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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부엌 이야기

박영택

문화인류학이 말하는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는 바로 ‘불의 공유’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음식을 조리하고, 좀 더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수단이 된 것이다. 불은 사람들을 한데 모이도록 했을 것이다. 그 불을 이용해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배고픔을 피하고 목숨을 이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함께 모여 생활하게 되고 그로인해 가족이 만들어진 것이리라. 불이 없었다면 사랑도, 가족도 불가능했을까? 따뜻한 불과 따스한 음식이 서로를 밀착시키고, 서로가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 그러니까 배가 고프고 추위를 타는 나약한 인간이란 그 진실만큼은 깨닫게 해주었을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제한된 공간, 화덕(불), 가정을 공유하면서 가족 구성원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지닌다. 불의 공유는 결국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 가족을 탄생시켰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식구)은 목숨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밥상에 모여 다음 생을 기약하고 도모한다. 김이 모락거리는 따뜻한 흰쌀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가족들이 오늘도 배고프지 않고 무사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 살고자 결의한다. 식탁은, 부엌은 사뭇 비장한 결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부엌은 항상 열과 온기, 분주함과 활력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식구를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밥을 짓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부엌은 무척이나 신성스러운 곳이다. 밥을 짓고 먹을거리를 마련해 삶을 영위해나가는 핵심적 장소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부엌신을 모시고 그곳을 신성시했다. 경건하게 다루었고 몸가짐을 살폈으며 모든 식구들의 삶과 건강을 기복하는 공간이 바로 부엌이었다. 불씨와 곡식과 김이 모락거리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조왕신께 치성을 드리고 부정 타는 일을 극구 두려워했다. 그 부엌은 온전히 여성만의 공간이다. 물론 남자들도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라면을 끓인다. 설거지도 하고 커피를 탄다. 그러나 부엌은 실은 여성의 반복되는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성들은, 그 부엌에서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부엌은 지겹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불가피하고 절실한 그런 공간이다. 부엌에서 밥을 짓고 무엇인가를 삶고 볶고 지지지 않으면 목숨은 없다. 그렇게 조리된 음식만이 목구멍으로 편하게 넘어간다. 산다는 것은 먹는 일이고 먹는 일은 죽는 날까지 매일, 여러 번 반복되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목구멍으로 다른 생명체를 밀어 넣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요리는, 부엌은 여전히 살기 위해 요구된다.

좌혜선이란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여자와 부엌은 어떤 관계일까?” 대부분의 여자들은 평생 부엌이란 공간에 메여있다. 그것은 강도 놓은 노동이다. 그것이외에 다른 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할 수 있고 있어야만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수 여자들은 밥 짓는 일로 인생을 소모한다.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준비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겹고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노동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부엌은 양가성을 띤다. 작가는 종이위에 먹과 동양화 물감을 통해 화면에 색채의 층들을 견고하고 투명하게 밀어 올렸다. 반복되는 붓질은 질감을 동반하면서 특정 공간에 대한 여러 상념과 회한을 밀어 올려준다. 질감과 깊이를 가진 화면은 그 위에 얹혀진 이미지의 내용성을 강화하는 편이다. 작가의 기법과 색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무척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소재도 신선해 보인다. 작가는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그렸다. 다소 어둡고 침침하면서 어디선가 배어나오는 불빛에 의해 훈훈한 온기가 감촉된다.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그림이다. 작가는 말하기를 그곳은 행복인 동시에 무덤이라고, 아픔인 동시에 기쁨이라고. 그래서 작가는 ‘그곳’을 그린다. 일하는 여자는 표정과 마음을 지우고 다만 자신의 등을 보여준다. 숙명적인 노동을 견디는 그 뒷모습만을 그려 보인다.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많은 말을, 차마 발설될 수 없는 무언의 말들을 전해준다.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이에 대한 단상을 차분하게 길어 올리고 있는 이 그림은 다분히 페미니즘적 시선을 감촉시키는 한편 여자의 삶에 대한 다소 서글프고 착잡한 감정의 일단을 드리운다.

반면 김선심이 그린 부엌, 싱크대풍경은 정반대의 장면이다. 가정이란 삶의 공간에서 매일 벌어지는 먹고 사는 일, 가사노동의 현장성은 사실 지저분하고 심지어 음산하고 불결하며 구역질을 동반하는가 하면 부패한 사물들로 흘러 넘친다. 그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매일같이 치러야 하는, 부엌에서의 설거지장면을 그렸다. 한정 없는 가사노동의 힘겨움, 끔찍함과 지루함, 권태감 등이 짙게 배어 있는 풍경이자 여성의 일상적 삶의 반복에 대항하고자 하는 일종의 모반과 반란의 욕망이 내재돼 있는 그림이다. 한 가족의 내밀한 주거공간인 식탁과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삶의 정경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들, 씻어야 할 그릇들, 어지러이 널린 쓰레기들로 가득한 이 혼돈스러운 부엌은 매일매일을 이런 일을 하며 지내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현실의 초상이다. 이 작가는 행복하고 안락한 가정 그리고 여기에 부과되는 여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부엌에서의 여성의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그림은 여성의 삶의 공간에 자리한, 여성만이 그릴 수 있는 치명적인 부엌풍경이다. 그녀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밥 안할 거야?” 잠을 깨우는 남편 목소리가 정말 웬수 같이 느껴진다. 벌써 아침 7시, 어젯밤에는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뜬 눈으로 지새는가 했더니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남자는 밥하면 안돼?” 비몽사몽간에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켜 늘 해오던 것처럼 부엌으로 들어가 마지못해 식사 준비를 한다. 맛이 있든 없든 매일 똑같은 반찬이지만 별로 관심 없이 식탁에 올려 놓는다. 남자 셋이서 박-박 밥그릇 긁는 소리가 들려온다...식탁 위는 마치 피폭당한 전쟁터처럼 변해버렸고, 음식물들은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축 늘어지고, 음산하리만큼 검게 오염된 사물들을 나열하여 지저분하고 구역질나게 하며 어지럽게 널브러져 여기저기 나뒹구는 밑바닥에 깔려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부패돈 모습들,..정상이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형태에 가까운 일그러진 삶, 유독성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음식물, 무질서한 혼돈, 불확실한 그런 사회의 불안정한 모습, 이는 곧 지구의 생태의 능욕을 걱정하고 고발하는 에코페미니즘적 요소를 강하게 표현하고, 어느 순간에는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내 삶의 현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물을 통해 소외된 심리상태의 표현을 시도하면서 더러움과 혐오스러움, 또 한편으로는 폭력에 대한 예찬, 결백함을 갈망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을 느끼며..(작가노트)

김선심이 보여주는 부엌풍경은 더 이상 따뜻하고 안락한 가족구성원의 보금자리, 목숨이 연명되는 곳만은 아니다. 과연 부엌은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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