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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 전시장 가는 길4

박영택

Like a virgin, 175갤러리(4.27-5.8)
T.02.720.9282

캔버스는 면천으로 이루어졌다. 날줄과 씨줄로 직조된 이 천위에 물감을 올려서 구축해 내는 게 이른바 서양화다. 15세기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진 캔버스는 이후 서양회화에 있어 절대적인 화면공간이 되었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캔버스, 천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출해 내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납작하고 평평한 천에 실제 세계를 올려놓고자 욕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주어진 천의 물성과 평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또는 캔버스의 천/실을 풀어서 그것으로 사물을 만드는 이도 있는가 하면 천위에 바느질을 해서 일종의 자수 같은 작업을 하기도 한다. 강민정은 캔버스 천위에 바느질을 해서 어린 소녀의 얼굴과 문자들을 수놓았다. 그것은 물감과 붓이 아니라 바늘과 실로 이루어진 회화/저부조다. 제목은 <피해자>인데 일련 번호가 매겨져있다. 앞, 뒷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허공에 떠있는 캔버스의 표면에는 이른바 성폭행을 당한 소녀들의 초상이 박혀있다. 소녀들은 천 위에 포박되었다. 앞면에 드러난 소녀의 얼굴과 참혹하게 얽혀있는 실의 교차을 발설하는 뒷면이 기이하게 공존한다. 붉은 색 실은 “자꾸 왜 소리지르고 도망가지 않았냐고 물어봐요”,“힘쎈 아저씨가” 등의 문자가 새겨져있다. 피로 쓴 글자처럼 가슴을 슬프게 적시는 문구들이 환청처럼 떠돈다.

전세계에서 몇 분마다 이루어진다는 아동성폭행의 실상을 바늘과 실로 꿰매며 보여주는 방법론의 설득력, 문자와 이미지의 놀라운 조응을 통해 어린 소녀들의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참혹한 트라우마를 환기시키는 전시장에서 나는 여러 번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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