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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 초상

박영택

초상


옛사람들은 초상화 그리는 일을 빛을 그리는 일로 여겼다. 사조(寫照)가 그것이다. 그것은 빛에 의해 드러난 형체를 그리는 일이자 인간의 내면이 뿜어내는 모종의 빛을 포착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낮 빛이라고 하거나 안색이라고 했을 때는 얼굴의 생김새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베어 나오는 기운에 대한 주목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 하나를 들고 살며 그 얼굴을 통해 자기 내면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발설한다. 빛을 발한다. 그 빛은 한 사람이 살아온 생애와 이력, 그가 겪었던 삶의 굴곡과 주름을 죄다 펼쳐 보인다. 사방으로 흘러나간다. 몸 안에 가득한 것들이 그렇게 방사된다. 얼굴은 또한 책 과 같다. 얼굴은 텍스트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공들여 읽고 살피고 깊이 있게 헤아리며 저 안으로, 심연 같은 마음 속으로,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한 인간이 뿜어내는 모든 기운과 빛을 만나는 일이고 보는 일, 그것이 누군가의 얼굴을 접하는 일이자 초상화를 그리고 감상하는 일이다. 그 빛과 기운에 비추인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해 보는 일이자 돌이켜 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질문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초상화는 단순한 얼굴그림에 머물지 않고 신령이나 정신이 담긴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실재하는 인간을 대신하는 것이자 혼이 깃든 예사롭지 않은 이미지다. 이미지는 단지 이미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해, 부재에 맞서 다시 눈 앞에 현존되는 기이한 체험이다. 그래서 인물초상화의 본령은 우선 대상에 대한 그대로의 묘사이다. 그 대상의 실재감, 그리고 사람됨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고대의 골상법(骨相法)이 그것인데 형상의 묘사를 통해 정신세계를 그려낸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이란 것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실적 모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형의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내면세계를 나타낸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물초상화의 근본취지다. 그것을 '전신傳神'이라 칭한다. 소위 전신이란 인물이나 사물이나 자연세계의 내재적 정신 본질을 표현함을 뜻한다. 고대 중국의 화가 고개지는 회화에서 인물을 그리기 가장 어렵다고 했는데 특히 정신이 그윽한 경지를 드러내야 할 눈에 대한 묘사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언젠가 권옥연 화백을 만났을 때 그는 말하기를 수 십년 동안 소녀의 얼굴을 그려왔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조금만 손을 덧대면 속되 보이고 조금 손이 덜 가면 전혀 닮지 않거나 만화처럼 보인다며 지금도 자신은 그림 앞에서 하루종일 앉아 고민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얼굴을 온전히 그린다는 것은 힘들로 어려운 일이다. 김현철은 조선시대 초상화기법의 온전한 계승, 모사를 통해 이를 동시대인의 초상 작업으로 끌어당긴다. 2008년 한벽원갤러리에서 그의 초상화를 보았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초상화에서 만나는 절제된 필선과 맑고 은은한 채색, 단아하고 엄정한 인물의 기품과 인격, 서릿발 같은 기운이 감도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정교하고 담백했다. 깔끔하고 차분한 정신이 감도는 그림이다. 이른바 품격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지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이의 품성이 감지되는 차원이었다. 전통적인 초상화기법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통해 동시대인들의 초상,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초상화와는 분명 격이 다른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림의 완성도와 핍진함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전통초상화를 복원하거나 이를 계승한다는 욕망을 강박적으로 앞세우는 것도 아니어서 호감이 갔다. 그리고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안산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다시 초상화를 보았다. 2년만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닮고 싶은 얼굴, 존경받는 이들이 얼굴과 주변사람들, 지인들의 초상을 그렸다. 우선 자신이 비교적 잘 아는 이어야 그 내면이나 정신을 표현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함께 적지않은 세월을 살고 늙어간 부부상이 있고 예술가의 초상에 해당하는 월전 장우성과 일중 김충현, 그리고 교육자인 송설당의 초상화를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이른바 스님들의 초상이 자리하고 있다. 경허선사와 향고선사, 혜월선사, 자운율사 등은 이른바 조사상에 해당하는 그림과 만해 한용운의 초상이 있다.

만해의 얼굴은 그가 그리고 싶은 스님의 얼굴이다. 대부분의 스님초상은 사찰에서 주문한 것 들이다. 이미 그려진 초상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 인물의 행적과 인품 등을 헤아려 그에 걸맞는 자세와 소도구, 채색과 기법 등을 결정해 그려나간다. 모든 그림에서 인물의 표정은 엄정하고 포즈는 단아하고 엄격하다. 섬세한 필선과 은은한 채색으로 공들여 그린 그림들은 맑게 빛난다. 월전과 일중은 뛰어난 예술가로서 그가 존경하는 측면이 있기에 그렸을 것이다. 예를들어 월전 장우성의 초상은 그가 시서화 삼절에 능한 마지막 문인화가라는 점에서는 작가 자신에게는 동양화를 전공한 후학으로서, 조선시대 전통서화를 근간으로 이를 엄밀하게 고증하는 작업을 하는 후배작가로서 또한 월전의 정신과 그의 예술세계를 존경하는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 인물이었기에 그렸던 것 같다. 깐깐하고 엄격했던 문인적 화가상을 지닌 월전의 얼굴과 정신이 그림에서 묻어나오는 듯 하다. 그는 그런 얼굴과 몸을 비단에 정교한 묘사와 극진한 채색을 통해, 전통초상화기법으로 오롯이 올려놓았다. 김현철은 우리 조상들이 남긴 뛰어난 초상화를 끊임없이 모방하면서 그 기법과 정신을 익힌 후 이를 통해 당대의 인물, 그가 존경하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담았다. 얼굴에 집중된 묘사, 의복 선은 간단하게 처리해 형형한 눈빛에 주목시킨다. 이처럼 초상화는 그림 그리는 이가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흠모나 존경심이 없다면 곤란할 것이다. 그가 만해를 그린 이유도 거기에 있어 보인다. 그는 그런 위인들이 지닌 정신과 눈빛, 마음을 그림으로 형상화 하고 싶고 이는 결국 그러한 얼굴을 닮고자 하는 개인적 바람의 투영일 것이다. 사실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그려진 그림 속 인물이 후대에 존경받거나 의미를 지닌 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도대체 누가 초상화로 그려질 만한 이들일까, 그리고 그것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김현철은 전통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진경시대에 그려진 산수, 풍속을 거쳐 인물화풍의 계승발전까지 이르렀다. 섬세한 인물표현을 필요로 하는 전통적인 인물초상화에 대한 공부와 임모臨模와 그에 대한 연구와 제작을 꾸준히 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전통회화속의 어진, 공신상, 사대부초상화 등의 초상화를 임모하면서 그는 망실되었던 초상화기법을 체득해내고 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초상화는 매우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옅은 색을 칠한 얼굴의 검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진한 채색으로 장식한 옷과 화려한 흉배가 보기 좋고 화려한 장황이 곁들여진 것은 시각적 효과가 탁월하다. 기법이 무척 훌륭하고 엄청난 공력이 깃든 작품이라 더없이 감동적이다. 그 그림들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최고의 기량으로 그린 그림이기에 이에 대한 연구와 임모는 당대 최상의 다양한 화법과 기법을 두루 익히는 일이자 동시에 시대미감의 변모도 깨닫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림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남겨진 초상화와 이에 대한 연구자료, 화집을 숙지하면서 조금씩 밀고 나가고 있다. 그동안 그는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의 화법과 기법을 두로 섭렵해왔다. 아직도 그는 그 수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만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화법으로 발전하리라는 믿음도 있다. 그는 얇은 비단 위에 배채법에 의한 투명한 듯 맑은 기운의 채색(석채)과 간결한 필선법으로 전신의 진정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정밀한 붓질로 가는 선묘를 반복하여 안면의 입체감을 구현한다. 의습은 간결하고 단순하게 처리했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의 얼굴을 극진하게 그렸다. 그 얼굴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에게 모종의 울림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우리의 전통회화에서 필히 익혀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화법으로 두 가지, 그러니까 모필에 의한 다양한 필법과 궁중회화에서 널리 사용된 진채에 의한 채색법을 꼽았다. 이 두가지를 온전히 익혀 계승, 발전해나가면서 당대의 미의식을 아우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이것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초상화기에 그는 지금, 초상화를 공들여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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