식과 이미지전개, 보여 지는 방식과 감상의 제공 모두가 색다르고 이례적이다. 또한 그의 조각은 실용성과 심미성, 생활용품과 예술, 오브제와 조각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 그 둘이 서로 녹아드는 경지를 꿈꾼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보여 지는 것이자 쓰여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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